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충주에 들렸다가 독립서점을 방문했다. 고르고 골라 책을 한 권 구입했는데 영화에 대한 소감을 적은 책이었다. 아직 모두 읽지는 못했는데 눈에 들어온 꼭지가 바로 <8월의 크리스마스>이다. 검색해 보니 1998년 1월 작품이다. 그때는 개봉작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IMF를 맞으며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한참 지나서 혼자서 조용히 본 기억이 난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전에 시간 여유가 생겨 이번에도 혼자 영화를 봤다. 20년이 지나고 보는 배경은 추억을 불러오기에 충분하다. 1998년이 저 정도였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거리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을 보니 1997년이 맞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팩트이다. 그런데 느낌은 아주 오래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1980년대 영화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1998년은 영화의 장면보다 더 세련되었는데 말이다.
숫자로 계산해 보면 그때는 필름 카메라를 쓰고 있는 것이 맞다. 그런데 훨씬 더 오래전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나는 당시에 펜탁스 카메라를 쓰고 있었다. 아그파, 코닥, 후지 같은 회사의 필름을 넣으면 적게는 24컷에서 많으면 36컷까지 찍을 수 있었다. 초점을 자동으로 맞추어주는 자동카메라였다. 사진관에 맡기면 빠르면 이틀이 지나서야 겨우 확인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느렸고 지금은 빠르다. 그럼 그만큼 우리가 더 행복해지고 즐거워졌는지 모르겠다. 분명 거리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보다 더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차를 타고 있어도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라면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갈 수만 있다면 말이다. 현대의 빠른 삶에 익숙해진 내가 과거의 느린 삶으로 돌아간다면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주인공 한석규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삶에 한 여인이 문득 들어온다. 너무 사랑스러운 그 여인에게 다가설 수 없는 주인공의 담담함이 그려지는 영화이다. 자신이 없어진 미래를 위해 기계 작동법을 적어두고, 아버지 리모컨 사용법을 알려드리고, 친구들과 마지막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어둔다. 마지막 홀로 조용히 앉아서 영정사진을 찍어두는 모습을 통해서 죽음을 생각해 본다.
이 영화가 좋았던 점은 아픈 사람의 삶을 병의 관점보다는 그냥 일상을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병원이 잠시 나오기는 했지만 대부분 사진관을 평소처럼 운영하고 있다. 출장을 나가기도 하고 스쿠터를 타고 동네를 오고 간다. 과거에 사랑했던 동생의 친구를 스스럼없이 만난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은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 새벽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있다. 영화의 죽음과 수용소에서의 죽음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자신의 일상을 지켜낼 수 있는 죽음이 얼마나 행복한 죽음인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공포에서도 도덕적 가치를 지켜내는 죽음의 차이를 생각해 본다. 희망이 없고 목표를 세울 수 없는 상황이 얼마나 우리를 허무하게 만들 것인가? 죽음을 앞에 두고 나서야 우리는 더 고귀한 삶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 정원은 사랑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도 새로운 사랑을 조금씩 경험한다.
결국 죽음의 순간에 우리가 가장 가치있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람이고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 의미 있는 추억,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마음만이 남는 것 같다. 사실 영화 속의 주인공보다 나는 더 많은 것을 가졌고, 느꼈을 뿐 아니라, 더 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있다. 하지만 죽음은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찾아오는 거부할 수 없는 순간이다. 그들에게 마지막 나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기억하게 하려면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내야 하지 않겠나?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생각했다.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잊혀진다는 것은 진짜 죽는 것임을 보여준다.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8월의 더운 여름날에 만난 정원에 대한 다름이의 풋풋한 사랑의 기억이 크리스마스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기억을 안고 떠날 수 있었던 정원에게도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을 수 있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이 꿈꾸는 마지막 죽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