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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는독서 Feb 05. 2022

더 쉽게 갈 수 있었지만, 혼자 해내서 얻은 것들

책을 쓰기로 결정만 하면 됐습니다. 재료는 매일 쓴 것들이 있었기에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의 글쓰기 수준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행하게도 이웃분들이 잘 읽힌다고 댓글 달아준 피드백이 전부였습니다.

일단 책에서 본 대로 출판 기획서를 만들었습니다. 나의 소개, 글을 쓰게 된 배경, 의도, 대강의 목차, 경쟁 도서, 그리고 이미 쓴 글 중에 적당한 것을 하나 추가했습니다. a4용지 3장 정도 분량의 출판 기획서를 출판사에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원고를 다 만들지 않은 이유도 있습니다. 전에도 그 배경에 관련된 글을 썼지만, 콘셉트가 맞지 않으면 소용이 없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계약이 되면 출판사 방향에 맞는 콘셉트로 완성된 원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투고에 대답이 없는 출판사나 형식적 대답을 해주는 곳도 있지만 가끔은 도움이 될거 같다며 몇줄 적어주는 출판사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비록 거절이지만 냉정하게 나를 돌아보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아무리 투고를 해도 연락도 없던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블로그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강사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책을 내도록 도와주는 강사들로, 적게는 몇십만 원부터 많게는 몇백만 원도 받더군요. 그래서 몇 군데 문의도 해보았습니다. 빠르면 한 달 안에도 출간이 가능하다고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어차피 나는 재료가 어느 정도 준비가 되어 있으니 책에 맞게 수정만 되면 바로 출간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투고가 점점 어렵다고 느껴질 때 이런 유혹은 매우 강력하게 다가왔습니다.

처음부터 글 쓰는 교육을 해주고, 글의 주제도 주는 것 같더군요. 거기에 맞는 글을 쓰면서 매일 모인 것들을 가지고 출판 기획서도 만들어주고 투고할 출판사 리스트까지 주는 모양이었습니다. 후기를 보니 시작한 수강생들의 대부분이 출판사 계약이 이루어져다고 하니 갈등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출판사가 좋아할 콘셉트나 의도 등의 공식이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역시 혼자서는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조직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작가들을 양성해 내는 것이었구나.'


그러다가 문득, 책 한 권 내자고 그렇게 많은 돈을 쓰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아내가 옆에서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혼자 하면 힘은 들겠지만, 하나하나 고민하고 성취해 내면 그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까?"

그래서 오기가 좀 생긴 것 같습니다.

'그래, 어차피 혼자서 시작한 일인데, 끝가지 내 손으로 해보자. 이런 것들이 나의 경쟁력이 되는 거지. 남들이 도와주고 쉽게 한일은 또 그만큼의 단점이 있는 거지.'

자비 출판도 생각해보곤 했습니다. 몇백만원을 내면 어렵지 않게 출판을 해주는 출판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내는 것이 아니라 팔리냐는 것입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책은 그냥 브랜딩의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출판사에서 인정할 만한 원고를 쓸 수 있는 내가 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참고할 거라고는 블로그에서 찾은 투고하는 법과 책쓰기에 관한 책뿐이었습니다. 사실 내 주변에는 책을 낸 사람들도 없었기 때문에 망막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밤호수님이 책을 내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대뜸 원고 이야기가 나왔고 일주일 만에 원고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원고를 만드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재료가 준비되어 있므로 며칠 작업만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콘셉트를 가지고 블로그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그냥 매일매일 쓰고 싶은 글을 쓴 상태이므로 제대로 된 콘셉트가 중요했습니다. 출판사와 협의해서 하려 했던 작업을 이젠 스스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주제를 바탕으로 그동안 썼던 글을 분류했습니다. 그렇게 만든 것이 <가서, 만나고, 이야기하라>입니다.


보통은 주제와 콘셉트를 잡고 소주제를 정한 뒤에 꼭지를 잡아나가며 글을 쓰지만 저는 이미 쓴 글들에서 관통하는 주제를 나중에 잡아서 정리한 책입니다. 물론 매일 생각나는 것들을 쓴 것이라서 흐름을 잡아야 했기에 편집에 많은 시간이 들어갔습니다.

얼마 전에 블로그 이웃과 통화를 했습니다. 저에게 책을 낸 과정에 대해서 몇 가지 질문을 하시더군요. 그에 대한 답을 하다 보니 한 시간가량 통화가 길어졌습니다. 지금 이 글처럼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무척이나 재미있다고 하셨습니다. 북토크때 이런 이야기 많이 해줄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과정이 궁금하다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해결해 나가는 것은 매우 어렵고 망막한 작업이었지만, 일단 결과를 내고 보니 이 모두가 하나의 에피소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또한 너무 기분 좋은 일입니다. 돈을 주고 금방 했더라면 이야깃거리가 될 수 없었겠죠. 하지만 누구에게라도 궁금한 것을 알려줄 수 있게 된 나 자신이 대견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글을 제대로 쓸 수 있도록 코치는 못하겠지만 책을 내도록 하는 방법은 이제 안내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이 어떤 평가를 내주실지 기대반, 우려반입니다. 하지만 이 또한 잘 받아들이면 다음에 더 좋은 책을 쓰는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하며 겸허하게 받아들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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