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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Apr 29. 2024

28. 결국 사람이다.

<행복의 조건>

28화. 결국 사람이다.

배정환



아무리 믿는다고는 했지만 은지는 그걸로 도성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전에 인연이 있던 것도 아닌데 쉽게 은지의 믿음에 보답을 한다는 것은 맥락이 없어 보였다. 

“도성 씨 프랜차이즈와 개인 빵집을 보니 비교가 되던가요?”

“네, 개인 빵집은 혼자서 하기는 좋은데 아무래도 시스템이 약해요.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다 보니 알바를 써도 교육이 들쭉날쭉합니다. 프랜차이즈는 매뉴얼이 있어서 뭘 해야 될지 금방 파악이 되는데요.”

“음, 그래서 다들 프랜차이즈를 하는 거죠. 돈이 더 들어도... 그럼 우리 가게가 왜 힘든지도 알겠네요?”

도성은 수첩을 꺼내 펼쳤다. 빼곡히 적어둔 메모가 은지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 진짜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우리 가게만 살릴 수 있다면 뭐든 좋아요. 어차피 본사도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는데요.”

“가게 홍보력이 떨어져요. 아무리 프랜차이즈지만 이 매장만의 특징을 살려야 합니다. 특히 영업을 할 수 없다면 사람들이 오도록 해야죠. 결국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친절과 웃음, 그게 약해요.”

“그전에 우리가 그걸 못했나?”

“아무래도 사장님이 위축이 되다 보니 손님들에게 비슷한 모습을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도성은 은지가 가게의 어려움 때문에 빵도 적게 만들어 놓은 모습을 본 걸까? 위축되었던 건 사실이다. 도성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저녁에 왔는데 빵이 별로 남아 있지 않으면 더 이상 발길이 닿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빵을 그저 고를 때까지 기다리고만 있어요. 잘 되는 베이커리는 직원이 붙어서 설명을 해주거든요. 빵도 큐레이션이 필요합니다.”

“큐레이션… 고객이 그걸 원하나?”

“이 빵의 특징은 뭐고, 뭐랑 먹으면 더 맛있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거야 그렇긴 하지.”

“일단, 가게를 몇 시까지 운영하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으니까요. 제가 다 팔아보도록 할게요. 9시가 넘어가면 할인 행사를 대대적으로 하면 되니까, 사람들이 빵이 맛있고, 많은 집이라고 인식하게 해야 합니다.”

“그것만으로 될까요? 손해도 감수할 수 있어요?”

“다음으로, 제가 가까운 곳은 배달을 할게요. 일단 첫 타깃으로 여기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특별 배달 서비스를 선보일 생각입니다. 전단지만 만들어주세요. 여기 포맷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은지는 도성이 내미는 메모지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성이 여기까지 구상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다. 

“배달까지 할 여유가 있나요? 우리가?”

“원장님께 매장 알바를 해줄 만한 젊은 여성을 알아봐 달라 했어요. 일단 무조건 이쁘고 성격이 활발한 알바를 써야 합니다. 제가 잘 컨트롤해 볼게요. 이 아파트만 잡으면 입소문이 빠르게 퍼질 겁니다.”

“힘들어서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일 년만 버티면 됩니다. 일 년 후에는 개인 베이커리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때는 사장님께서 만든 빵을 넣으면 되니까, 굳이 우리가 매장에서 빵을 다 굽지 않아도 됩니다. 더 효율적으로 운영이 가능할 겁니다.”

은지는 일 년 후 계약이 끝나며 가게를 넘기거나 폐업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성은 그 이후까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입사한 지 3개월밖에 안된 젊은 친구가 은지 허락도 없이 쏟아내는 계획들을 믿어도 될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좋아요. 공장도 점점 나아지고 있으니 매장도 살려보자고요."



은지는 영업 나갔다가 정육점에 들렸다. 거기서 한우 선물 세트를 구입했다. 

“사장님 저 길 건너 뉴욕 베이커리에서 왔어요. 빵이 필요하시면 저희 매장 이용해 주세요.”

“네… 저희가 빵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필요하면 그렇게 할게요.”

적당한 거절이란 걸 은지는 안다. 하지만 그렇게 해두면 뭐라도 이루어질지 몰랐다. 한우를 들고 도성의 집을 찾았다. 2층 문 앞에 두고 도성에게 전화를 했다.

“도성 씨 집 근처에 왔다가 내가 문 앞에 선물을 하나 두었어요. 어머니께 가지고 들어가라 해줘요.”

“사장님 그렇게 안 하셔도 되는데요.”

“그냥, 내 정성이에요. 다른 직원까지 해줄 수 없어 집으로 가지고 왔어요. 그렇게만 알아요.”

“감사합니다. 사장님.”

은지는 전화를 끊고 계단을 내려왔다. 허름하고 어두운 빌라를 보며 고등학교 때 아빠와 단둘이 집에 있던 자신이 오버랩되었다. 빌라 1층 계단에 앉아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보며 일 나간 엄마를 기다리는 자신을 보았다. 그런 시간을 보내고 있는 도성이 자기보다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저기요. 사장님! 제가 몸이 불편해서 내려가기 어려운데요. 커피 한잔하고 가세요.”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2층 베란다에서 도성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성이 은지를 부르고 있었다.

“어머니, 괜찮습니다.”

“아니에요. 저희가 신세 진 것도 많은데요. 올라오세요.”

은지는 어쩔 수 없이 도성의 집에 발을 들였다. 목발을 짚고 커피 타는 모습을 보니 어디선가 뵌 듯한 느낌도 들었다.

“저 기억나세요?”

은지는 순간, 아는 분들이라는 생각에 다시 도성의 어머니 얼굴을 직시했다. 하지만 딱히 기억나지는 않았다.

“죄송합니다. 저는 잘…”

“우리 도성이 중학교 갈 때쯤 뉴욕 베이커리 앞에서 밤늦게 사고가 났어요. 그때 사장님이 먼저 나와서 저를 안아주며 119 신고해 줬는데 기억나세요.” 

“아! 기억나요. 죄송합니다. 못 알아봤어요.”

“그때 사장님이 신고해 주셔서 제가 살았어요. 뺑소니 찾는 것도 도와주시고, 그때 보상을 못 받았으면 큰일 날뻔했습니다.”

“저야 우리 가게 앞에서 벌어진 일이니까 할 도리였는데요.”

“제가 그때부터 일을 못했어요. 그래도 보험금이 있어서 그냥저냥 살고 있습니다. 다 사장님 덕분입니다.”

은지는 그렇게 기억해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사장님 가게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듣고 은혜에 보답하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찾아가지도 못했고, 감사 인사도 못 드렸으니.”

“감사 인사는요.. 그래도 장애를 갖게 되어서 안타깝네요.”

“어느 날 도성이가 빵을 가지고 왔더라고요. 시설에서 빵을 받았는데 기부자 명단에 사장님이 있었다면서 정말 좋은 일 많이 하시는 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은지는 살짝 머쓱해졌다. 울며 겨자 먹기로 기부한 빵인데 이렇게 감사 인사를 들어도 되는 걸까? 눈물 젖은 빵이라 생각했는데 누군가에게는 삶을 이어가는 매개체가 되었다니.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도성이 왜 그렇게 은지 가게를 살리려고 노력했는지 알 것 같았다. 

"도성 씨가 일을 참 잘해요."

"그 녀석이 나 대신 일하면서 고등학교 다녔어요.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습니다. 매장, 창고, 서비스, 판매까지 해본 아들이에요. 사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도성 씨 도움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은지는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나왔다.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보니 도성이 대견해 보이고 더 믿음직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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