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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기 Apr 16. 2019

우리가 멀어지는 시간

친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지냈다는 것



동생과 싸웠다.

사실 이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다. 내가 겪어온 많지 않은 싸움-매우 높은 지분으로 동생과 있었던-은 서로를 헐뜯고 육체적인 폭력이 수반되는 다소 과격한 형태였는데, 그걸 기준으로 둔다면 싸우지는 않았다.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어떤 단어를 중심으로 하든 지금의 사태에 명확하게 이름 붙이기는 어려울 거다. 조금 다른 얘기를 해보자.     


우리 집은 나, 엄마, 동생으로 여자 셋이서 살고 있다. 전적으로 회사 내의 위기(인사이동과 퇴사)를 거치면서 2년 전 여름에 떠나 올해 겨울에 열세 살 때부터 산 동네에 복귀했다.

셋에서 둘에서 셋으로.


후에 자세히 다룰 거지만 혼자 사는 외로움과 그리움- 한 사람이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을 깨닫는 것과 나의 행보에 간섭받지 않는 순간의 반복-을 어쩔 수 없이 내려놓고 동생과 함께 써야 하는 방으로 돌아왔을 때, 난 혼자 살았던 생활을 그리워하리란 걸 알았다.


생체리듬과 생활습관이 다른 사람 둘이 같은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동거인이 되었을 때 발생하는 필연적인 참사는 겪어본 사람은 알고 있을 거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가족’의, 엄마와 동생 같은 유형의 사람을 자의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관계에 포함하지 않는다. 동급생이나 회사 동기 중 엄마나 동생 같은 사람이 있다면 분명 데면데면하게 굴었을 게 뻔하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집에서의 얼굴이 아닌 사회적인 얼굴이 있겠지만 평소의 태도나 가치관을 짐작한다면, 그래도 역시.




동생과의 갈등을 얄팍하게만 생각하면 장성한 두 사람을 한 방에 부대끼게 두고, 동생의 꼬락서니가 나의 상식을 준수해주지 않아서-방과 거실에 다 쓴 수건과 속옷을 바닥에 내던져두거나 음식을 먹고 제대로 뒷정리를 하지 않는 것-였지만 더 깊은 과거로 들어가면 나와 동생을 양육한자들의 태도에 허점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고등학생인 동생은 가사노동에 일절 기여하지 않지만 나 역시 철없고 이기적으로 ‘학생인데 본분인 공부에만 충실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태도를 꼿꼿이 고수했던 바 있기에 지금의 동생을 지적할 자격은 없다. 나또한 자취해본 경험이 없었다면 엄마가 20년 이상 감내한 그림자 노동의 한 귀퉁이도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까.


동생이 언니라고 부르지 않는 것? 괜한 유교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호칭에 연연하고 싶지도 않아서 깊게 생각자체를 안 했다. 주변엔 없지만 자매형제들끼리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있다고도 들었고.


동생에게 화를 낸 건 나를 무시하는 태도- 정확히는 없는 사람 취급을 하며 말도 않고 멋대로 굴어서였다. ‘감히 나를 무시해’가 아니라 진실로, 대화의 여지를 단 하나도 남기지 않는 것. 가령 책상에 내 물건이 쌓여있을 때 나에게 정리해달라는 말도 없이 제멋대로 책들을 구석에 마구잡이로 밀어 넣고 의자에 걸어둔 담요를 바닥에 던져놓는 것. 내가 쓰고 있던 공부방에 한마디 없이 자신이 들어가서 비키지 않는 것. 내가 작업을 하던 중 저녁을 먹으러 잠깐 나간 사이 일언반구도 없이 그 자리를 꿰찼다는 게 화가 났다.


어차피 같이 사는 곳이고 동생이 공부방에 들어간 걸 문제 삼는 게 아니다. 말하지 않은 것. ‘공부해야 하니까 언제부터 언제까지/ 앞으로 몇시부터는 내가 여기 사용해도 돼?’라고 말만 했으면 화가 나지도 않았을 거다. 부탁도 통보도 협상도 없는 건조하고 고집스러운 비언어적 행위가 나를 숨 막히게 했다.


나는 동생에게 말을 했으나 동생은 대꾸조차 하지 않고 나는 크게 상처받았다. 자매 사이라는 게 알게 모르게 서로 스트레스를 주고받는 관계지만 일방적인 침묵에 부드럽게 대처할 만큼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

나는 동생의 질기고 깊은 무시에서 엄마와 아빠에게 일정 부분의 책임을 묻고 싶어졌다.

더 예전의 이야기를 해보자.




나의 부친은 생전 미숙하고 화가 많은 사람이었다. 양육 태도가 일관적이지 못했고 미성년의 자식에게 이해를 바랐다. 섬세하고 자상한 면도 있었으나 아프기 시작하면서 그 성격은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부분이 두드러졌다. 그는 종종 말도 안 되는,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인 이유로 우리에게 화를 냈는데 나는 그때마다 내 의견을 나름의 논리로 피력하려 했고-몇몇 어른들이 말하는 ‘말대꾸’ 말이다- 동생은 알겠다며 넘어가곤 했다.


대차게 말하고 대차게 까이는 나에게 엄마는 ‘동생처럼 네, 하고 넘어가야지’, ‘아빠는 아프니까 네가 이해해야지’ 따위의, 나름대로의 조언을 말했지만 나는 그 시절에도 ‘어리고 자식인 내가 왜 아빠를 전부 이해해줘야 하냐. 그리고 맞지 않은 말에 왜 넘어가야 하냐’며 반박했다. 사족이지만 나는 나름대로 기죽지 않고 굽히지 않고 자라주어 스스로가 대견스럽다.

여튼, 나는 상대가 가족이든 친척이든 가리지 않고 내 의견을 내세웠으며 동생은 수긍하는 척 입을 다물었다. 둘 다 나름의 생존전력이었다. 물론 나는 ‘전략’이라 하기엔 성격대로 군 거지만.


더 깊은 얘기를 해보자.

동생은 몇 년전까지 손버릇이 안 좋았다. 사소하게는 똑같이 나눈 과자부터 내 지갑의 돈까지. 하지만 내가 모아둔 만원 지폐 몇 장이 사라졌을 때 우리의 소중한 보호자는 ‘물증이 없으니까 뭐라 못한다’에서, 계속 억울함을 토로하는 나에게 ‘어쩔 수 없는 걸 자꾸 왜 그러냐, 잊어버려라’는 식으로 나를 타박하며 방조했다.


침묵이 올바른 대응인 것처럼 유도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을 나는 숱하게 겪었고, 그날- 바로 며칠 전, 벽에다 대고 말하는 듯한 공허함을 느꼈을 때 나는 생각했다.


‘자식 교육 잘못 했어…….’


물론 한 미성년자의 모든 인격 형성을 가정 내 어른이 전적으로 책임지는 건 아니었고 동생만의 억울함과 둘째로서의 역할에 따른 불만을 상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입을 다물고 전체의 평화를 위해 감내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더니 이 꼴을 보라고.

동생은 나를 사물 보는 관점에서 부정적인 감정만 깃든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리고 보지 않았다.




안다. 나 역시 완벽한 인간이, 완벽한 언니(이 언니 포지션 나도 해체하고 싶다)가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불완전한 내가 무의식적으로 동생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나 행동을 남겼을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둘째라는 틀에서 느꼈던 압박이 있었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마찬가지로, 완연한 어른이 아닌 내가 섬세하게 단어를 골라 네 살 터울의 동생과 대화를 할 엄두가 안 났다. 그건 두렵고, 화나고, 또 지치는 일이니까. 그 아이와 있는 모든 공간이 숨 막히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웃기게도 혈연으로 맺어진 동거 관계의 빈 점을 생각했다.


나에게 가족은 내 자의로 유지하지 않을 부류의 사람에게 익숙해진 관계이자 혈연이라는 이유로 지나치게, 지독하게 가깝게 있다가 서서히 멀어지는 관계였다.


동생 뿐 아니라 엄마도 마찬가지이다. 학교에서 친구를 만나 관심사와 가치관을 공유하며 거리를 좁히는 것과 달리 서로가 완전히 독립되고 개별적인- 어쩌면 나랑 완전히 다른 인간임을 인지하고 적당한 거리를 찾는 것.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벽을 구축하는 것.


나는 엄마에게선 그런 사고를 꾸준히 확장해왔지만 동생에 대해서는 그런 적이 없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동생과 나는 처음부터 어긋난 퍼즐조각을 억지로 부딪히고 있었던 건 아닐까? 아니면 내가, 혹은 동생이 배려심이 부족해서 한 사람이 성숙해지거나 하면 괜찮아 질까?


한때는 관계를 경시하면 관계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냉소적으로 구는 사람을 ‘쿨’하다고 여기며 동경했다. 하지만 이제야, 무리에 소속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졸업하고 나서야 무언가에 공감하고 포용하는 게 얼마나 성숙한 자세인지 배워가고 있다. 어쩌면 동생도 이 시기를 거치고 지나가면 괜찮아질까?


나와 동생, 이대로 가족일 수 있을까? 어쩌면 가족이 아니어야 원만해지는 걸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만약 동생이 모르는 척 몇 달 전처럼 무뚝뚝하게 장난스러운 말을 걸면 나는 모르는 체 받아줄 거라는 거.

나는 동생을 사랑하지만 미웠고, 어쩌면 그만한 애정이 있기에 격렬히 미워하는 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동생은 얼마만큼의 거리가 필요할까. 이대로 영영 멀어지는 게 서로에게 가장 건강한 방식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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