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미국에서 이동할 일이 생겨 비행기를 탔습니다. 미국 국내선 여객기라서 주변은 온통 미국인만 가득했습니다. 영어도 잘 안되니까 이야기 나눌 상대도 없었습니다. 설상가상 갑작스러운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으로 발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출발도 못한채 비행기 안에서 몇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보통 곤욕이 아니었습니다. 좁디 좁은 비행기 안에서 몇시간 동안 화장실만 오가며 책만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계속하려니 여간 따분한 게 아니더군요. 그래서 한자리 건너 옆에 있던 젊은 미국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난 영어를 잘 못한다. 혹시 이 비행기가 언제쯤 출발하는지 아느냐?"
미국인 청년은 한참을 영어로 설명을 해주더군요. 사실 다 알아듣기도 어려웠습니다. 자기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일기예보를 보여주며 상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나는 마냥 "고맙다"라고만 하면 됐습니다. 그냥 그거면 충분했습니다.
사실 나는 일기예보도 안 궁금했고 비행기가 언제 출발하는지도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나에게도 스마트폰은 있으니까 검색해 보면 될 것이고, 승무원에게 물으면 될 일입니다. 방송도 쉬지 않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럼 왜 나는 그걸 물었을까요? 언제 떠날지 모르는 비행기 안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이야기 나눌 상대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서툰 영어로 그 친구와 이것저것 물으며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얼마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며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당일부터 노트북을 펴고 밀린 일과 줌 미팅으로 좀 바빴습니다. 남는 시간은 책도 읽고 블로그도 쓰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병실의 다른 환자분들과 이야기 나눌 기회가 적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앞에 입원해 있던 젊은 청년에게 물었습니다.
"저는 입원이 처음인데 식사와 샤워같은 것을 어떻게 해야하죠?"
나는 이렇게 요청만 하면 됩니다. 그 청년은 식사 나오는 시간, 샤워실 사용법, 침 치료 시간들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셨습니다. 특히 간호사의 성향부터 밤에 몰래 외출하는 방법까지 말입니다. 저는 추가질문과 리액션만 보이면 됐습니다. 나머지는 다 알아서 알려주었습니다. 괜히 물었다는 후회가 밀려올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병실에 있을 때는 환자들과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편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그냥 도움을 요청하면 됩니다. "혹시 이것 좀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을 도와주면서 보람을 느끼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아는 것을 이야기해 주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을 누군가 질문해 주면 오히려 감사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 심성 중에 하나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활용하면 됩니다. 질문하고 요청하고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 상대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정말 모르는 것이거나 사교성이 없는 사람이므로 그냥 넘어가면 됩니다.
어색한 사람들과 한 공간안에 있다는 것은 매우 난처한 상황입니다. 그 적막을 깨어버리면 아무것도 아닌데 시간이 길어질수록 더 깨기가 어려워집니다. 처음에는 불편한 상황이지만 나중에는 고통스럽게 변할수도 있습니다. 그때 이런 방법들을 활용해보면 아주 유용합니다.
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에도 비슷한 사례가 나옵니다. 사교 모임에 참석해서 친분 있는 사람들이 없다면 질문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정말 궁금한 것처럼 상대에게 묻고 리액션만 잘해주면 됩니다. 그럼 상대는 나에게 호감을 보이고 심지어 나에게 말을 너무 잘한다는 칭찬까지 하게 됩니다.
"말은 본인이 모두 했으면서 내가 말을 잘 한다니... "
조던 피터슨이 쓴 <12가지 인생의법칙>에서도 나오는 이것에 관한 말이 나옵니다.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일종의 교환행위로써 번저민 플랭크도 '이사를 가면 해 동네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맺는 가장 좋은 방법이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이다. 서로에게 채무관계가 발생하면 나중에 나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친밀감과 신뢰가 쌓이게 됩니다.
단순합니다. 질문을 하고 들어주고, 도움을 요청하고, 감사하다고 대답하고, 인사하고 이게 끝입니다. 궁금한 게 없는데 무슨 질문을 하냐고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질문하면 됩니다.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친해지려고 묻는 것이니까요. 상대가 알만한 것을 찾아서 물으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