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지 말고 버려라, 존-버

사주에 제가 퇴사하는 것도 나오나요?

by 야기

+ "괜찮아 어차피 얼마 못 받아"는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됩니다. 3월 넷째주부터 매거진 "매일이 야기"(https://brunch.co.kr/magazine/stayyagi)에서 일상과 마음,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를 할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입사보다 짜릿한 퇴사를 계획하면서 나는 ‘이런 걸 굳이 돈 주고?’라고 고개를 돌렸던 것들에 한껏 가까워졌다. 사람이 봐주는 운세 따위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고 굳게 생각했지만 ‘좋은 말만 믿을 거면 뭐하러’라고 했던 주제에 나는 사주팔자와 타로에 얽혀버렸다. 캄캄한 업무와 지난한 고민 앞에 뭐라도 붙잡은 거에 가깝지만.


퇴사 전후로 타로를 세 번, 사주를 한 번 봤는데 특별한 취향이 아니라 타로가 더 싸서였다. 굳이 어느 쪽을 더 신뢰하느냐 하면 조선 땅에서 유구하게 내려왔을 사주였지만 인터넷으로 사주며 타로를 보는 마당에 무슨 상관인가 싶다. 나 역시 세 번을 SNS 메시지로 생년월일시 또는 마음에 드는 숫자를 읊었으니, 문명의 확장이란.


어쨌든, 고집 있는 함가맨인 내가 이런 믿거나 말거나 식의, 틀렸다고 해서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할 수도 없는 풀이를 통해 퇴사를 결정한 건 아니었지만 마음의 안정을 얻어 의지를 다지고 부담을 내려놓은 건 사실이다. 크게 ‘12월에 회사를 그만둬도 될지, 내가 계획한 일이 잘될지’를 물었는데 답변은 미세하게 달랐지만 공통된 의견은 ‘응! 그만둬도 되고 그거 해도 괜찮아!’였다.


거창하게 의미부여 한다면 인생의 커다란 분기점이 될 텐데 너무 단순하게 안심한 것 같지만 그 대답들은 정확히 내가 원하던 유였다. 좋은 말만 믿을 거면 왜 이런 걸 하냐고 의아해했던 과거의 나는 이해 못 하겠지만 나는 확신이 필요했다.


설령 그렇게 말한 게 일정한 규칙이 있는 사주가 아니라 주변 친구들이 입 모아 말했더라도 마음을 단단히 굳혔으리라. 나는 내가 아닌 제삼자가 ‘그렇게 해도 망하지 않는다’라며 다독여주길 바랐다.


그렇게 난 사직서를 낼 날만 재기 시작했다. 학생대도 안 쓰던 디데이 어플까지 내려받고서.




존버」가 어느 순간 대한민국 국민의 일상에 자리 잡았다. 구체적인 경위는 모르겠지만 사회가 얼마나 사람을 존버하게 하는지는 짐작할 수 있다. 일단 회사를 다닐 때의 나부터가 매일이 죽을 맛이었으니까.


원래는 ‘존나 버티다’란 의미이지만 나는 ‘존나 버리다’는 뜻으로 사용했다. 크게 다른 맥락은 아니라고 본다. 무언가를 억세게 견딘다는 건 무언가를-대개 인성이나 건강을- 버리는 과정이지 않은가. 적어도 난 전화 상담을 할 때 ‘아가씨’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아줌마라고 안 한 게 어디냐’는 말을 하는 직장 상사를 대하며 마음속으로 인성을 골백번 던졌다. 지금은 자본으로 치료한 척추나 뒤집어진 피부로 껍데기도 마찬가지였고.


마음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면 내 것은 진작 너덜너덜하고 새까매졌을 거다. ‘기분이 상하다’는 표현으로는 무마할 수 없는 유구한 좆같음은 시시각각 인내심과 도덕심을 시험했으며 필리핀에 청부살인을 요청하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워주었다. 진짜 불태워버리고 싶기도 했고. 전국의 통신수단을 망가트려 고객 응대를 중단하고 싶었고 인턴 때 임원의 뺨을 때려 정직원 전환이 안 돼야 했었다고 동기와 농담 같은 진심을 토하기도 했다.


나는 상냥한 사람이고자 했고 그전에 내가 받은 상처를 휘두르며 타인을 괴롭히는 이가 되지 않기를 원했다. 상식적으로 나와 그 외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다정하고 싶었는데.

하루가 거듭될수록 단순한 문의 전화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일이 잦아지기만 했다.


물론 이 사태는 내가 구제할 수 없는 게으른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지치고 갈리는 와중에 멈추지 못해서임을 알았다. 하지만 결론은 내가 그런, 내가 혐오하는 부류의 인간이 되어간다는 사실 뿐이었다.


12월은 무엇이든 버리기 좋은 계절이었다. 그래서 숨 쉴 때 마다 그리던 사직서를 내버렸다.




차장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오전 내내 긴장했다. 그토록 바라던 순간인데 심장은 커피에 담근 듯 정신없이 뛰었다. 공교롭게도 차장이 먼저 점심에 차나 하자고 쪽지가 왔지만 선약이 있는 데다 쉬는 시간마저 그 얼굴을 견디고 싶지는 않아 거절했다. 그러면 점심 이후에 보자고, 아침부터 숙취에 꼴아서 휴게실이나 제 자리에서 자는 게 일상인 사람의 호출이라 두 가지를 예측했다. 연말 화두였던 인사이동이나 상급자의 취미인 태도 지적일 거라고, 정확히 맞았다.


지나간 계절의 이야기라 순서는 흐릿하지만 ‘하고 싶은 말 없냐’는 통속적이고 짜증나는 질문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의 개운함은 또렷하다. 그 고루하고 나태한 낯짝이 당황스럽게 물드는 꼴이란.


‘왜 그러냐’, ‘다시 생각해라’, ‘이직하냐’, ‘정해진 회사가 없으면 더 다녀라’며 발목을 잡으려면 최소한 직원을 믿는다며 서류도 안 보고 결재하거나 누구도 물어보지 않은 인생철학을 읊기 전에 했어야 좀 먹혔을 거다. ‘아니요’, ‘아니요’, ‘안 바뀌어요’라는 무뚝뚝한 대답에 본인의 끔찍한 태도가 기여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겠지.


왜? 라는 부장과 실장, 마주치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유를 물어도 내 대답은 한결같았다. ‘전 이 문제를 3월부터 생각했어요. 자유와 행복을 찾아 그만둡니다.’ 내가 단호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생각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린 결정에 관한 무수한 잡음들을 내가 고려하지 않았을 리가.


걱정과 우려는 진작 끝냈다.




문득 지난 3월의 일이 떠올랐다. 전날과 그날까지 급한 일이 말도 안 되게 휘몰아치고 있을 때 굳이 나에게 ‘너 그딴 식으로 하는 거 네 부모 욕 먹이는 거야’라고 했던 담당 차장. 격한 민원에 시달려 예민한 태도이긴 했지만 21세기에 하급자의 가정교육을 운운하던 일 잘하고 착하다던 그 차장, 잘살고 있을까? 잘살고 있겠지. 아마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부하 직원의 잘못을 굉장히 무례한 화법으로 비난했다 한들 그는 성격은 좀 급해도 다른 차장들과 달리 똑똑하고 적극적인 데다 어지간하면 화를 내지 않는 괜찮은 사람일 테니까.


그 이후에도 나는 그 ××와 웃으면서 사적인 잡담을 나누었고 성실하게 그의 지시를 따랐지만 그가 했던 말을 잊은 적은 없다.


세상에는 지워지지 않는 게 존재한다. 연필도 자국이 남고 볼펜을 화이트로 덮어도 희미하게 그 색이 보이는 법이니까.




그래요, 저는 지금 자발적 무소득자입니다. 젊은 날의 치기라고 손가락질하거나 말거나, 저는 오늘에 절망하지 않고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간을 즐기고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히 표현하고 있으며 나를 스치는 많은 사람에게 다정하려 노력합니다.


시간이 더 지나면, 어쩌면 저는 후회할 수도 대단한 사람이 되어있을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지금은 맑은 날의 흰 달을 보면 웃음이 나오고 느슨한 바람을 마음껏 만끽하고 있습니다.


행복하네요. 여러분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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