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의 탈색, 한 번의 염색, 반년의 소란
원하는 바를 에둘러 말하고 알아서 수행하길 원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라고 해도, 사람은 저마다의 리듬을 가지고 있어서 나와 비슷한 주기가-웃음 점과 화내는 맥락이 닮은- 아니고서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사리 짐작할 수 없다. 그저 짐작하고 단정할 뿐.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 인간과의 관계가 무슨 상관이냐며 건조한 척했던 적도 있지만, 제삼자더라도 함께할 수 있는 유대를 느낀 적이 있는 나에겐 한 가닥의 손길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사람과 원만하게 지낼 필요도 없다. 모종의 사연으로 원한 살 짓을 골라 하지 않더라도 어디에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난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노력할 뿐이다.
내가 무언가 고민되는 일이 있을 때는 몇 가지의 질문을 거쳐 결정하는데,
그때는 “ ① 내가 하고 싶은지 ②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는지 ③ 법에 저촉되는지 ” 였다.
앞이 흐릴 정도로 비가 쏟아지던 여름이었고, 노트북을 고르러 왔다 근처 미용실에서 분홍색 머리를 하기로 했었다.
난 회사에 다니는 중이었고, 인사발령으로 지역을 옮긴 지 일주일 쯤 되었을 때였다. SNS의 찬란한 머리 색에 매료되어 전화로 상담 일정을 잡았을 때도, 내가 이렇게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회사에서 이슈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않은 건 아니다. 부지런히 욕을 먹고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리게 될 거란 것 역시. 하지만 생각보다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적었다. 잘 모르는 나에게 어쩌지 못하고 내 사수를 에둘러 쪼고 있었으니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사회 보편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대민 업무도 아니고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머리가 알록달록하다고 해서 업무 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난리람. 게다가 요란한 머리를 시도한 내가 언짢으면 나에게 바로 말할 것이지, 어쩌다 나를 맡은 게 다인 사람을 쪼는 건 두 번 욕먹으라는 건지 초면에 말할 주제는 아니란 걸 알아서인지- 뭐 나에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고요한 소란 속에서 나는 꿋꿋이 반년간 환한 금발을 유지했고(탈색한 머리에 색을 입히면 이 주 안에 빠졌다) 빗자루 같은 머릿결을 감당하지 못하고 머리를 자른 후 애쉬브론즈로 염색하자 말들은 사그라들었다.
재미있었다. 별 것 아닌 것들은 편견이 가득 찬 시선으로 걸러 보고 들으면서 타인의 사정에는 지독히 관심이 많았으니 말이다. 그들은 모두 나를 위하는 적절한 조언인 양 말을 건넨다.
‘막내가 그렇게 땡 출근하고 땡 퇴근하는 거 보기 안 좋아.’
‘머리 그러는 거 말 많은 거 알지? 내가 아는 미용실 같이 가줄까?’
고맙지도 않고, 사양하겠습니다.
우리는 고유의 언어가 있고, 그런 표현들을 교환하면서 상대방을 배워나간다. 그 사람의 외관, 메신저에서의 한마디로 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그 정도는 당연하게’가 아니며 정기적으로 나의 뿌리 깊은 생각들이 편견 속에서 키워지지 않았는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끝으로 나에게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충고인 양 판에 박힌 말을 읊은 많은 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당신, 무례했습니다. 눈치가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