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완벽하지 않은 페미니스트이며, 그말은 칭찬이 아닙니다.
페미니즘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는, 우연히도 내가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를 한창 찾아들었을 때였다. 「We are never ever getting back together」을 시작으로 「Begin again」,「Mean」 등 십수 개의 멜로디와 가사를 음미하며 그 가수에 관한 호기심도 키워나갔다.
마침 그때 이름을 검색하니 가장 상단에 올린 글은 그가 페미니스트이며, 그 사실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평가한 내용이었다. 개인의 판단이 섞인 글을 완전한 정보로 받아들였던 나는, 그게 굉장히 잘못된 사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기점으로 페미니즘은 내 삶에 빠르게 다가왔으며 내가 지향하는 삶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평등. 기울어진 운동자의 수평을 바로 맞추는 것. 하지만 많은 이는 왜 그래야 하는지, 이 거대한 무대 자체가 특정 성별에 맞춰 구성되었다는 진실조차 이해하지 못했다.
완벽한 페미니즘, 완벽한 페미니스트가 존재할 수 없듯이 내 열아홉은 관습에 따라 적당히 타협한 후–5cm 굽의 면접용 구두를 신고 립스틱을 바른 후 면접을 봐야 했던- 그 회사에 합격했다.
사실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명확히 정의한 게 열아홉 겨울인지, 가을인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해 봄 담임이 ‘사람마다 마음의 방이 있는데, 여자는 하나의 큰 방이고 남자는 여러 개로 나누어져 있다’는 개소리를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근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Girls can do anything’이 밖인 티를 입고 출근한 날, 남자 대리가 쪽지로 ‘그런 사상이 드러나는 옷은 회사에서 안 입는 게 좋다’는 조언을 건네받았을 땐 분명히 황당함과 불쾌감을 느꼈다. 입사 쪼렙이어서 겁을 먹고는 그 후 회사에 입고 오지 않기는 했지만.
Girls can do anything. 소녀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문구에서 대체 어떤 사상을 느낀 걸까? 이 티셔츠를 펀딩할 때만 해도 페미니즘을 깊이 생이 생각하지는 못했다. 그저 의미가 마음에 들었을 뿐인걸. 내가 모든 남성을 화형에 처하자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한 것뿐인데. 2, 3년 차에 들었다면 ‘그런 사상이 뭔데요?’하고 낭창하게 되물었거나 ‘×까쇼~’하고 꿋꿋이 입고 다녔겠지. 그러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열아홉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화장을 안 하는 나에게 립스틱이라도 바르고 다니라며 색이 나는 립밤을 발라주는 호의를 무시하지 못한 것처럼. 그때의 나는, 동갑 남자 동기와 같은 부서에 배치되었는데 사무실에서도 말이 많은 그와 조용한 나에게 ‘둘이 바뀌면 좋겠다’라고 충고하는 상사에게도 반박하지 못하는 신입 신세였으니까. 스스로 억눌렀던 것 맞았고.
회사에서 영향력이 없다시피 한, 오히려 사소한 말 한 마에도 풍비박산 나기 쉬운 내가 대처할 방법은 전혀 없어 보였다. 모르는 척 웃으며 속으로는 그들을 비아냥거리며 정신 승리하는 수밖에. 그리고 난 신경 쓸 것 많은 회사에서 사람을 싫어하는 일로 체력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잊어버리는 쪽이 집요하게 곱씹고 부정적인 감정을 쌓는 것보다는 정신 건강에 이로울 테니까.
하지만 회사는 몇 번이나 날 시험에 들게 했다. 난 많은 걸 할 수 없었다. 다만 웃기를 멈췄다. 전혀 웃기지 않았으니까.
숨 쉬듯 평가 대상이 되는 여성의 얼굴과 몸, 스타일. 어떤 사람이라는 말보다 어느 사번의 누가 그렇게 예쁘다더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와 몸매 대박이다’는 말도 동성이 하면 문제의식 없이 순수한 칭찬으로 받아들여졌다. 내가 여태까지 겪은 세상과 마찬가지로.
조금 더 재미없는 얘기를 해보자. 소문을 주제로도 말했지만, 스몰토크의 주제를 연애로 꼽는 것도 못마땅하다. 백번 양보해서 ‘애인 있어요?’라고 묻는다면 모르겠는데.
남자친구 있어요? 왜 없어요? 어떤 남자가 이상형이에요? 라는 질문의 흐름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헤테로 외의 어떤 성적-그리고 로맨틱한- 지향은 고려하지 않은 전제라니! 내가 무성애자-아주 많은 분류가 있지만-면 어쩔 거고, 바이면, 레즈비언이면? 난 성적 지향을 확실히 하지 못해 퀘스쳐너리로 남겨두고 있는데. 그리고 내가 수많은 사람이 상상하는 바에 따라 시스젠더 헤테로이라 하더라도 연애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애인이 있는 걸 기본값으로 두지 않았으면, 그리고 제발 남의 일에 신경 껐으면.
게다가, 이 정도면 매우 양호한 수준이다. 내가 아직 어려 ‘그 나이면 결혼을 해야’하는 나이가 아닌 덕분이다. 흔히 결혼적령기로 여겨지는 나이가 되면, 남자친구가 있다고 할 경우 몇 살인지, 직업은 뭔지, 심지어는 수입까지 캐물으며- 없다고 했다가는 ‘우리 △△씨 남자 소개해줘야 하는데~’하는 오지랖도 감수해야 한다.
친밀감의 척도를 얼마나 무례할 수 있는가로 판단하지 않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