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머의 루머의 루머_(下)

소문은 재난, 입은 죄악, 회사는 지옥

by 야기


사적인 사정을 너무 쉽게 묻는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리 친밀한 관계여도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고 회사 안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사람들, 너무나 당연하게 가족, 연애, 결혼에 관해 묻는다.


차라리 ‘나’에 대한 질문이면 직장동료에 대한 순수한 관심-전혀 달갑지 않지만-으로 포장해보기라도 할 텐데 부모님이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남자친구는 있는지, 왜 없는지 따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대화 주제로 던지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환멸이 날 지경이었다.


더 말해보자면, 난 누가 내 취미가 뭔지, 주말에 뭐 했는지 물어보는 건 상관이 없다. 기꺼이 대답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주말에 이런 거 했어요’라고 하는 순간 내 허락은 구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야기 씨는 주말에 그거 했대’라고 하는 게 문제다. 겨우 그 정도로? 하며 예민한 인간 취급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합의되지 않은 사적인 이야기가-주제의 경중과 상관없이- 떠돌아다니는 걸 어떻게 기꺼운 마음으로 넘어간단 말인가.




내 성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을 알지도 못하고, 시스젠더 헤테로 외에는 고려하지 않은 남자친구 유무는 그만 대답하고 싶다. 설령 내가 그렇다 하더라도 연애가 삶의 필수 요소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만나지 않느냐니, 따위의 질문은 집어치웠으면.


가족도 그렇다. 그들이 생각하는 ‘정상 가족’의 틀에 맞춰서 부모님의 나이와 직업을 묻는다. 가족 구성원이 엄마와 동생인 나에게 말이다. 그들의 질문은 한 부모 가정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가족 형태를 배제한 무례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설령 그들이 생각하는 정상 가족이라 하더라도 그걸 왜 대답해야 하는가.


물론 그때의 난 거리낄 것이 없었고 숨기고 싶지도 않았기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버지는 안 계신다고, 돌아가셨다고. 그런데 뒤이은 질문은 무례함을 넘어 황당할 지경이었다.


몇 살 때 돌아가셨니? 어쩌다 돌아가셨니? 어머니가 고생이 많으셨겠네-


진심으로 궁금하다. 이 사람들 왜 이러는지. 이쯤 되어서도 원래 사회생활이 그런 거지-라던가 싫으면 말을 돌리면 되잖아? 하는 공감 능력 또는 기초적인 윤리 의식이 결여된 사람이 있다면 앞으로 영원히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



소문은 형체가 없지만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모르는 사이에 불투명한 시선이 덧씌워지고 그 위로 한 사람을 판단한다. 정황은 살피지 않는 편견이 누군가를 좀 먹을 수 있다는 건 신경 쓰지 않으면서.


안다. 사람은 직접 겪어봐야 안다는 말과 괜히 그런 말이 돌지 않는다는 말 사이에서 방황할 수 있다는 거. 하지만 ‘싸가지 없다’는 말은 젊은 여성에게만 쉽게 붙는 걸 보며 같은 행동도 아주 쉽게 왜곡될 수 있음을 체감해야 했다. 그에 반해 분명히 존재했던 남성의 성추행이 ‘소문’으로만 스러지는 것을 목격해야 했던 것도. 이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주요하게 다루겠다.


언어는 수백 번 다시 태어난다. 축복이기도 하고 재앙이기도 하다. 모두가 분명히 인지해야 한다. 아무 생각 없이 흘린 몇 마디가 누군가에게 끝나지 않는 재난이 되기도 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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