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VS 샌델

날 선 대화

by 이야기공간 낄낄



피케티는 왜 그렇게 날이 서 있었을까?


피케티와 샌델의 대화를 정리한 ‘기울어진 평등’


피케티의 말투가 마음에 걸린다.

차분한 언어 속에 담긴 날 섬과 분노.


“평등을 위해 어떤 것이 좋겠습니까?라는 샌델의 질문에 곧바로 쏘아붙인다.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는 민주당이 뭘 했습니까? 구호만 잔뜩 외쳤지 않았습니까? 평등을 위한 협의체부터 만들자고요?

다 좋습니다. 그런데 결국 아무것도 구체적이지 않았잖아요.”


그의 말에서 냉소를 느꼈다.

평등을 말하는 이들이 오히려 부를 독점하고 있다는, 그 오랜 역사의 반복을 바라보는 자의 무력감.

하버드 출신, 말 잘하는 사람들, 도덕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


피케티는 줄곧 하나의 메시지를 주장해 왔다. 기울어진 부의 구조를 실질적으로 재분배해야 한다고. 그는 말장난을 멈추고, 실제 세금을 걷고, 자산을 나누자고 말한다.


그러니 그의 언어는 뾰족할 수밖에 없다.

수많은 대화가 말잔치로 끝나버린 세계에서, 피케티는 이제 대화조차 지루해진 사람 같다. (좋은 말, 멋진 구호. 다 좋은데 이건 오로지 정치인들의 이념 싸움에 불과한 건 아니냐는 얘기다)


반면, 샌델은 좀 다르다.

그는 정의를 말하지만, 그 출발점은 ‘질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정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개인의 자격과 노력은 과연 정당한 평가 기준일까?

그는 우리 각자가 ‘나는 왜 이 위치에 있는가’를 되묻도록 만든다.


피케티는 “구조를 바꾸자”라고 외치고,

샌델은 “그 구조 안에서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묻는다.

그래서 이 둘은 마치 대결 구도처럼 보이지만, 실은 서로 다른 레벨에서 같은 문제를 파고든다.

피케티는 현실의 ‘분배’를 바꾸려 하고,

샌델은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려 한다.


나는 피케티의 날 선 태도가 이해되면서도,

샌델의 느긋한 성찰도 소중하다고 느낀다.

우리는 둘 다 필요하다.

말을 넘어 실천으로, 실천을 넘어 성찰로.


그래서 이런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우리는 평등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그리고 그 평등을 실현할 용기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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