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문득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의 황혼을 읽고 있노라니 '나이듬'이란 주제가 자꾸 떠오른다. 노인이란 말은 누군가 내게 판결을 내려준 것일까? 내가 인정하는 순간 노인이 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그래야만 하는 배역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노인은 노인에게 맞는 옷이 있다는 생각들. 나이가 들면 체념보다는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한다.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아이들의 나이가 부모의 나이가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실제적 부모의 나이를 떠나서 우리 아이 또래의 부모 평균 나이를 자신의 나이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통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 아빠 나이가 평균 35세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그 정도 나이라고 착각한다. 거울을 보는 남녀도 실제보다 자신을 착각한다고 하니, 인간은 쉽게 착각하는 동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얼마 전에 친구를 만났는데, 일찍 결혼해서 이미 아들이 군대까지 다녀온 부모이다. 그 친구와 이야기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또 다른 친구를 만났다. 중소기업에서 이사를 하는 친구인데 역시 이야기의 주제가 투자, 부동산, 퇴직에 관한 주제이다 보니 나이를 더 실감하게 된다.
아내의 친구 중에 늦둥이 셋째를 낳은 부모가 있다. 페이스북에 막내 사진이 자주 올라온다. 아이 데리고 산책하고 재롱떠는 영상이나 사진들을 보면 그냥 어린아이를 둔 부모 모습이다. 물리적 외모는 왕 언니지만 마음만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사실 친구중에 우리 막내가 어린편에 들어가기 때문에 나 스스로도 약간은 착각하고 사는 면이 있다.
사회적으로 통념되는 나이에 맞는 행동, 격식, 문화를 조금은 거부할 필요도 있는 거 같다. 40대에 맞는 것, 50대에 맞는 것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남자 나이 40대에 지방간 정도는 당연한 거라고 치부하는 사람도 보았다. 대체 누가 그런 것을 정했단 말인가? 예전에는 40대를 불혹이라고 했지만 40대에 이립을 다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세상은 분명 그런 것이 가능한 세상이고 그래야 한다. 단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회적 책임이라는 부분을 좀 더 고려했으면 한다.
젊게 산다는 것은 외모만을 젊게 꾸미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느끼는 느낌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라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심리학 실험에서도 밝혀진 사실이다. 노인들을 모아서 젊었을 때의 환경을 만들어 주었다. 그때 시절의 대화를 나누게 했고, 젊은 시절에 보였던 영상, 신문 등을 제공했다. 스스로 집안일에 참여하도록 유도했다. 그런데 정말 건강도 좋아지고 신체 나이도 떨어졌다고 하니 우리 신체는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가 보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지 않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 추억을 많이 떠올리기.
젊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하기.
디지털 문화에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기.
많은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도전하고 배우기.
나이 들었음을 수용하지만 체념하지 않기.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기.
긍정적인 환경에 나를 두기.
부정적인 사람을 멀리하기.
실존주의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은 없다. 그런 행동만이 존재할 뿐이다."
노인의 행동을 하면서 우리는 노인이 되어갈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대우 받는대로 행동한다. 주변에서 나이들어가는 사람으로 나를 대하면 나 스스로도 그렇게 변할 것이다. 주변에서 나를 더 젊게 인식하도록 한다면 나 스스로도 좀더 젊다고 인식할 것이다. 특히 부모가 했던, 선배가 했던 그대로를 모방하면서 스스로 나이 들어감을 인정할지도 모른다. 과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조금은 젊게 행동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