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후회는 분할상환 해주세요.
앞서 말했지만 난 생각이 정말 많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현재와 미래를 저울질하며 더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계속 노력했다. ‘언젠가’를 위해 지금을 소모하는 방식은 익숙했으나 있을지도 모를 훗날을 기대하며 당장 빈곤한 마음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런 태도에 질려버린 거다.
퇴사 후에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공부 따위를 적으며 달콤한 상상에 젖을 때면 새카만 잉크가 그 그림에 뿌려지곤 했는데, 그건 타인의 어설픈 충고가 아니라 내가 내 기대에 못 미치는 사람이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었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동아리에 들어가 지금 보면 부끄러울 소설을 끼적이고, 본격적으로 설정을 짜서 전개를 고민한 건 열일곱이었다. 최초의 덕질. 최애캐를 향한 넘치는 사랑을 주체하지 못해 써버린 글은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고, 1년 만에 끝을 맺은 열여덟- 단순한 취미 생활이 꿈으로,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국내 최고의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다닌다는 유의 희망을 품었던 시절에는 노벨문학상을 받겠다는 엄청난 포부를 새긴 적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잊어버렸다. 그게 다시 살아난 거다! 나라고 왜 대단한 글을 못 쓰지? 내가 세계적인 작가가 될지 누가 어떻게 아는가. 젊을 때의 치기이며 공허한 망상이라고 헛웃음을 짓든가 말든가, 꿈을 쥐고 있다는 건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하고 커다란 문제였다.
언젠가는 독자의 위로와 공감이 되는 글을 써서 돈과 명예를 끌어안겠다는 목표를 세우며 소설을 놓지 못했다. 놓지 않은 거지. 나는 글쓰기를 아주아주 귀찮아하면서 아주아주 사랑하는걸.
그 맹렬한 기세는 입사와 동시에 수그러들었다. 오죽하면 트위터에 ‘직장인이 내는 회지는 생에 남긴 마지막 유서’라는 말이 폭발적인 리트윗을 얻었겠는가. 일곱 시에 등교해 아홉 시에 하교한 적도 있으니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회사에 있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게 잘못이었다. 회사에서 누적되는 피로는 학교에서 조는 정도의 피곤함과는 결이 달랐으니까.
하지만, 어찌 되었건, 솔직히 말하면 난 기본적으로 내가 똑똑하다는 걸 의심하지 않으며 재능이 있다고 믿었다. -망할 체육 빼고- 그리고 설마 죽기야 하겠느냐는 막연한 자신감도 있었다. 배우고 싶은 게 많았고 회사를 그만두면 공부할 목록도 차근차근 써 내려갔다. 그걸 적을 때면 마음은 몹시 들떴고,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수백 번 고민하고,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불행과 좌절을 떠올렸으며 내가 도달하지 못한 성공과 행운을 수십 번 그렸다.
내가 주저하는 건 어쩌면 내가 나를 가장 잘 안다고 확신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나는 내가 얼마나 나태한지 너무나도 잘 아니까. 그리고 내 주변에는 기함할 정도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체능에 특출하며 영어와 일본어에 능숙한 친구, 외국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하며 정착을 준비하는 친구들, 회사에 다니면서 다른 공부도 꾸준히 하는 친구들,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에 다니면서도 외부 활동도 꼼꼼히 하는 친구. 이게 보통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기준에선 스스로 걱정스러워질 정도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었다. 저만큼은 노력해야 저 정도의 성과를 보이는 거라면, 정말 내가 뭐라고.
내 발을 잡아끄는 건 깊숙이 박힌 의심이었다. 네가 정말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해? 정말? 아니면 어떡할 거야? 그렇게 대단한 노력가도 아니면서.
나는 수십, 수백 번 질문했다. 나는 대한민국 교육체계에 익숙해진 사람으로 강제성이 있는 스케줄은 빡빡하게 지키면서 개인의 의지에 맡긴다면 핸드폰을 부여잡는 유형이다. 자본주의에 길들어 돈 내고 직접 가는 발레학원은 거의 빠지지 않았으면서 인터넷 강의는 신청하고 미뤄두다 까먹는 게 일상인.
나의 성실함은 강제성이 있을 때 빛을 발한다. 나는 나를 잘 모르지만 가장 나를 잘 알았다. 그런 내가 회사를 벗어나서 어떠한 상벌도 없는 환경에 놓여 능동적으로 움직일 거라 단언하긴 힘들었다. 스스로조차. 아니, 누구보다 나 자신이었으니까.
게다가 공부하려는 분야가 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재능이 없으면? 금방 흥미가 떨어지면? 난 쉽게 호기심을 느끼고 쉽게 질리곤 한다. 대개 막연히 상상만 하다 의지를 잃어버리기 십상인데, 그런 내가?
내가 그 무수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회사에 다녔던 이유는-심지어 적성에도 안 맞는데- 이 일이 아니라 다른 분야를 접하더라도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둘지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어디나 다 고만고만하다면 연차나 쌓이는 게 제일이니까.
하지만 난 생각이 많았고, 의심도 많았으며, 무엇보다 나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내가 특별하다는 걸 의심한 동시에 특출하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소위 말하는 ‘쿨’한 성격도 못되고 멋진 사람의 다정한 에세이처럼 ‘대단하지 않으면 뭐 어때?’라며 마음을 다독이지도 못하는 내가, 노력하는 걸 귀찮아하면서도 욕심이 많아 뭐라도 뒤적이는 내가 선택한 방법은 아주 사소했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끝없이 스스로 말해주는 것. 단순하고 허울 좋은 문장에 불과하다 해도 내가 그 암시를 딛고 행동한다면 그건 더 이상 공허하지 않다.
나는 어쨌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고, 이렇게 뛰어난 나를 뽑은 회사는 운이 좋았다. 그리고 고루하고 얄팍한 태도로 나를 놓친 건 불운한 일이다. 그 회사는 나라는 존재를 담기엔 그릇이 작았고, 나는 회사에서 과분한 사람이었다.
나를 빛내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열아홉에 공기업에서 합격한 대단한- 그런 수식어가 붙지 않아도 나는 충분히 가치가 있는 존재이다. 그럴싸해 보이는 껍데기를 보이는 데 익숙해졌지만 벗어던진다 한들 ‘회사를 그만둔 나’에 적응하기밖에 더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사직서를 썼다.
그래도 나는 무엇인가 해낼 거라는 무한한 믿음을 주는 중이며 그렇지 않아도 자책하지 않을 연습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