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의 이름은 나탈리아.
헤어지면서 아내는 나탈리아를 꼭 안았다.
우연히 미용실에서 만나 친구처럼 지내던 네일아트 전문가이다. 그녀의 국적은 러시아, 우리가 흔히 고려인이라고 하는 한국인이다. 노란색 머리로 염색을 하고 짙은 눈 화장을 한 그녀는 얼핏 한국인으로 보이지만 동시에 이국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한국에 와서 좋은 사람 많이 만났어요. 정말 감사해요."
그녀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아내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탈리아 이번 주에 러시아 간다네, 바쁘지 않으면 이리로 와요. 같이 점심이라도 먹게."
나는 바로 달려갔다. 나탈리아는 한국에 온 지 5년 정도 되었지만, 한국말이 아직은 유창하지 못하다. 음식도 차라리 러시아식이 편한 사람이다. 그래도 한국 음식에서 좋아하는 것은 부대찌개, 칼국수 등이었다. 아내는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고 싶어 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면서 꼭 맛있는 것을 사주고 싶다고 해서 차에 태워 교외의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아내는 같이 사진을 많이 찍어두고 싶어 했다. 이럴 때는 사진을 좋아하는 내가 꼭 필요하다. 뒷좌석에 던져진 책을 보며
"이거, 나온 책이에요?"
"아니. 나탈리아 책 나오려면 몇 달 걸려요."
이번에 알았다. 나탈리아가 시를 쓰고 싶어 한다는 것을.
처음 만났을 때도 나탈리아는 러시아에서 대학까지 나왔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그게 중요한가 싶었던 마음은 곧 공감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에서 한국까지 오게 된 길은 얼마나 멀고 아득했을까? 남편 따라온 한국은 얼마나 어색하고 낯선 조국이었을까? 말도 통하지 않던 조국. 러시아에서 뭐가 되었던 한국에서는 그녀의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니었으리라. 누구도 반겨주지 않는 할아버지의 나라. 그렇게 한국에 온 러시아인들은 자기들만의 동네를 만들어 모여살고 있다.
나탈리아는 아내를 참 좋아했다. 네일아트를 해주면서도 돈 한번 받지 않았다. 덕분에 아내는 항상 이쁜 손톱을 유지할 수 있었다.
"나탈리아 가면, 나 손톱 누가 해줘?"
아내는 아쉬움을 손톱으로 대신하며 나탈리아를 안아주었다. 손톱은 손톱이 아니었다. 나탈리아의 우정이었고 감사의 선물이었다. 아내는 나탈리아에게 무언가 해주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마음만큼 뭔가 제대로 해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모양이다.
나탈리아는 한국에서 계속 살기를 원했다. 사춘기 딸도 한국에 어느 정도 적응하기 시작했고, 부모님도 자매도 모두 한국에서 정착했으니 러시아로 돌아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남편은 한국보다 러시아가 편했고, 가족들이 있는 러시아로 돌아가고 싶었으리라. 착한 나탈리아는 남편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남편과 딸 마리나는 이미 러시아에 들아가서 적응하고 있었다.
"나탈리아, 마리나가 한국에 가서 살고 싶어한다고 남편을 잘 설득해."
"마리나 지금도 문자와요. 나 한국이 좋아요."
"그래, 마리나랑 다시 꼭 와야 해."
비행기로 9시간을 가야 한다고 하는 러시아. 가야 할 시댁은 시골, 가면 농사를 지어야 하고, 시부모님을 모셔야 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에게는 더 마음 편한 안식처일지도 모른다. 여기서는 비슷하게 생긴 낯선 이방인지만, 거기에는 자기들 땅이 있고 모여 살 가족들이 있으니...
2년 전에 나탈리아 러시아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송년회를 한 적이 있다. 고려인이라 말하는 그들과 같이 먹고 이야기 나누던 시간이 머리를 스쳐간다. 자신들의 음식을 가지고 우리를 방문했었다. 우리 입맛과는 동떨어져서 어색했지만 같이 보내는 시간들이 참 오래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 들어와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지만 표정은 밝았고 유쾌했다.
나탈리아 집에 놀러 갔을 때도 귀한 음식이라고 간으로 만든 소스와 빵을 내어주었다. 취향이 맞지 않았지만 맛있어야만 했다. 러시아가 추운 지방이라 지방과 칼로리가 높은 음식들이 많았다. 느끼한 것을 싫어하는 한국인들과는 입맛이 많이 달랐다. 그래도 음식이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나탈리아 덕분에 러시아 식당도 다녀왔다. 우리 식으로는 꼬치구이처럼 생긴 샤슬릭이라고 하는 전통 음식도 맛볼 수 있었다. 그래도 이 정도 경험했으면 나중에 러시아 놀러가도 조금은 익숙하지 않을까 싶다.
만약, 나탈리아가 한국에 들어오지 않으면 아내는 러시아에 놀러 갈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리 어렵지 않은 문제이다. 일주일의 시간과 비행기값만 있으면 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왜 이리도 헤어짐은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모르겠다. 역시 헤어짐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인가보다. 지난주에 제주도에 다녀왔다고 한다.
"제주도 정말 좋아요. 또 가고 싶어요."
"그러니까, 한국 꼭 다시 와야 해~~"
"잊지 않을게요. 좋은 사람 많이 만나서 감사해요."
아내는 나탈리아를 꼭 안아주고 있었다. 나탈리아도 아내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