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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기 Apr 09. 2019

알바인데, 알 바인가요?_(1)

내가 누군지 알아? 혹시 나랑 아는 사이세요?


          

3월을 2주 앞두고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돈이 없었다. 2년 반 동안 모은 돈을 탕진한 건 아니었지만 목적이 있는 돈이어서 쓸 수 없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하게 연말정산 자체가 누락되어 납부해야 하는 돈이 **만원이나 되었다. 내 돈.     


온라인 지원까지 포함하면 스무 곳 이상 이력서를 제출했고 일단 면접을 보자는 말에 냉큼 가서 경력이 없다, 장기 근무를 원한다는 말을 듣고 까여 돌아오기도 익숙해졌다.


채용 구분을 신입으로 설정하고는 아르바이트 경력이 없다고 말을 흐리거나 근로기간을 ‘3~6개월’로 지정해서 장기근무자를 찾는다고 덧붙이던 측이나 똑같이 짜증 났다. 차곡차곡 줄어드는 교통 카드 잔액을 신경 써야 하는 처지라 더더욱. 


경력 없고 7월까지만 일해야 하는 나를 뽑아준 사업장은 둘이었는데, 하나는 번화가 빌딩 안에 있는 편의점이었다. 사장은 최저시급의 불합리함과 사업주의 궁핍한 환경을 토로하더니 수습 기간 3개월간 6,500원, 그 후로는 7,000원을 주겠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첫 면접이었기에 알겠다고 한 후 먼저 알바를 구한 친구와 이야기를 한 후 그날 안 되겠다는 정중한 문자를 보냈다. 분노 10할의 소식을 친구들에게 알리자 편의점은 최저시급을 챙겨주는 곳이 드물다는 덤덤한 메시지를 받았다.


최저시급은 최저로만 일해도 받아야 하는 근로자의 온당한 대가이다. 사업장의 호의로 얻는 혜택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이다. 최저시급을 맞춰 지급하면 좋은 알바처로 여겨지는 것도 어이없지만 물가보다 인건비가 싼, 쇠락한 도시는 정규직으로 근무해도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다는 걸 잘 안다. ×× 




현재 나는 도시락가게에서 14.5시간, 법적으로 퇴직금과 주휴수당을 챙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만큼 일하고 있다. 머리를 굴릴 필요 없이 우직한 허벅지 힘으로 꼿꼿하게 서서 단순하고 반복적으로 밥을 싸면 된다. 일의 강도는 세지 않고 크게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간이 된 밥알을 조물조물 만지면 평화로운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전 직장이나 여기나  돌게 하는 순간이 있다. 당연하게도 사람이 엮여서. 


왜 몇몇 사람들은 나이가 어리면 반말을 해도 된다고 생각할까? 왜 일부 사람들은 존칭을 생략하고 아가씨!라고 부를까? 왜 여성노동자는 ‘이모’나 ‘언니’라는 호칭에 익숙해졌을까? 중년 남성은 ‘사장님’, 중년 여성은 ‘사모님’, ‘여사님’이라고 부를까?


많은 사람은 그런 사소한 거에 신경 쓰냐며 좋게 좋게, 둥글게 생각하라고 한다.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아니면 바뀌면 좋지만 어쩔 수 없다고. 몇십 년간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인데 뭘 어떻게 하냐고. 


왜 안 되는데?


4월 1일부터 비닐봉지를 무상 제공할 수 없게 되었다. 백 원을 내고 종이봉투를 받는 건. 사람들은 생각보다 금세 익숙해졌다. 오히려 먼저 ‘봉투는 따로 돈 내야 하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장사를 하면 수십 해 동안 물품을 비닐봉지에 그냥 남아주는 곳이 많았을 거다. 어쩌면 그전에 화장품 로드샵이나 대형서점에서 진작 봉툿값을 받아와서 사람들이 금세 적응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금세 변화에 익숙해져 갔다.


그리고 모르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인식 또는 인격을 표출하는 언어와 보이고 만지는 유형 재화는 다르다는걸.


하지만 종이봉투 값 백 원이 필요하다는 것과 노동자에게 경어를 쓰라는 것이 뭐가 그렇게 달라야 하지? 몹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상식이지 않은가. 몰랐을 수는 있다. 하지만 배우지 않는 것은 나태함에 불과하다. 게다가 연령이나 지위에 따라서 하대를 당연시하는 마음가짐은 몇 년도에 익혀온 처세라고 할지라도 지탄받아야 마땅하다.


지금은 21세기고 우리는 문명인이지 않은가. 


아직 많은 여성 노동자는 직위나 직책 없이 불리고 있다. 애초에 불러야 할 직위나 직책도 명확히 부여하지 않은 곳이 많지만. 하다못해 남성 노동자는 사장님, 선생님이라고 하거나 못해도 저기요- 라고 하는데. 무던하게 지나치기에는 내가 보고 겪어온 사례가 너무 많다.


나는 당신의 언니도 이모도 아니고, 당신은 나의 지인도 아니며- 설령 지인이라 한들 합의하지 않은 반말은 전혀 달갑지 않다. 애초에 그런 유와 자의적으로 관계를 유지한 적도 없지만.     


직업에 귀천을 나누고 성별로 상하를 구분하고 나이로 옳고 그름을 따지려거든 조선 시대 권세가의 장남으로 태어나시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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