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금이라면 소문은 독, 회사는 똥
말을 하는 것만큼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학창 시절부터 말 한마디가 최초 화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옮겨진다는 걸 심심찮게 봐왔으니까. 비극이라면 난 말 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가끔은 생각하기 전에 말을 뱉을 때도 있었다. -요즘은 이성으로 자제하는 편이다-
말의 내용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청자가 바뀜에 따라, 전달자가 늘어남에 따라 점점 왜곡되곤 한다. 말은 이미 화자가 아닌 청자가 주인이 되어버린 셈이다. 당사자가 직접 말한 사람이라도 상황이나 타이밍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의도와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하물며 제삼자가 퍼트린 이야기는 어떨까.
회사는 커도 작아도 문제인데-그냥 회사 자체가 문제인 것 같다- 인원이 적으면 소문이 순식간에 번진다는 점에서 나빴다. 순간의 행동이나 말들이 메신저 등을 통해 한나절 만에 전 지역에 당사자도 모르는 소문이 떠돌아다니는 걸 확인할 땐, 스마트폰 중독자인 나라도 문명의 이기에 한탄할 수밖에 없다.
수차례 옮겨진 ‘카더라’는 최초 유포지와 달리 주체가 바뀌거나 뉘앙스가 달라지면서 생뚱맞게 전달되는 과정을 보면, 비약적인 과학의 발전이 시민의 성숙도와 완벽히 비례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는 얼마나 많이 나의 의도와 다른 수식어가 붙어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을까. 확실한 건 ‘샛노란 머리카락으로 돌아다니는 제정신 아닌’ 나와 ‘일을 꽤 잘하는 신입’인 나를 말한 사람이 영 다른 이는 아닐 것이다. 물론 내가 타인의 메신저를 훔쳐본 적이 없으니 이 표현도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지만.
당사자의 허락 없이 누군가의 사생활을 이야깃거리로 소비하는 사람을 혐오한다. 공익을 위한 막중한 임무를 지지도 않았으면서 안면도 없는 사람이 어떤 땅을 샀는지, 배우자가 어디 출신인지, 가족이 어떻고 이혼을 했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단 말인가?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점심시간의 수다거리 정도로 여겨지는 개인의 삶이 너무나 불쾌하게 다가왔다.
내가 괜찮겠지, 하고 확신하고 꺼낸 말도 언제 어떻게 심심풀이로 전락할지 모른다.
‘아니 할 말이지만-’
‘걔가 슬쩍 말하더니-’
아니 그러면 말하지 마 제발…….
입사 동기이면 무조건 친해야 한다는 사내규칙이라도 정해뒀는지 동료의 최근 동향과 감정 따위를 은근슬쩍 물어보는 일도 관뒀으면 좋겠다. 그만큼 가깝지도 않고, 친하다고 하면 더더욱 알려줄 수 없으니까. 애초에 그 사람과의 심리적 거리와 무관하게 제삼자에게 다른 사람의 비밀을 떠드는 건 어디의 사회생활이란 말인가.
조금 다른 얘기를 꺼내자면, 하급자에게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딱딱’하기를 바라면서 힘든 일이 있거나 건의사항이 있을 때는 상급자에게 ‘직접 말로’ 전달하길 바란다. 하급자가 말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경직된 분위기와 쌓아둔 관계가 입을 막았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제발 하나만 했으면 좋겠다. ‘회사는 힘든 거 말 안 하면 몰라’와 ‘말 안 해도 그런 건 센스 있게 챙겨야지’를 말하는 사람이 같다니, 세상에.
그렇게 힘겹게 말을 꺼낸다 한들 해결되나? 단순히 개선점을 말했을 뿐인데 걔가 일이 힘들다고 울었다더라-로 바뀌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다. 소문만 무성해지지 근본적인 해결은 아주 드물다. 원래 처음에는 다 힘들다, 는 안 하느니 못한 얄팍한 위로만 들을 뿐이지.
내가 더더욱 기겁한 건, 그 말의 주체가 회사였을 때다. 막 입사했을 때는 몰랐는데, 당해 신입사원이 채용되면 사내 홈페이지에 각자의 증명사진 옆에 이름, 출생연도, 졸업한 학교와 과를 박아 올린다는 거였다.
대체 무슨 의도로? 사진과 이름까지야 백번 양보해서 얼굴을 미리 익혀놓아서 친근하게 대하라고-하며 억지로 행복회로를 돌리겠지만 나이랑 학교는 왜……? 태어난 순서대로 서열이나 매기라는 걸까? 동문을 찾아서 노골적으로 학연이라도 맺으라는 걸까? 물론 신입 사원이 입사한 후 상급자 주최 아래 ○○대학 출신끼리 술자리를 가진 걸 보면 영 뜬금없는 가설은 아니다.
명확한 의도야 모르겠지만-의도 없이 한 행동이어도 이 정도의 무지는 죄다- 당사자인 신규사원들은 모르는 새 자신의 신상이 공개되어 입방아에 오른다.
다들 초등 교육을 받을 때 도덕에 대해 배우지 못한 걸까?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이 이제야 이런 참사를 불러일으킨 걸까? 아무리 그래도 나름 대한민국 준정부기관인데 이렇게 무례한 짓을 채용 시기마다 해야 하는 건가?
대체,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