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칭은 관계를 결정한다. 그래서 우리는 수평적 호칭을 구사할 필요도 있다. ‘~씨’, ‘~님’이란 호칭은 수평적 호칭이다. 수직적 호칭을 사용하면 높고 낮음을 만들어낸다. ‘사장님’이란 호칭은 우리 무의식에 ‘높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자신도 모르게 낮은 자세를 취하게 된다. 같은 호칭을 반복해서 사용할 경우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에 관계를 결정한다. 예전에는 대통령을 각하라고 호칭하며 무거운 관계를 만든 적도 있다.
새로운 관계가 필요하다면 새로운 호칭이 필요하다. 이미 우리가 인식하는 호칭은 무의식에서 비슷한 관계를 만들어 낸다. 직업도 마찬가지이다. 이름을 바꾸면 다르게 보이고 실제 다른 면이 부각된다.
호칭에 대한 느낌과 감각은 깊숙이 뿌리내려 자신도 모르게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가 ‘아빠’라고 했을 때 크게 2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생리학적으로 낳아준 ‘아빠’라는 의미가 있을 것이고, 사회적으로 나를 키워준 의미의 ‘아빠’가 있을 수 있다. 전자는 자연스러운 아빠지만, 후자는 노력을 요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평생을 아저씨라 부르며 지내기도 한다. 관계가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져 살던 아빠를 만났을 때 아빠란 호칭이 매우 어색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이가 아빠라고 불러 줬을 때 눈물 흘리는 광경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아빠라고 불러 쓸 때 비로소 내가 아빠가 되는 것이다. 말이 힘이란 이렇게 무섭다.
부부 사이에도 관계를 결정하는 호칭이 존재한다. 평생을 높임말로 부르는 관계는 함부로 대하기 매우 어렵다. 그래서 나는 어디서도 아내를 막 부르지 않으려 한다. 심지어 부모님 앞에서도 ‘~씨’붙여 부른다. 그래서 우리가 부부인지 몰랐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어려서부터 ‘아빠’보다는 ‘아버지’가 편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아버지와는 살가운 관계를 가지지 못했다. 예의라는 배경 속에 엄한 관계라고 할까? 그래서 아들에게는 ‘아빠’라 부르라 했다.
사회적 관계에서 편한 호칭을 쓰다 보면 애매한 관계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사회적 호칭을 고수하려 한다. 사람이 편해지면 항상 실수가 따르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감이 있을 때 안전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면이 타인의 눈에는 보수적으로, 조심스러움으로 보일 수 있다. 최근에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생각을 정리해 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