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웹소설 표지 완성
창작자, 특히 소설가라면 혼자 일하는 직업이라고 단정하기 쉽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그러다 영감이 내려오면 침식을 잊고 작업에 몰두해 나흘 만에 걸작을 만들어 내는…… 그렇게 살면 죽는다고 했다, 진짜.
물론 완전히 틀린 전제는 아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할 일이 적은 편이기는 하니까. 산업이 발달하면서 스튜디오 제작, 즉 팀 작업이 늘어난 웹툰계와 달리 웹소설은 대부분 작가 한 명이 작품 하나를 전부 책임진다.-기획과 스토리라인 구성, 집필을 분리한 경우도 있긴 하나 몹시 드문 사례이므로 여기선 생략한다-
우선, 작가와 많이 접촉하는 사람은 담당 편집자다. 출판사 규모 혹은 내부 규정에 따라 작가와 소통하는 사람, 교정·교열 편집자, 작품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경우도 있으나 보통 담당자 1명이 이 모든 사안을 전담한다.
작품 논의부터 일정 조율, 프로모션 상의, 그리고…… 작가와 표지 제작자의 가교 역할까지.
웹소설은 글만 있다고 해서 런칭할 수 없다. 종이책에도 표지가 있듯이, 웹소설도 작품을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표지가 있어야 플랫폼에 올릴 수 있다. 표지는 디자인과 일러스트로 구분되는데, 작바작이긴 하지만 으레 단행본은 디자인 표지가, 유료 연재는 일러스트 표지가 붙는다.
전문가에게 맡기니 작가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 이 과정에서 골치 아픈 문제가 왕왕 발생한다. 비교적 제작 기간이 짧고 디자이너 컨택이 쉬운 디자인 표지보단 일러스트 표지를 써야 할 때 피 마르는 경험을 할 확률이 높다. ……다음을 보자.
일러스트 표지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일러스트레이터를 골라야 한다. ‘그걸 작가가 하나요?’하고 의아해할 수 있다. 이해한다. 그리고 대부분 출판사에선 해당 일정에 작업할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 명단(* 보통 ‘슬롯’이라고 한다)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만약 출판사가 보유한 명단이 없다면? 혹은 출판사가 제시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스타일이 내 작품과 맞지 않는다면? 그때부터 눈물 나는 일러스트레이터 수색기가 시작된다.
잘 나가는 일러스트레이터는 이미 2년 치 일정까지 차 있는 게 현실, 일정이 마감된 일러스트레이터들 사이에서 내가 원하는 마감을 소화해 줄 사람을 찾는 건 몹시 까다롭다. ‘그냥 출판사에서 한 사람 중에서 고르면 안 되냐?’고 할 수 있지만…… 글쎄.
표지는 제목보다 먼저 독자의 눈에 들어온다. 작품을 직관적으로 나타내는 수단이며 완성도 높은 표지는 독자를 조금이나마 잡아끄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통통 튀는 로코에 사실적이고 음울한 일러스트가 붙거나, 야릇한 19금에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일러스트가 붙는다면? 웹소설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그래도 될 작품은 된다’라고 하지만 굳이 진입장벽을 높여서 독자 유입을 막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 역시 출판사에서 제시한 명단과 추구하는 스타일이 맞지 않아 일러스트레이터들의 SNS를 불나게 찾아왔다. ‘신인 땐 그랬지’하고 아련하게 회상이나 하고 싶지만 바로 몇 달 전에도 그랬다……. 여하간 그렇게 어렵게 찾은 일러스트레이터가 딱! 결정되면 더는 표지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아니.
아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일러스트레이터가 결정됐다면, 이제 표지 가이드를 작성해야 한다.-이 단계는 사실 일러스트레이터 구인 전에 이뤄질 수도 있는데, 순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가이드란 일러스트 작업에 필요한 캐릭터 외관 설명, 시대상, 구도, 분위기 등을 설명하는 주문서를 뜻한다. 한 마디로 ‘이러이런 그림으로 그려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것. 간단히 예시를 들자면 ‘흑발 적안의 날카롭게 생긴 미남이 금발 벽안의 토끼상 여자한테 백허그하는 모습’을 그려 달라 풀어 쓰는 것이다.
가이드를 쓰는 스타일은 사람마다 다른데, 최소한의 캐릭터 정보만 주고 ‘최선을 다해 주세요’라고 넘기는 작가도 있는 반면 의상 참고 자료와 머리색 색상 코드까지 지정해서 전달하는 작가도 있다.(나는 어느 쪽 같은가? 눈치 챘겠지만 후자다.)
여하간 이렇게 공들여 작성한 가이드를 전달하면 끝일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 단계까지 오면 작가가 주체적으로 할 일은 없으니까. 그저 일러스트가 계약한 기간 내에 도달하길 기도하며…… 그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어떤 방향으로 골칫거리가 생길지 모르니까.
가장 심각한 경우는, 단연 일러스트레이터가 일정을 지키지 않을 때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웹소설은 표지 없이 런칭하지 못한다. 그런데…… 정해진 날짜에 완성본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완성본은커녕 중간 채색본도 받지 못했다면?
어느 한두 명의 사례가 아니다. 일부 일러스트레이터의 상습적인 잠수와 지각 문제는 한때 SNS에 큰 화제가 되어 ‘잠수 일러레 명단’이 퍼진 적도 있었다. 실제로 런칭 직전까지 완성본을 받지 못해 하루 이틀 전에 급하게 대신할 일러스트레이터를 구했다는 이야기가 드물지만도 않고.
잠수, 지각과 견줄 만큼은 아니지만 그 외에도 작가는 여러 난감한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하나, 가이드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경우.
거짓말 같나? 나도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단순히 점을 빼먹었다, 장신구를 빼먹었다 수준이 아니라 캐릭터 체구부터 인상, 의상까지 뭐 하나 맞는 게 없었다. 첫 러프를 확인했을 때 당혹감과 황당함이란…… 회상하면 아직 등골이 오싹해진다.
다행히-그리고 당연하게도- 가이드를 제대로 확인해 주십사 재차 요청한 뒤에는-물론 출판사를 통해서. 작가는 일러스트레이터와 직접 소통하지 않는다. 무조건 출판사를 거쳐 이야기한다- 멀쩡한 러프본이 나왔다. 안심한 한편으론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런……?’이란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가이드를 꼼꼼하게 적어둬도 생각보다 그 가이드를 제대로 숙지하는 사람은 귀하다.
이와 비슷하게 작가가 컨펌한 중간본을 상의 없이 수정해서 완성하는 경우도 있다. 일러스트가 완성되기까지 보통 러프에서 한 번, 1차 채색에서 한 번, 2차 채색(또는 완성본)에서 한 번 작가-출판사의 컨펌을 받는다. 작가는 담당자와 논의해서 이대로 가도 되겠는지, 몇 가지 손 봐야 할 부분이 있는지 등을 결정한다. 만약 오케이 됐다면, 일러스트레이터는 검토된 그림으로 다음 단계를 작업한다.
그게 일반적인데…… 이미 확인한 그림을 아예 엎고 아예 다른 그림을 완성본이라고 건네기도 한다. 이전 게 훨씬 나은데?라고 생각해도 작가로선 어쩔 도리가 없다. 이미 이전 파일은 삭제했다고 하니까…….
둘, 가이드를 일부 반영하지 않은 경우.
주인공의 인상을 완성하는 요소가 있다. 점일 수도 있고, 주근깨일 수도 있고, 피부 톤이거나 흉터일 수도 있다. ……나는 이 부분을 사수하고자 네 차례에 걸쳐 강조했으나, 거의 차이가 없는 결과물을 받아 본 적이 있다.
뭐였을까……? 당시엔 일러스트레이터의 업무 역량을 의심했으나 후엔 ‘담당자가 중간에 전달한 게 맞을까?’하는 추측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출판사는 일찍이 작가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자세한 사항을 얘기하면 신상이 털릴 수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셋째, 포트폴리오와 실제 작업물이 차이가 나는 경우.
한 마디로 기복이 심하단 뜻이다. 지망생 혹은 연차가 낮은 일러스트레이터만 그런 게 아니다. 이미 몇 년째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의 완성도가 포트폴리오보다 떨어지는 일이…… 있다.
나도 진짜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5년 이상 프로로 작업한 사람이 내 눈에 보일 만큼 인체 비율이 무너진 그림을 가져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질 않았다. 결국 그 그림은 몇 번의 수정과 눈속임으로 그럭저럭 마무리되긴 했지만…….
물론 모든 일러스트레이터가 이렇지는 않다. 많은 성실한 이들이 일정 안에 주요 특징을 쏙쏙 뽑아 멋진 결과물을 완성한다. 때때로 시각 예술가만의 통찰력을 살려 내가 고려하지 못한 부분을 짚어내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머릿속에서 두루뭉술하게 존재했던 이미지를 멋지게 구현한 결과물을 확인했을 때의 감동도 선명히 기억한다.
그러니 다음엔, 다음엔 제발 그런 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