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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송이 May 05. 2021

상실보다 무서운 상식의 시대

잃은 것과 알지 못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두렵나?

 며칠 전 업무에 대한 이야기로 과장님과 옥신각신 한 적이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닌 것 같았고, 과장님은 이렇게 하면 되는 것을 왜 못하느냐라는 입장이셨다. 개인적으로 과장님은 아주 훌륭한 분이시고 나보고 과장님의 좋은 점에 대해서 다섯 가지 정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그 즉시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과장님께서 나의 무능함도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해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중에 말씀하시길 물론 우리가 담당해야 할 업무는 아니었지만 필요한 업무였음을 다시 설명해 주셨다. 그렇다, 해야 할 일과 필요한 일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 법이긴 하다.


 사소한 해프닝이긴 했지만 그 당시에 나는 내 위치에서 도대체 어떠한 일까지 할 수 있어야 할지,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가뜩이나 하루가 다르게 일을 하면 할수록 들어야 한다는 교육이 자꾸만 늘어간다. 안전이나 성인지력에 대한 교육은 물론 이거니와 개인적으로는 코딩에 대한 수업도 들었으며, 유아교육에 대한 내용들도 가끔 듣고는 한다. 진짜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영어공부 같은 건 하지도 않았는데 나의 휴일은 언제나 공부로 가득 차 있는 기분이다.

[Pixabay - Joseph Mucira의 이미지]

 공부를 왜 하는가 하면 그리 거창한 목적도 아니다. 그저 손해보지 않기 위해서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것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고 시작하면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할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교육이 널리고 널렸다. 이를테면 코로나 19로 정부에서 보조금을 준다고 하는데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언제까지 써야 하는지 같은 건 내가 찾아서 보는 게 아니면 모르고 신청도 못하지 않겠는가? 남들이 다 알고 가져가고 있는 것을 내가 못하고 있을 때 나는 그런 걸 손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온통 그런 것 투성이다. 유튜브에서 동영상 목록만 봐도 "이거 꼭 알고 가세요!", "이거 모르면 손해!"라는 멘트들은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단골 멘트들이다.


 그렇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이 손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사람들의 "상식"을 모르고 살고 있는 사람인데!  더 이상 길바닥에 돈을 흘리고 다니거나 나 스스로의 몸을 다치게 하거나 하는 일들만 손해라고 부를 수가 없다. 그냥 바닥에 누워서 숨만 쉬고 있어도 매 초 나는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니!


단순히 내가 신경이 과민한 것이라면 참 좋겠지만 며칠 전에 일어나던 그런 일들을 몇 번 겪다 보면 그냥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만도 없다. 게다가 손해에는 꼭 물질적인 부분만 있는 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남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 듣고 보니 나는 처음 듣는 신기한 내용인지라 무슨 내용인지 들어보려고 가보면 이미 그 순간 남들에게 나는 불편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세상에 누가 이미 한참 하고 있던 말을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겠는가? 그러니까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지 성실하게 배울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몰라서 손해 볼 일이 도처에 널려있다.

 

 '공포는 언제나 무지에서 솟아난다'라고 랄프 왈도 에머슨이 말했다. 그분께서는 배우는 자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기 때문에 두려움에 용감함에 맞서서 배우라는 의미로 말씀하셨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이 "배우는 자"인지 깨닫지 못한 채 두려움에 맞서야만 한다. 나는 모르지만 세상이 "상식"이라고 부르는 것들과 말이다.   

[Pixabay-Pete �의 이미지]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간다. 내가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알려준 컴퓨터 교육은 고작해야 메일 계정을 만드는 일이 전부였던 것들이 이제는 학생들에게 코딩을 알려주는 세상이 왔다. 곧 그 어린 친구들이 어른이 되면 코딩이라는 것은 상식이 될 것이다. 그때는 우리에게 해당이 없었던 지식들이 몇 년만 지나는 상식이 된다. 어느 뉴스에서는 90년대에서 2000년대 까지를 이르는 MZ세대들이 입사를 하면 기성세대들에게 본인들의 문화를 알려주는 교육을 한다고 했다.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새로운 상식들이 늘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얼마 전 읽었던 『노르웨이의 숲』이 생각난다. 그 책에서는 무언가를 잃은 사람들에 대해서 정갈하게 표현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제목은 『상실의 시대』였는데 과연 그 제목이 내용을 훌륭하게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잃은 것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해 그렇게 까지 표현할 수 있었는지 정말 감탄할 정도였다. 그들 중에는 잃은 것에 대해서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서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는 생각이 요즘은 바로 '상식의 시대'가 아닐까 싶다. 그 의미를 내 나름대로 정의해보자면 "무언가를 모른다면 알기전까지 계속 고통스러울 시대"라는 뜻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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