<행복의 조건>
27. 알 수 없는 사람
배정환
파티쉐 수정 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야?”
“사장님 매장에 빨리 와 보셔야겠어요.”
은지는 거래처를 돌다가 바로 뉴욕 베이커리로 차를 돌렸다. 도성이 퇴근하고 매장에는 수정 씨가 마무리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수정은 달려드는 은지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여기 사진 좀 보세요."
은지는 핸드폰을 받아들었다. 도성이 앞치마를 두르고 빵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거 뭐야?"
"제가 어제 서울 나갔다가 도성 씨를 봤어요. 깜짝 놀라서 저도 모르게 도망 나오듯이 나와버렸어요. 이건 밖에서 찍은 사진이거든요. 저녁에 일찍 퇴근한다 생각했는데 다른 데서 일하고 있는 모양이에요. 양다리 걸치는 걸까요?"
"일단, 알았어. 내가 알아볼게."
은지는 매장 정리를 도와주고 가게 문을 닫았다. 분명 같이 해보자고 손을 잡았건만 이게 무슨 일일까? 사람을 잘 못 본 걸까? 다른 사람을 알아봐야 할까? 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내가 사진을 하나 보냈어요. 확인 좀 해주세요."
잠시 후 전화가 왔다.
"도성이가 다른 데서 일하는 거야?"
"원래 어떤 사람이에요? 돈이 필요한 사람인가요?"
"그렇기는 하지. 어머니가 아프시고, 돈 버는 사람은 도성이 밖에 없으니까."
"알겠어요."
"미안하다.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걸까? 알아봐 줄까?"
"아니에요. 제가 알아서 해결할게요."
"또, 혼자 다 하려고 한다!"
"아니에요. 오해일 수도 있으니 모두가 나서는 건 아닌 거 같아서요."
"그래, 알아보고 연락 줘."
은지는 다음날 낮 시간에 시내 베이커리로 나갔다. 빵을 사는 척하며 알바로 보이는 직원을 불렀다. 그 시간에 도성은 은지 가게에서 일하고 있으니 마주칠 일이 없이 편하게 물었다.
"저녁에 잘 생긴 총각 있던데, 낮에는 안 보이네요."
"아, 그 동생은 저녁에만 나와요. 낮에는 공부한다고 하던데요."
"공부요? 무슨 공부여?"
"그건 저희도 모르죠. 일한 지 일주일 밖에 안돼서 저도 잘 몰라요."
"아! 그래요. 너무 친절해서요... 이거 계산해 주세요."
공부? 은지는 도성이란 친구가 궁금해졌다. 여기서도 거짓말을 한 걸까? 어디까지 거짓일까?
도성의 이력서에 쓰인 주소를 찍어보았다. 은지 가게에서 멀지 않았다. 일단 거래처 일을 마무리해야 해서 공단을 먼저 돌았다. 그럭저럭 총무과 담당자와 이야기를 끝내고 도성에게 전화했다.
"오늘 별다른 일은 없어요?"
"네, 사장님 걱정하실 일은 없습니다."
"그래요. 잘 마무리해줘요. 저녁에 수정 씨 좀 거들어주면 안 될까?"
"아. 제가 선약 있어서요. 당분간은 좀 어렵겠습니다."
"그래요. 수고해요."
여기도 거짓말, 저쪽에서도 거짓말을 한다... 은지는 주소지를 찾아갔다. 동네에서도 오래된 빌라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이다. 아직도 500미터는 더 들어가야 했지만, 큰 길에 주차하고 걸었다. 다세대 주택 앞에서 선 은지는 주소지를 확인했다. 불이 켜진 2층을 바라보다 조금 떨어진 편의점에 들어갔다. 늦은 저녁이라 점장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저 혹시 저기 2층에 젊은 친구 여기 자주 오나요?"
"무슨 일이세요? 왜 그런 걸 물으세요?"
"아! 저희 직원인데, 전해 줄 것이 있는데 연락도 안 되고 해서 찾아왔어요."
"아... 연락 안 되는 친구는 아닌데요. 여기서 일할 때도 거의 빠진 적이 없었는데요. 제가 전화해 볼까요?"
"아니에요. 전화 올 겁니다. 부재중 통화가 찍혔을 테니까요. 여기서도 알바했어요?"
"네, 한 2년 했죠.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여기서 알바하고..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어요."
"도성 씨가 너무 성실하더라고요. 정이 가는 친구예요."
은지는 은근슬쩍 점장을 떠봤다.
"사실 요즘 청년 같지 않아요. 아프신 어머니 모시고 혼자 잘 해내는 친구가 어디 흔합니까? 얼마 전에 누님 같은 사장님을 만났다고 하던데 혹시 사장님이세요?"
"아.. 네. 그런 이야기까지 해요?"
점장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목례를 했다.
"그 회사에서 잘해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믿어주는 원장님도 있고, 사장님도 좋으신 분이라고."
은지는 더 있다가는 거짓말을 계속해야 할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일단 제가 더 전화를 해봐야겠네요."
"네! 도성이 잘 부탁드립니다."
은지는 도성을 믿어보기로 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는 은지를 동네 고객이 인사를 했다.
"수민 엄마, 가게 총각 누구야? 가족이야? 잘 생겼더라, 친절하고!"
"아, 도성 씨요. 직원이에요. 가족 아니구."
"그래? 가족도 아닌데 그렇게 열심히 해?"
"그래요?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신경을 못 쓰고 있네요."
"그 친구 요즘 동네에서 친절하다고 소문났어. 지나가는 학생들에게도 시식해 보라고 빵도 주고."
은지는 간단히 인사하고 헤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도성을 칭찬한다. 도성의 정체는 무엇일까? 아무튼 주변 칭찬을 종합해 보면 우려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한 달이 지나도 도성은 저녁 아르바이트에 관해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런데 베이커리 매상은 조금씩 늘고 있었다. 은지가 운영할 때에 비하면 두 달 만에 50%나 증가했으니 일시적 현상이라 단정할 수 없었다. 분명 뭔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은지는 낮 시간을 이용해 베이커리를 방문했다. 은지는 도성에게 매출장표를 가져오라고 했다.
"도성 씨 매출이 많이 증가됐네요. 혹시 이유가 뭘까? 특별히 빵이 팔리는 계절도 아닌데."
"제가 운이 좋은가 봅니다."
"운? 그럼 정확히 파악이 안된다는 건가요?"
도성은 핸드폰을 꺼내 은지앞에 내밀었다.
"본사 정책상 광고가 허용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베이커리 광고보다는 제 광고를 해보기로 했어요."
"광고? 광고를 어떻게 해요?"
"제가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통해 베이킹과 바리스타에 진심을 보이는 이미지를 만들고 있어요. 제가 일하는 곳을 찍어 올리고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도성이 보여주는 글들을 대충 훑어봐도 베이킹 전문가로 보였다. 그렇다고 베이킹만은 아니었다. 자신의 일상을 찍어올린 사진들 색감이 좋았다. 젊은 친구라 SNS를 잘 이용하는가?
"이제는 브랜딩 시대잖아요. 대놓고 광고하는 것보다 이렇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진이나 글들을 싣고 브랜딩하는 편이 더 끌릴 것 같아서요."
은지는 브랜딩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하지만 도성이 뭔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제가 일하는 여기를 노출하고 있어요. 이게 조금씩 어필하는 건지 아닌지 아직 정확하지는 않아서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은지는 무슨 말인지 조금씩 이해가 됐다. 프랜차이즈는 엄격히 개인 광고를 제한하고 있으니 자기를 브랜딩 해서 가게를 간접 홍보한다는 말이었다. 이 친구 보통이 아닌데...
"매출이 올라간 기념으로 우리 회식할까요? 시간 괜찮아요?"
"아니요. 사장님 실은 제가 저녁에 다른 가게에서 알바하고 있어요."
"알아요."
"아셨어요?"
도성은 놀라는 얼굴로 은지를 바라봤다.
"돈이 필요한가 봐요.? 시내에 나갔다가 봤어요. 도성 씨가 일하는 거."
"아... 그러시구나. 그런데 왜 말씀 안 하셨어요?"
"도성 씨를 믿는다고 했잖아요."
도성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도성이 말했다.
"베이킹 트렌드를 알아보고 싶어서요. 매출이 잘 나오는 가게는 어떻게 운영되는지 공부했어요. 지금은 시내가 아니고 개인 베이커리에서 단기 알바중입니다. 프랜차이즈와 개인 베이커리의 차이를 알고 싶어서요."
이번에는 은지가 놀랬다. 돈 목적이 아니었다는 것이 은지에게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은지보다 뉴욕 베이커리에 더 진심인 친구가 있을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