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인생

by 행동하는독서

한 남자가 출장으로 국내선 비행기를 탔다. 부산에 마무리할 일이 있어서 새벽부터 일어나 겨우 탑승했다. 며칠 무리를 했기 때문에, 비행기에선 아무것도 안 하고 좀 쉬고 싶었다. 눈을 감고 잠시 잠에 빠져들려고 하는데, 지나가는 승무원이 다급히 깨운다.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무리를 했더니 몸에 탈이 난 모양이다. 승무원은 다급하게 자신의 손수건으로 피를 닦아주었다. 겨우 고개를 젖히고 얼음물 찜질을 해서 피를 멈추게 했다.

"감사합니다. 이거 손수건에 다 피가 묻었네요. 어쩌죠?"

"상관없습니다. 지혈이 금방 돼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래도, 제가 그냥 있을 수는 없구요. 연락처라도 알려주시면 돌려드릴게요."

"괜찮습니다. 그렇게 안 하셔도 됩니다. 즐거운 여행 되세요."

뭔가라도 보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친절하지만 직업의식이 철저한 건조한 대답뿐이었다. 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생각지도 않은 이 상황, 도움을 받긴 했는데, 자신의 손에는 그녀의 손수건이 들려있다. 화장지로 닦았다면 덜 미안했을 텐데, 하필 자신의 손수건으로 닦아주어서 불편하게 만들까? 이걸 그냥 가지고 모른척하기에는 상당히 불편한 감정이 생길 것만 같다. 다음 출장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다시 마주치기라도 할까? 가장 큰 문제는 저 승무원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이다.

목적지는 다 와가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남자는 용기를 내어 메모지에 자신의 연락처를 적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날짜와 시간과 장소를 적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짧은 멘트를 추가했다.

짐을 꾸려 출입구로 걸어가다가 그녀와 마주쳤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메모지를 쥐여주었다.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습니다. 기다릴게요."

아무 말도 못 하고 당황해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비행기에서 내렸다. 회사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리고 최대한 비슷한 손수건을 찾았다. 리본까지 달아 포장을 하고 부산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대학 때 치던 통기타를 들고 나와 바닷가 모래사장으로 향했다. 이미 바다는 어두워지고 가로등 불빛과 상가들 불빛이 환하게 모래사장을 채우고 있었다. ​


마음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그녀가 올까? 안 올까? 혹시 서울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전화를 할까? 아직도 부산에 있을까? 있다면 한번 본 남자를 만나러 올까? 뭘 믿고 이 밤에 바닷가를 나온단 말인가?

온갖 질문과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며 즐겨 부르던 노래를 불렀다.

왜 기타까지 가지고 나온 걸까? 그녀가 이 모습을 보면 더 멋지게 볼까? 웃기게 볼까? 너무 오버하는 걸까?

갑자기 기타가 거추장스럽다고 느껴질 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저, 손수건 받으러 왔는데요."


그렇게 둘은 사귀기 시작해서 결혼까지 골인했다. 그 남자와 어느 날 술을 한잔했다.

"형수님 놓쳤으면 어쩔 뻔했어요?"

"야... 그때 내 인생에 가장 큰 용기를 낸 날이다."

"그래서 지금은 안 싸우고 잘 사시죠?"

"말도 마라. 와이프가 얼마나 철저한지 아나? 지금도 내 앞에서 속옷을 안 갈아 있는다. 방문 잠그고 갈아입는다. 10년을 살았는데도 그건 안 변해."




그 남자에게서 얼마 전에 전화가 왔다. 딸이 결혼을 한다고 한다. 코로나로 많이 참석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올 수 있으면 오라고 했다. 시간이 그렇게 흘러 버렸다. 같이 일했던 사람들에게서 자녀 결혼 청첩장이 도착하다니.... 그 남자는 지금도 한 번씩 자신의 소식을 전해온다. 이제는 은퇴할 나이가 다 되어가는데도 기타를 들고 주말이면 멤버들과 노래를 부르러 다닌다.


"형님은 참 재미있게 사시네요."

"인생 뭐 있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기지."

"그 아름다웠던 승무원 형수님은 어찌하구요?"

"우리 와이프? 허락 없으면 내가 이렇고 돌아다닐 수 있겠나?"




페이스북에서 그를 다시 보았다.​​

하얀 재킷에에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어깨에 기타를 매고 있다. 숲이 보이는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보인다. 드럼도 있고, 전자피아노도 보인다. 나이 들어서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그가 멋지게 웃고 있다.

"내 이래도 대학가요제 출신 아니것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