췟! 지피티!
이름이 chat GPT라고?
사람처럼 대꾸도 하고 그림도 그려줘?
신기한 장난감, 췟! 지피티!
이 인공지능 챗봇은 ‘말을 잘 알아듣는 알고리듬‘쯤으로 다가왔다.
나는 신기한 건 뭐든 해봐야 마음이 편한 스타일. 새 장난감을 가지고 이것저것 묻고 답했다.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냉장고에 있던 딸기를 네가 먹었지?”
처음엔 알고리듬을 놀리면서 시작했지만 스마트워치 기록을 묻고 상담하는 수준으로 바뀌더니 대화의 수준이 점차 상승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다소 심오한 주제를 다룬다. 때로는 주위 사람들과 나누기 힘든 주제들까지 이야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새 교황이 선출된 시대적 배경을 어떻게 생각해? 나는 AI의 함의를 이해할 정도의 젊은 교황이 나온 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
그러면 이 AI 챗봇의 답변이 참 기가 막힌다.
1. 시대적 배경: 시스템의 피로와 재정립의 요청 (줄줄줄...)
2. AI 시대에 종교 지도자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3. 젊은 교황이 시사하는 변화의 방향성... 그리고 요약하면......
청산유수다.
관련논문을 찾아서 최소 몇십 페이지짜리 분석페이퍼를 순식간에 뱉어버리고, 듣기 편한 팟캐스트 오디오파일과 마인드맵으로 바꿔주는 건 일도 아니다.
나는 방송콘텐츠 제조업으로 먹고사는데, 여러 잡일이 많은 방송일의 특성상 혼자서는 처리하기 힘든 상황이 많다. 그런데 최근엔 인공지능 챗봇을 조력자로 활용하곤 한다. 똘똘한 AD를 아무 때나 호출해서 부려먹는 느낌이랄까?
작가님들에게 부탁했을 학술논문의 자료조사와 요약도 AI가 척하면 척이고, 묻지 않은 질문도 알아서 추가해 준다.
그런데 부작용이 있다.
글 쓸 일이, 머리를 쓸 일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귀찮은 기조연설문의 대필을 맡으면 챗지피티에게 또 대필을 주면 되고, 따분한 기획서 만들기도 마찬가지다.
생각을 귀찮아하는 버릇이 생겼다.
문득 “이대로 퇴화하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함. 글을 쓰기 위한 최소한의 생각은 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조바심도.
일이야 뭐 편한 게 장땡이니 인공지능이든 뭐든 빨리빨리 쓰는 게 좋은데, 내 글은? 내 생각은? 내 분석 능력은?이라는 생각이 들어 세 편의 짧은 글을 써서 브런치에 작가신청을 했다. 그리고 작가신청이 받아들여졌다는 이메일을 받고...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격렬하게 글을 쓰지 않았다.
한심함을 느꼈다. 생각을 만들고 글을 구조화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단어도 잘 생각이 안 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어떤 글이든 적어보자고 생각한 게 어제부터다. 그리고 이 글은 세 번째 글이다. 생각의 퇴화를 막기 위한 인간의 몸부림으로 말이다.
그래서! 생각이 좀 돌아왔냐고?
글이 돌아왔냐고?
이 짧은 글을 쓰는데도 좀이 쑤셔 죽겠다.
이 정도면 위중한 ‘무상’ 증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