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없어야 건강한 오늘과 행복한 내일을 지킬 수 있다
나의 지극한 보호자는 내가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다고도, 생각 없이 행동하지 말라고도 했다.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주관이 뚜렷하고 굽히지를 않아서 21세기보다 20세기에 보낸 세월이 많은 양육자로 탐탁지 않아 보일 수도, 한국 사회 보편 정서에 알맞게 학습된 지성인으로서 문제아처럼 느꼈을 수도 있겠지. 일정 부분 맞기도 했다.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아예 없었다면, 단순한 성정이었다면 모르는 사람들이 신의 직장이라고 추앙하는 공기업을 청년실업 백만 시대에 사표를 던지지는 않았겠지. 주어진 현실을 불평하면서도 안락한 노후를 바라보며 악착같이 버텼겠지.
‘왜?’라는 물음표는 항상 나를 쫓아다녔다. 모든 직장인은 일하는 중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현타가 온다고 한다. 나는 그 의문에 대해 조금 더, 집요했을 뿐이다.
내가 바라는 삶과 실제의 생활. 나의 감정, 꿈, 미래……. 허무맹랑하고 철없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냉소적으로 여겨질 가치들, 그리고 그렇게 바라볼 시선들이 떠올랐지만 마음에 두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사람들은 내가 아니니까.
나는 언제나 사회 보편적인 기준에 맞는-생애 과업에 따른 고민을 적절한 시기에 했지만 근본적으로 성실했다. 무난한 성적을 유지하며 내신 걱정을 하고, 주변의 선배와 친구들처럼 자격증을 따고 자기소개서를 준비하며 좋은 회사에 입사하기를 꿈꿨다.
그 와중에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한다는 건 뜬금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가정형편과 비전 때문에 진학이 아닌 취업으로 방향을 틀었으면서 꿈이라니. 애초에 회사에서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낭만 따위 없었고, 착취당하지 않고 돈을 벌겠다는 생각뿐이었지만.
어느 시점, 내가 불행하다고 느껴질 때, 내일이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을 때- 그만둬야겠다는 뚜렷한 의사가 머리를 디밀었다.
스물하나의 3월이었다. 스트레스 없는 일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9시부터 6시까지 있는 공간과 그 사이의 시간이 문자 그대로 ‘끔찍한’ 정도라면- 수년 후의 미래가 아무리 탄탄하고 견딜만해 진다 한들 과거에 소거된 시간은 공허하게 버려두어야 하며……. 정리할 수 없지만 퇴사를 떠올리고 결심하기까지는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일일까 사람일까. 사실 처음부터 일은 적성에 맞지 않았고-세 번이나 바뀌었는데 여전히 그랬다- 정떨어지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지긋지긋하게 울리는 전화벨만큼 끈질기게 나를 흔들었던 건, 회사 어디에서도 내가 서고 싶은 자리가, 닮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였다. 언제나 후배들에게 상냥하게 대하는 사람, 여러 부서에서 러브콜을 받을 정도로 유능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어떤 모습도 내가 지향하는 미래를 찾을 수 없었다.
안다. 다들 개인의 삶을 살아가는 거지 누군가의 역할 모델이 될 필요는 없다. 또는 내가 롤모델이 되겠다고 결심할 수도 있었다. 스스로를 지키면서 꿋꿋하게 버텨 지금은 고졸 여성에게 암묵적으로 허락하지 않은 곳까지 가서 길을 열어주겠다고 의지를 불태울 수도 있었겠지.
사실, 되고 싶은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되기 싫은 사람처럼 변해갈까 두려워서도 있다.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기본적으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받은 만큼 일하지 않는 사람을 싫어했다. 모범이 되지는 못할망정 후배들에게 일을 떠밀고 불평만 쏟아내는 사람은 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수십 수백 통의 전화를 받고 서류를 처리하고 안팎으로 까이면서 나 또한 연차가 쌓이면서 그럴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최저 시급보다 조금 웃돈 월급을 받으며 가루가 되도록 시달리는데 직급이 올라가고 후배가 많아질수록 ‘내가 그때 그렇게 고생했는데’ 하며 일을 흐지부지 덮어버리지 않을 거란 확신이 없었다. 이기적인 보상 심리가 아무 상관없는 사람들을 괴롭힐 것 같았다.
내 인격적 소양의 부족이라거나 현재 미성숙을 향한 과도한 잣대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난 도무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당장 병원에 입원하고 싶은 마음은 건강하지 않은 지금의 증거였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럼 모두가 병 든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