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10만 이용자, 망하지 않는 브런치의 비밀

소비자가 사라진 플랫폼의 생존법

by 이야기공간 낄낄

MAU가 진짜 10만?

갑작스런 궁금증으로 브런치의 MAU(월간 활성 이용자 수)를 찾아봤다.

어느 자료를 보니 MAU가 10만 정도가 찍혔다. 하루에 10만 명이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에 10만? 10년이 지나도록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것도 신기했고, 지지부진한 사업을 계속하는 것도 의아했다.


알만한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플랫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기관의 계간지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브런치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측

텍스트 기반이니 돈이 별로 들지 않는 비지니스다. 그리고 대기업 카카오가 운영하기 때문에 지출에 큰 부담이 없을 것이다. 또한, 무해한 성격의 에세이가 주를 이루기 때문에 언뜻 사회공헌사업 비스므리 하기도 하다.

이용자가 늘지도, 줄지도 않는 현실. 그럼에도 카카오의 '브런치스토리'는 건재하다. 아니, 오히려 더 견고해 보인다. 사업이 답보상태를 보이고 있는데도 이런저런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UI를 비롯한 이용 편의성도 나쁘지 않다. 최근엔 작가를 위한 수익모델까지 내놨다.


블로그 vs 브런치 이용자 추이


비밀

우선 트래픽은 카카오 브런치가 추구하는 사업 방향이 아니라는 의심을 해본다.

이곳엔 플랫폼 비지니스의 제1원칙인 '생산, 소비'의 균형이 깨져 있다. 읽는 사람(소비자)은 없고 쓰는 사람(생산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브런치의 본질은 거대한 '작가 지망생 커뮤니티'에 가깝다. 트래픽 대부분은 독자가 작가의 글을 소비하는 과정이 아니라, 작가가 다른 작가의 글에 '좋아요'를 누르고 내 글에도 '좋아요'가 달리기를 기다리는 품앗이에서 발생한다. 흔히 말하는 닫힌 생태계로 외부 유입은 미미하지만 플랫폼 내부의 생산자끼리 서로를 소비해 주며 트래픽을 방어한다.


이걸 어떻게 인지했느냐면...

브런치를 시작하고 시험 삼아 첫 글을 발행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좋아요'가 눌리기 시작했다.

응? 그리고 좋아요는 금세 멈췄다. 원인은 간단하다. 새 글이 올라오면 작가들은 '좋아요'를 눌러준다. 구독자를 빠르게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닫힌 생태계로 외부 유입이 미미할 수밖에 없다. 그 때문에 새롭게 이용자가 유입되면 구독자 유입을 위한 각자의 마케팅이 시작된다. 그리고 카카오 브런치도 영업을 시작한다.


AI 시대를 위한 고순도 데이터 광산

지금 IT 업계에서 가장 비싼 자원은 '정제된 한국어 텍스트'다. 블로그나 댓글은 비문과 욕설, 광고로 오염되어 있다. 반면 브런치는 '작가 승인제'를 통과한 이들이 맞춤법 검사기까지 돌려가며 생산한 '순도 높은 텍스트 데이터'의 보고다. 카카오의 AI 학습을 위한 데이터 전처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작가들은 자신의 글이 AI의 먹이가 되는 줄도 모르고 열정적으로 데이터를 바친다.


다음의 홈 화면을 블링블링하게

네이버 블로그가 맛집과 체험단 광고로 도배될 때, 다음(Daum) 검색은 브런치의 글을 상단에 띄우며 '정보의 질'을 방어한다. 브런치는 독립적인 플랫폼이라기보다, 다음 검색 결과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한 '콘텐츠 하청 기지'에 가깝다. 비록 다음이 네이버에 한참 밀려 고전하고 있지만 브런치에서 양산(?)되는 짧은 에세이들은 모바일에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다. 메타의 쓰레드(threads)가 모바일에서 약진하고 있다는 점은 카카오가 브런치를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용 효율적인 '지적 허영심' 관리

동영상 플랫폼은 돈이 많이 든다. 하지만 텍스트는 가볍다. 서버 유지 비용은 낮으면서, 카카오 전체 브랜드에 '사색', '지성', '인문학'이라는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덧입혀준다. 적은 비용으로 기업의 이미지를 세탁하는 가성비 좋은 도구다. 브런치의 사명이 카카오브런치로 바뀐 이유다.


출판이라는 '희망 고문' 시스템

사용자는 '내 글이 책이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쫓는다. 그러나 에세이 시장은 포화 상태이며 판매량은 급감하고 있다. 하지만 브런치에게 책의 판매량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는 책을 냈다'는 사실 자체가 나머지 99%의 작가들을 붙잡아두는 강력한 미끼가 되기 때문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도 손해 볼 것이 없다. 브런치는 출판사가 해야 할 신인 발굴과 시장조사를 작가들이 알아서 해주는 '무임금 외주 연구소'다. 팔릴 만한 글만 쏙 골라가면 그만이다.


결론: 플랫폼의 승리, 작가의 딜레마

브런치스토리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생산자가 곧 소비자인 기형적인 구조가 역설적으로 가장 낮은 비용으로 생태계를 유지하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글을 읽히고 싶은 작가들의 공간이 아니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필요한 사람들의 인정 욕구를, 카카오가 데이터와 브랜드 이미지로 교환하는 거대한 거래소다. 10만 명의 충성스러운 데이터 생산자들이 존재하는 한, 이 거래는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브런치가 나쁜 플랫폼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쓸데없는 목표가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들에게 글을 쓰고자 하는 의지를 북돋아 주기에 매우 좋다.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으니 글을 자극적으로 쓸 이유도 없고, 수익을 얻기 위해 광고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순수하게 글을 연습할 수 있는 장소로 너무나 좋은 플랫폼이다.


그런데 나는 왜 브런치를 저격하는 듯한 글을 썼나? 정말 궁금해서 개똥 같은 분석을 한번 해봤다. 맞는지 틀리는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읽히지 않을 글이니까 파급력도 없다. 마음껏 상상의 실타래를 펼쳐 공개적으로 발행 했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여튼 브런치의 건승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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