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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지배하는 약속

by 행동하는독서

오전 시간 지방에서 약속이 있었다. 10:30분까지 시간을 정하고 나니 출발 시간이 정해졌다. 포스팅할 글을 최소한 50%는 써 놓아야 중간에 점검하고 발행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미라클 모닝에서 어제 주문한 책을 읽고 서둘러 블로그 글을 썼다. 업무에 필요한 내용들을 챙기고 샤워를 하니 시간이 얼추 딱 맞게 떨어졌다.


약속이 있던 지방은 얼마 전에도 <꿈의 도서관>업무 때문에 블로그 이웃을 만났던 곳이다. 그때 만났던 카페로 다시 약속 장소를 정했다. 정원이 잘 가꾸어져 있었고 프라이빗 공간도 있어서 이야기하기 딱 좋다고 생각했다. 잠시 그분의 블로그 댓글을 달다 보니 더 좋은 몇몇 카페들이 또 올라오는 게 아닌가? 근처에 다른 좋은 카페 추천 바란다는 카톡을 보냈다. 친절하게도 추천할 만한 몇 군데 카페를 보내주셨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만날 분에게 약속 장소 변경 연락을 했다.


저수지를 끼고 있는 카페에 도착했는데 뜻밖에 너무 조용해서 쉬는 날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했다. 물멍 충분히 즐기라는 블로그 이웃의 카톡이 도착했다. 정말 물멍하러 사람들 꽤나 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야외 테라스를 돌아 출입구를 찾았다. 그 큰 카페에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을 보니 10:40분. 약속한 분이 늦는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짐을 풀고 주문할 곳을 찾으니 입구에 키오스크만 달랑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소한 문화를 가진 카페에 오면 참 피곤하다. 주변에 안내 글씨가 참 많고 반드시 읽어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키오스크에서 주문하고 별관으로 음료를 찾으러 가야 한다. 이 카페의 프로세스를 읽고 이해하는데 10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커피를 가져오고 노트북을 펴니 10:50분이 넘었다. 상대는 한참 후에 올 것이고 한동안 넓은 카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토록 기다리던 나만의 시간이 뜻밖에 찾아온 것이다.


오전 시간을 복기해 보니 참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제는 이 시간에 집에 있었고 아내와 차를 마시며 천천히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엇이 어제와 다른 오늘을 만들었는가? 바로 약속 때문이다. 약속은 시간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이다. 약속 때문에 시간이란 것을 효율적으로 쓰고 있었다. 미라클 모닝도 약속을 했고 그 시간에 무언가를 해야 했다. 글쓰기도 나 스스로와 만든 약속이었고, 출퇴근 시간을 뚫고 고속도도를 달리게 만든 것도 약속 때문이다. 무엇을 하기로 한 계획이든 만나기로 한 시간 약속이든 약속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 무언가를 하고 있다. 마감이 있어야 글이 더 잘 써진다는 작가들의 푸념도 모두 약속 때문이다.


24시간을 버릴 수 있는 쉬운 방법은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으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는 그토록 길게 느껴질 수 없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카이로스 시간이라고 한다. 그리스에서는 누구나에게 공평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크로노스의 시간이라 하고, 나에게만 느껴지는 시간을 카이로스 시간이라 정의했다. 크로노스의 시간 개념을 카이로스로 가져오는 방법이 약속이다. 언제까지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 목표, 목표에는 반드시 언제까지 하겠다는 시간의 개념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결단도 마찬가지이다. 누구를 만나기로 한 약속도 대부분 시간을 정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거기에 맞추어 사는 사람들은 카이로스 시간대로 사는 것이다. 시간을 내 맘대로 느리게 가게 만들 수도 있고 빨리 가게 만들 수도 있다. 시간에서 의미를 빼면 느려질 것이고 의미를 부여하면 빨라질 것이다. 나름 집중할 때와 쉼을 정하고 시간을 지배해야 내가 원하는 일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


어떤 일에 게으름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약속하기를 두려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용감한 사람은 과감하게 약속을 한다. 약속이란 것은 일종의 계약이므로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성취의 기쁨과 실패의 두려움이다. 약속은 두 가지에 사인을 하는 행위이다. 그래서 약속하는 사람은 용감하다. 약속이란 계약으로 자신의 시간을 지배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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