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은 선물이 아니었다.

by 행동하는독서

지난가을, 장인어른의 생신날이었다. 마침 백화점에 나왔다가 구두를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모시고 오지 않았으니 치수만 알아냈다. 해당 사이즈 앞에서 고민에 빠졌다. 어르신 구두로 무엇이 좋을지 고르기가 만만치 않았다. 그때 딸로 보이는 한 여성이 아버지를 모시고 나온 듯 구두를 고르고 있었다. 어르신은 두 개의 구두 사이에서 엄청 고민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불쑥 끼어들어 개인적 견해를 말씀드렸다.

“제가 보기에는 이 구두가 어르신에게 더 어울리실 거 같은데요.”

어르신은 고맙다고 말씀하시며 딸을 향해

“봐라 이 사람도 이게 더 낫다고 하지 않니?”

결국 두 부녀는 내가 골라준 구두를 구매하셨다. 그래서 비슷한 구두를 구매하면 되겠다는 힌트를 얻었다.

그래도 구두는 개인적 취향이 있기 때문에 장인어른께 전화를 드렸다.

“끈 없어야 하네. 색은 검은색이 좋아. 그리고 밑창에 하얀색은 안되네.”

듣고 보니 나름 원하시는 스타일이 있으셨다. 편한 구두 중에 비슷한 것을 사진 찍어 몇 번을 메시지 드린 후에 허락을 받았다. 마음에 드는 구두를 30여 분 만에 결정했다. ​​


구두를 받아보신 장인어른은 무척이나 맘에 들어 하셨다. 그리고 저녁에 장인어른 형제분과 저녁을 드시는 자리에서 구두 자랑을 하셨다.

“우리 사위가 비싼 구두를 사주었어요.”

그때 갑자기 막내 작은 아버님이 한 말씀하셨다.

“구두는 선물하는 거 아닌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다른 형제분들의 반응도 심상치 않았다.

"안되지... 구두 선물은 이별을 뜻한다는데, 먼저 저세상 가란 말도 아니고..."

나는 그런 건 징크스라고 다시 말씀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형님 구두는 선물 받는 거 아닙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차가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항변해도 형제분들 모두 구두는 선물로 부적당하다고 이미 입을 모으셨다. 그래서 물었다.

"그럼, 어쩌죠? 벌써 선물로 드렸는데요."

"선물은 안되니까, 구두값을 받아야지!"


결국 형제분들의 강력한 주장을 이기지 못하시고 장인어른은 지갑을 가지고 나오셔서 사위에게 구두값을 주셨다. 나중에 다시 드리려고 해도 이미 구두는 이별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따로 챙겨드렸던 돈이 있었기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나름 어렵게 준비한 선물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니었다.

우리의 의식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고정관념은 이토록 무섭게 작용한다. 그게 옳고 그르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대로 믿는 힘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사람의 90%는 이별을 할 것이다. 그 많은 사람을 알고 지내고 있다면 우리는 바빠서 자신의 삶을 살기 어려울 것이다. 구두를 선물한 사람이 이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선물을 주었던 그 사람과 이별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검증 없이 받아들이는 징크스는 매우 강력한 사실로 우리를 지배한다. 특히 운동선수들에게는 더욱 강력하다고 한다. 타석에 들어서는 선수는 어떤 발이 먼저 나가는지도 중요하다고 한다. 큰 경기를 앞두고 수염을 안깍는다든지, 속옷을 갈아입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루틴을 깨지 않으려는 노력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자신의 실력 부족을 다른 곳에 전가하는 나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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