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가서 만나고 이야기하라>를 내면서 소개했던 만년필이 생각났다. 최근에는 디지털 도구를 이용하느라 어느새 뒤로 묻혔던 아날로그 도구 만년필. 어느새 나는 종이도 소비하지 않고 있었다. 책을 내고 나니 누군가가 나에게 사인을 부탁했을 때, 새벽 도덕경 필사를 시작하고 오랜만에 노트에 글을 적어 내려갈 때, 그 어색한 느낌을 아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아날로그 세계에서 다소 멀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책도 전자책으로, 메모도 전자도구로, 가끔 글을 써도 전자펜을 이용하고 있었다. 사실 글씨가 제대로 써지지를 않는다. 길게 글을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바로 다음 날 만년필을 주문했다. [행동하는독서]라는 이름도 각인에 넣었다. 아주 대중적인 제품으로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제품이지만 별로 사용할 일도 없는 펜을 구매할 수는 없었다. 나는 참 실용적인 사람인 모양이다. 사는 것도 조심스럽지만, 사고 나면 잘 버리지도 않는 사람이다. 각인하면 좀 더 내 것처럼 느껴질 것만 같았다.
역시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제품인 만큼 그만한 이름값을 했다. 부드러운 필기감, 가벼움, 각인,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빠진 듯한 이 기분…. 얼마 전 북 토크에서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사람, 인연이야 뭐 당연한 이야기이고, 정말 나에게 소중한 물건이 무엇일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사실 나는 어떤 물건이든 소중하게 다루는 편이다. 그래서 일단 내 손에 들어오면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수명이 긴 편이다. 2년 쓴 핸드폰도 거의 새것 수준으로 유지할 정도이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앨범, 일기장, 핸드폰이었다.
물건이야 다시 살 수도 있지만, 다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바로 나의 발자취이다. 카메라나 핸드폰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도 이 도구들을 이용해서 남겨지는 사진과 나의 추억 때문이다. 컴퓨터에는 디지털로 만들어진 사진들이 정리되지 않은채 엄청난 용량으로 쌓여있다. 구글 포토에 쌓인 사진을 위해서 돈을 지불할 마음도 있다. 최근에는 에버노트에 저장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 산 펜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같이 지내온 시간이었다. 15년 전에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사람에게서 선물 받았던 만년필, 책의 한 꼭지를 담당했던 만년필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책을 쓰면서도 생각에 머물렀던 만년필을 다시 찾았다. 책상 서랍 안쪽에서 찾아낸 만년필은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안고 있었다. 이미 잉크는 다 말라버려 투명한 컨버터에는 검은색 아쉬움만 남겨져 있었다. 수분이라는 생명력을 잃어버린 채 몇 년의 세월을 서랍에서 홀로 보낸 흔적이었다. 무덤에서 다시 꺼낸 건조한 물건에 다시 생명을 넣기로 했다. 잉크병을 찾아보니 그 역시도 반이나 남아있었던 것으로 기억했건만 검은색 잔여물만 남겨져 있었다.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잉크도 새롭게 주문했다. 마지막 만년필을 쓴 것이 언제였던가? 그동안 나에게는 키보드와 애플펜슬 같은 새로운 친구들에게만 익숙해져 있었구나…….
나는 잉크카트리지보다는 컨버터를 더 선호한다. 잉크병에 넣어 컨버터를 채워 넣는 과정이 참 좋다. 아날로그적 감성이 더 좋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 손이 가는 귀찮음이 많을수록 애정은 더 쌓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편한 것이 있음에도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는 인간의 심리를 잘 모르겠다. 손에 묻은 잉크가 좋다. 만년필이 종이 위에 스쳐 갈 때 손으로 전해져오는 사각거림이 좋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감성이랄까?
새로 구매한 잉크를 채우고 글씨를 써보았다. 잉크가 제대로 흘러나오지 않는지 자꾸 글씨가 끊어진다. 하지만 상관없다. 이 만년필은 그냥 다시 세상에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새로 산 만년필보다 이 친구에게 자꾸 손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데 이 친구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 자꾸 잉크가 마르고 글씨가 써지지 않는다. 새벽 도덕경을 이 친구에게 맡기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다.
이 친구를 목욕시키기로 했다. 처음으로 완전분해를 했다. 펜촉, 피드, 몸통을 분리해 냈다. 뜨거운 물에 펜촉을 담그자 선명한 잉크의 색이 그림을 그리듯 깨끗한 물에 무늬를 그려갔다. 옆에서 우리 아이들이 묻는다.
"와 신기하다…. 이게 뭐예요?"
한참을 만년필에 관해서 설명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눈빛이다. 하긴 나도 이해가 가질 않는다. 왜 이런 작업까지 하며 아날로그 도구를 쓰려고 하는지?
피드에 끼인 잉크 찌꺼기까지 다 세척하고 정성스럽게 물기를 닦다 보니 장인이 된듯한 착각에 빠진다. 옆에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로 보는 아이들과 좋은 경험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 시간이 아깝지 않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같이 보낸 시간만큼 정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아이가 펜을 써보고 싶다 해서 건네주었다. 역시 첫 글자는 자기 이름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 소중하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오~~~ 이런 느낌이구나.”
긍정도 부정도 아닌 감탄사.
다시 조립하고 새 잉크를 채워 넣는 순간은 기대 반, 흥분 반이다. 과연 처음처럼 나를 잘 따라와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