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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May 06. 2024

29. 비전을 세우다

<행복의 조건>

29. 비전을 세우다.

배정환




뉴욕 베이커리 매출이 조금씩 우상향 하고 있었다. 은지는 도성의 능력을 보며 제대로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능력과 인성이 조합되기란 쉽지 않은데, 마치 오랫동안 사업을 했던 사람 같았다. 이런 능력자가 과연 오래 남아 있을지 불안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모든 성과에는 그만한 보상이 따라야 했다. 은지는 도성을 불렀다. 

"매출이 처음 오픈할 때를 넘어섰네. 사실 나는 이 매장 정리하려고 했거든. 이 정도로 나가면 굳이 그럴 필요 없겠어. 아니 이 매장에서 현금 흐름을 만들어내도 좋겠어. 정말 수고 많았어."

"아닙니다. 저를 믿어주시고 밀어주시는 사장님이 계셔서 그렇죠."

"그 마음 변치 않고 계속 나랑 해줄 수 있겠어?"

"그럼요. 저도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해졌어요."

"좋아! 그럼 오늘부터 도성 씨를 여기 점장으로 임명할게. 이제 도맡아서 진행해 줘. 거기에 맞게 보수는 올려줄 거구."

"아닙니다. 그럼 파티시에 누나랑 불편해져서 안됩니다."

"걱정하지 마, 그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대신 내일부터는 누나가 아니라 수정 씨를 실장이라 불러야 해. 호칭이 관계를 만드는 거니까. 나도 이제부터는 점장님이라고 부르도록 할게. 존댓말도 쓰고."


은지는 파티시에 수정을 불러 상황을 따로 이야기했다. 

"사장님, 그럼 제가 도성이 밑이 되는 거라구요? 그건 좀 아니지 않나요?"

"수정 씨! 도성 씨는 여기 매장을 살려냈어. 나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

"그래도 한참 막내 동생 같은 애 밑에서 어떻게 일해요?"

"수정 씨를 아끼는 마음이야 같아. 하지만 이건 사업이야. 수정 씨가 여기 매장을 꾸려나갈 수 있겠어?"

"제가 제빵 하며 경영까지 어떻게 해요?"

"수정 씨가 싫다면 나는 둘 중 하나야. 매장을 접든가? 새로운 파티시에를 뽑든가?"

수정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고민했다. 은지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수정 씨, 대신 제빵에 대해서는 전권을 위임할게. 도성 씨와 힘을 합쳐줘. 수정 씨 임금도 거기에 맞게 더 올려줄게. 그리고 조직이 커나가면 이런 일은 더 많아질 거야. 외부 인사 영입 때마다 기존 사람들이 자꾸 자기 입장을 이야기하면 우리는 주저앉을 거구, 모두 다른 직장 알아봐야 해. 평생 빵만 만들 거야?"

수정은 고개를 들어 은지와 눈을 마주쳤다. 

"수정 씨, 나는 빵 공장을 우리나라 최고의 회사로 키워낼 거야. 그때 되면 수정 씨도 도성 씨도 다 임원이 되는 거야. 언제까지 제빵만 할 수는 없잖아. 이 상황만 이겨내면 직원을 고용할 거고 수정 씨는 팀장이 될 거야. 매장이 늘어나면 거기 파티시에를 총괄 관리하는 사람이 필요하잖아. 하지만 지금의 수정 씨는 그럴만한 실력이 부족해. 그러니 그때를 위해 공부해야 해."

"사장님..."

"오래 있는다고 직책이 오르고, 월급이 오르지는 않아. 그만한 실력이 같이 생겨줘야 해. 수정 씨 대신 다른 사람을 데려와도 좋겠지만, 내가 처음부터 수정 씨와 시작했고 성실하다는 거 아니까 부탁하는 거야."

"네, 열심히 공부할게요. 감사합니다."


은지는 도성과 수정을 도울 직원을 구했다. 원장에게 부탁해서 학원생 중에 가장 인성이 좋다는 젊은 여성을 골랐다. 원장이 물었다.

"유 사장, 이 친구가 일은 잘할 거야."

"언니는... 사람은 지나 봐야 알지요. 일단 수습으로 3개월 데리고 있다가 채용할지 안 할지 볼 거예요."

"야. 이제 형편이 좋아진 모양이야. 사람도 골라서 뽑고."

"지금 우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중요해요. 자기 능력을 펼치지 못하면 큰일 나잖아요."

"그렇기는 하지."

"언니도 특별한 메뉴 개발 좀 도와줘요."

"나까지 고용하시려고?"

"언니는 나중에 사외이사로 초빙하면 되지 않을까?"

"벌써 상장하신 모양입니다."

"곧 그렇게 될 거야."


은지는 도성의 능력을 여러모로 인정했다. 하지만, 사람을 부리는 능력이 궁금했다. 일단 수정과 관계가 좋은 걸로 봐서 사람 관리 능력은 나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건 파티시에 수정도 잘하긴 마찬가지라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새로 들어온 직원과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졌다. 


은지는 늦은 밤 집에 도착했다. 여러 군데 투자하느라 작은 빌라로 이사한 지도 벌써 일 년이다. 매달 한번 딸 수민이를 보고는 있지만, 사업이 바빠져서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수첩을 꺼내 내일 일정을 살폈다. 딸을 만나러 가는 날인데, 다른 일정이 빽빽했다. 은지는 수민이에게 문자를 남겼다.

'수민아, 미안해. 엄마가 내일 너무 바빠서 다음 주에 가야 할 것 같아. 괜찮지?'

한참 후에 답장이 도착했다.

'괜찮아. 엄마는 바쁘잖아.'

그랬다. 은지는 수민이가 태어날 때부터 줄곧 바빴다. 지금도 바쁘다. 아마 계속 바쁠 것이다. 은지 뺨에 눈물이 흘렀다. 태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태성 씨 미안해. 내일 수민이 못 만날 것 같아. 대신 돈을 좀 보낼게.'

답장이 바로 도착했다.

'괜찮아. 내가 알아서 신경 쓸 테니, 당신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그럼 바로 보낼 수 있게 수민이 계좌 좀 만들어줘.'

더 이상 답장이 없었다. 이혼 전부터 하고 싶은 게 아니라고 수없이 떠들었는데 아직도 이 남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은지는 답답하기만 했다. 직원에게는 통하는 비전이 남편에게는 통하지 않는 현실이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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