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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송이 Feb 15. 2021

화투 패는 오늘도 찰싹!

늦게 빠져들기 시작한 바로 그것

 아내와 휴일을 함께 하다 보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취미생활이라는게 참으로 고약한 부분이 있다. 집중을 해야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집중할 때는 남이 말하는 것이 하나도 안 들린다. 하지만 마냥 취미에만 집중하다 보면 뿔이 난 아내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테니 취미생활이 없는 것도 문제고 있는 것도 문제다. 맨날 한자리에 한결같이 앉아 바보상자만 쳐다보기에는 대화도 없어지고 몸도 어쩐지 찌뿌둥 해지는 것 같던 그날에 우리는 화투를 만났다.


 화투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깊게 발을 담근 적이 없던 터라 내가 처음 아내와 맞고를 치기 직전에는 점수 계산을 할 줄도 몰랐다. 그런데 우연히 얻게 된 화투로 맞고를 치면서 나와 아내는 세상모르게 화투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우리 집에는 포커카드도 있었기 때문에 아내와 나는 원카드(지역마다 룰이 다르다는 그 게임)도 해봤지만 이 정도로 재미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원카드도 재밌긴 하지만... 포커를 아직 몰라서 그런 건가? [출처: Pixabay-Gerd Altmann]

 48장인 화투패로 맞고를 치고 있다 보면 정말로 다양한 전략이 있음을 알게 된다. 먼저 7점을 내기 위해서 다양한 화투패를 모으는 것도 재미있지만, 운이 좋으면 정말로 상대방이 냈던 패까지 싹 쓸어 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워낙에 좋은 패가 몰려서 꼼짝없이 당할 것 같은 상황에서 나에게 딱 필요한 패가 나와 역전을 할 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스릴이 넘친다. 그리고 갑자기 튀어나와서 기분 좋게 해주는 보너스 피들도 이번 판은 누가 이길지 예측을 매우 어렵게 한다.


 화투에 그려진 12가지의 그림은 1월부터 12월을 뜻한다고 한다. 맞고를 한 판 치고 나면 마치 한 번의 인생을 산 듯하다.  365일로 반복되는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때는 우주의 기운이 나를 돕는 것처럼 좋은 일이 겹쳐서 일어나다가도 어떤 때는 모든 액운이 나에게 몰린 것처럼 하는 일마다 망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잘 되고 있던지 안 풀리고 있던지 끝까지 신중함을 잃지만 않는다면 혹시 모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화투를 할 때는 승자에 가까울수록 겸손하고, 패자에 가까울수록 투지를 불태워야 한다. 비록 게임이지만 그 안에는 인생이 있다.


 그렇게 재밌는 게임을 서로 마주 앉아하고 있다 보면 지루했던 시간도 금방 지나가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있는 우리를 본다. 아내와 내가 뒤늦게 화투의 재미를 알게 된 이유다. 게임을 하면 항상 내가 더 잘한다라고 생각을 했었다. 휴대폰 게임의 복잡한 시스템도 이해해야 하고 각종 보상을 받는 방법도 내가 더 잘 알고 게다가 순발력도 내가 더 낫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맞고를 치다 보면 게임을 잘한다라고 느꼈던 것이 정말로 게임의 극히 한 부분만을 가지고 내가 착각을 한 것임을 깨닫는다. PC나 휴대폰 게임을 하다 보면 내가 재미를 느낄 새도 없이 재미가 날 스치고 지나가 버리고, 그 자리에는 똑같은 행동만을 반복하는 한 마리의 영장류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여전히 우리는 심심할 때 화투패를 가져온다. 맞고를 치다 보면 화투 패만 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본다. 상대방과 대화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패에 대해 좋은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그래서 맞고는 끊임없이 사람을 보아야 하는 게임이다. 맞고는 온라인에서 모르는 사람과도 게임이 물론 가능하지만, 사람을 보아야 하기에 우리는 반드시 오프라인으로 맞고를 친다. 오늘도 어떻게 날 이겨볼까 생각하는 아내의 모습이 매우 귀엽다.


 하루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은데 사람을 보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는 것이 너무 아쉽다. 그렇다고 사람을 만나면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금방 대화거리가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그럴 때는 조용히 화투를 꺼내보자. 점당 10원을 초과하지만 않는다면 인간관계 개선에 상당한 효험을 볼 것이다.

지나친 도박은 거지꼴을 못 면한다 [출처: Pixabay-mohamed Has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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