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전혀 웃기지 않고, 범죄이며, 존재합니다.
물론 통상적으로 임신 등에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는 나도 자유롭지는 못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후배에게 ‘애는 셋을 낳아야 한다. 그래야 애국’이라는 헛소리를 구구절절 하는 남성 차장-저런 인간이 내 결재자였다. ××-에게 ‘요새는 남자도 임신할 수 있대요~ 차장님이 하세요’라고 했으나 듣지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임금피크를 1년 앞둔 이 중년 남성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는 구역질이 나올 정도였는데, 회식 자리에서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문제였으나 그 내용이 ‘내가 회사 상사가 아니라 인생을 먼저 산 인생 선배로서~’-이말 법으로 금지했으면- 로 시작하는 세심하게 인류의 지성을 퇴화하게 하는 문장들이어서 더 심각했다. 어떤 남자가 좋은지 알려줄 수 있다는 둥, 아빠의 마음이라는 둥.
나를 포함한 직원들은 다른 건 몰라도 저런 사람을 만나면 안 되겠네, 하고 입을 모았지만. 결재 자료를 보지도 않고서 직원을 믿으니까, 하며 지문을 찍는-지문으로 인식해서 결재 승인하는 시스템이다- 사람한테 뭘 배우란 말인가. 반면교사?
게다가, 술김에를 빙자해 젊은 여직원들을 성추행하는 새끼가.
저녁 회식은 존재만으로도 해악이지만, 단결·이별·축하를 목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의 개소리를 몇 시간씩 견뎌야 한다는 점이 특히 끔찍했다. 다행히 술을 강권하는 분위기에 휩쓸린 적은 없지만. 알음알음 술잔을 돌리고-대체 왜- 자리를 바꿔 앉는-진짜 왜. 폭탄 돌리기 같은 상사 돌리기인가- 악습에 유연하게 대처해야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말이 붙는 것도 나쁘지만, 더 최악인 건 어린 여직원들에게 성추행하는 ××들이 있다는 것이다.
운 좋게도 나는 겪은 적도 본 적도 없지만 암암리에는 유구한 성범죄자의 이름이 떠돌고 있었다. 내가 화가 나는 건, 암암리에 돌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가해자는 멀쩡하다는 거다. 나도 전해 들은 건 많다.
회식 자리에서 제 옆에 앉은 젊은 여직원 한 명만 붙잡고 집적이기로 유명한 차장. 회사 컴퓨터로 비키니를 검색해 보면서 회사 여성 직원에게 ‘못생겼어!’‘성형 잘됐네’ 등 망발을 지껄이며 영성의 신체 부위를 노골적으로 보는 과장. 사람 좋은 척하며 술에 취해 사무실에 들어와 야근하는 신입 사원을 끌어안은 차장. 회식할 때 허벅지에 손을 올리던 누군가. ‘난 ××씨가 골뱅이가 되는 걸 보고 싶어’라고 말한 누군가. 그리고 침묵하는 사람들.
나는 안다. 내가 이렇게 글로 나열한다고 해서 어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나 사회부 기자가 이 사실을 파헤쳐주지 않을 거라는 거. 어차피 말뿐이니, 흐지부지 모르는 척 넘어가질 거라는 거. 시간이 훨씬 지난 일이니 덮을 거리도 없다는 거.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존재했고, 모두가 방관했다.
한때는, 차라리 나에게 그런 일이 있었거나 보았다면 나았을 거로 생각했다. 난 성추행을 좌시하는 조직에 미련을 두지 않았으며 순순히 입 다물고 있는 건 나라는 사람의, 나를 이루는 신념의, 자존감의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이건 개인이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아니라, 조직에서 나서서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속한 회사는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그러지 않았다.
사내 홈페이지에 익명게시판이 생긴 후 회식문화를 개선하자는 글이 올라오면서 그 안에 있었던 성추행과 성희롱이 알려졌다. 회사에선 성희롱을 신고할 수 있는 사내 부서를 알려주었다. 남차장 한 명, 주임 한 명으로 이루어진- 회사 사람. 그리고 노조에선 성희롱 예방? 근절?과 관련하여 각 부서를 돌아다니며 작은 화분을 가져다주었다. 대체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다.
참석자 명단에 서명만 하면 교육 시간이 인정되는 성희롱 예방 교육이 이뤄졌으며 교육을 듣고 온 남성 상사들은 평소처럼 말하고 ‘요새는 이러면 미투 되나?’라는 말을 덧붙였다. 농담조로 ‘미투!’를 외치는 남자 대리, 그때 머리통을 깨부쉈어야 했는데.
성범죄 고발 운동이 그들의 눈에는 한때의 유행어, 센스 있는 개그 소재에 불과하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자 울고 싶어졌다. 대체, 이렇게까지 젠더감수성이 없을 일인가?
아니, 최소한의 알량한 윤리 의식도 없이 껄껄 웃음을 터트릴 정도로 무지한 건가? 2차 가해를 방조하면서 떳떳할 정도로 인간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지 않은 건가? ……왜 살아?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회사 내에서도 뚜렷이 존재하는데 ‘여성가족부는 있는데 왜 남성가족부는 없냐. 역차별이다.’는 헛소리에 웃지 않는 게 다인 신세에 서글프지 않을 수 있을까? 역차별이란 표현의 문제부터 말해야 할까, 여성가족부가 영어로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인 것부터 읊어드려야 하나. 물론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지만.
‘스포츠댄스 배운답시고 춤바람난 여편네들은 확 패버려야 한다’고 말하는 중년남성은 안방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내 집인데 무슨 상관이냐며 당당하게 말하는 인간이었다. 동조하는 사람 없이도 제 의견에 큰소리칠 수 있는- 젠더권력의 정점에 있는 인간 말이다.
어떤 성별은 그 자체만으로 권력이 된다. 공기업의 장은 단 한 번도 여성인 적이 없고 임원진은 항상 남자로 가득하며, 본인이 차장을 달대 왜 비슷한 기수의 여성 동료들이 대리, 과장으로 머물러 있는지 살피지 않은 남성은 여성 상위시대를 운운한다. 그러며 우리 회사는 여자가 다니기 좋은 회사라고 말한다. 겪어보지 않은 자들이 요즘 여자들이 살기 얼마나 좋은 세상이냐고 지껄이는 꼴을 보면 저혈압이 나을 것 같다.
‘일 잘하는 사람이 승진하면 회사 차원에서도 이득인데, 왜 유능한 여직원들을 내버려 두는 거지? 낭비 아닌가?’
‘어차피 세금이잖아. 그 인간들은 본인이랑 같이 업소 잘 가줄 애들이면 되는 거지.’
친구의 의문에 자조하듯 대답했지만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았다.
지긋지긋한 유착관계. 끔찍한 프레임. 크고 작은 회사가 즐비한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는 성매매업소가 화려한 간판을 단 채 즐비했고, 여성 신입 사원에게 ‘언니들에게 잘하라’며 충고한다. 그들은 직급이 있지만 서로를 언니라고 부르는 경우가 잦으며 남성은 그러지 않는다.
남성은 쉽게 좋은 사람이 되며 여성은 쉽게 비난받는다.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이건 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고, 그래서 누구도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우리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더 이상 모르는 척 웃지 않을 것이다.
이건 나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