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망하지 않고 나는 사고하며 오늘은 괜찮다
머무름과 퇴사를 저울질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퇴사와 관련된 여러 창작물을 찾았다. 노골적으로 입사에서 퇴사까지 담긴 글도 있었고, 마음에 관해 쓴 그림일기도 있었고, 팟캐스트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그저 ‘이 회사 때려치우고 만다’하고 점심시간에 중얼거린 다음 착실하게 사무실로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훗날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보상들을 포기하고 불확실한 무언가에 몸을 던지는 것. 굶어 죽지 않을 미래를 내려놓고 무엇을 원했냐고?
현재.
나는 현재를 원했다. 죽고 싶지 않은 내일과 죽이고 싶지 않은 오늘을 갖고자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많은 사람, 그 중 퇴사한 사람들은 그런데도 살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삶을 꾸리고 있었다. 물론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대한민국에서는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스펙이 없었기 때문에 더 망설이기는 했지만, 일단 지금을 살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설마 죽기야 하겠는가?
물론 내가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면 결정하기 어려웠겠으나 난 나만 책임지면 됐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오 년이 지나면, 십 년이 지나면 그만둘 수 있을까? 이미 적응한 오늘을 감내하며 그저 그렇게 살아가겠지. 그런 삶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일정한 패턴을 오랜 시간 지켜오는 건 굉장한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회사에 다니며 깊은 우울감에 머리를 처박고 있었을 때, 그림일기를 그리는 분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다. 그 글을 읽고 심리 상담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조금 더 뚜렷하게 설계하기 시작했고 그만둬도 괜찮을 거야- 하는 위로를 받았다.
많은 사람은 기겁하며 반대했으니까. 그 좋은 직장을, 그 철밥통을, 고졸로 들어갔으면, 회사 생활이 다 그런데.
하지만 그 블로그에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상처받으면서 성장하는 거라고 하는데, 조개에 상처를 내서 진주를 얻으면 조개는 좋아하겠느냐는 그림을 한참이나 바라봤다.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는데 한없이 슬퍼졌다.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처를 참아가며, 좋아하는 것들-뮤지컬을 보고 글쓰기 수업을 듣고-로 끈질기게 다친 마음을 꿰매려 하는 처지가 가여워질 지경이었다. 아니, 그걸 지나 환멸이 날 지경이었다. 좋은 순간은 잠깐이고 회사로 가는 시간, 회사에 있는 시간, 다음 출근을 떠올리는 시간 모두 구역질이 날 정도로 참담하게 머리를 꿰찼으니까.
뮤지컬 넘버를 들으면서 예전에는 흘려들었던 가사를 끊임없이 되짚고, 예전이라면 냉소적으로 지나쳤을 다정한 글귀들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나의 마음을 끝없이 되짚어 봤다. 두 개의 팟캐스트를 번갈아 들으며 인생은 생각보다 쉽게 망하지 않으며, 망하는 종류도 아니라는 걸 끊임없이 확인받았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그렇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을 들으며 스스로 떠내려가지 않게끔 마음을 바로 세웠다.
내가 듣던 팟캐스트는 공교롭게도 둘 다 세 명의 여성 패널? MC?로 이뤄진 방송이었는데 하나는 런던에서 해외 취업을 해서 일하고 있는 이야기였으며 하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제부터 분위기까지 다루고 있는 결 자체가 달랐지만 모두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였다. 흔히 사람들이 생애주기에 따라 기대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더라도 하루하루를 영위하는 사람들.
앞에서 도전하고 실패하고 나아가는 경험을 따라 읽으며 다시 걸어갈 용기를 낸다. 넘어질 게 두려워서 그 자리에 앉아만 있으면서 내가 보는 풍경이 바뀌기만을 기다리는 건 내 성미에 맞지 않으니까. 나는 충분히 두려워했다. 그리고 훨씬 성실했다.
조금 멋대로 산다고 해서 인생은 망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