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송이 Aug 11. 2021

차(를) 버림,폐차를 준비하며

중고차로 시작해 폐차가 되기까지

 "똑, 똑, 똑... "

 차량 종합검사장에서 바깥으로 나온 내 차 바닥에서 나는 소리였다. 내차 바닥을 보니 끊임없이 액체가 떨어지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에어컨을 켜면 물이 원래 자동차 바닥으로 떨어지게 만들어져 있었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종합검사를 하는 정비사 분이 우리 부부에게 걸어왔다. 그리고 침착하게 말씀하셨다.


"지금 종합검사를 받고 있는데 갑자기 브레이크 밸브가 터져버렸네요. 차에서 오일이 새고 있어서 브레이크가 작동을 안 해요. 방금 저도 사이드 브레이크로 세웠네요. 저 차는 레커차를 불러서 가까운 정비소에서 정비받으셔야 해요. 일단 점검결과 알려드릴 테니까 들어오세요."


 지금까지 브레이크 밸브가 뭔지 몰랐지만 친절한 설명을 들으니 갑자기 뭔지 알 것 같았다. 옛날 영화에서 보면 흔히 킬러가 목표로 정한 희생자를 사고로 죽이기 위해 차 밑으로 들어가 끊어 놓는 곳. 불쌍한 희생자는 운전을 하다가 브레이크가 말을 안 들어서 사고가 난다. 설명을 들으니 딱 그 부분이 그 부분이다. 그 희생자가 내가 될 뻔했다.


 내 차는 생각보다 많은 곳이 아팠다. 브레이크 밸브는 당장 안 고치면 차가 안 움직이는 부위지만 그것 말고도 고칠 곳이 4곳이 더 있단다. 사람으로 치면 중환자나 다름없는 그 차를 일단은 고쳐야 했다. 차가 없으면 버스 정류장 하나 안 보이는 이곳에서 한참을 걸어가야만 한다.


 결국 우리 부부는 레커차를 불렀고 끌려가는 내 차 뒤 좌석에 앉았다. 이 날씨 좋은 날 남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어딘지 모를 거리를 쏘다니는 모습 행복에 가장 가까울 수 있는 상황이었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단, 그게 정상적으로 잘 굴러가는 차였다면 말이다.


 간신히 도착한 가까운 정비소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정비사님에게 점검결과를 보여주며 과연 이걸 모두 수리하는데 비용이 얼마나 들지를 물어보았다. 성실한 정비사님은 이리저리 전화를 해보더니 도합 얼마가 들지를 알려주셨다.


 현재 내 차량 가액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돈이 정비비로 나가게 생겼다. 게다가 그렇게 돈 들여 고쳐도 1년 정도는 잘 탈 수 있을 것이라 이야기하셨다. 더 이상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George Sultan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차를 폐차해야 한다고 하니 아내도 마음이 복잡한 모양이다. 내가 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같이 와서 이 아픈 차를 보고 있었다. 5년, 길면 길고 짧으면 짧을 수 있는 이 시간은 내가 이 차를 타고 다녔던 시간이었다. 내가 이 차를 가지기 전부터 아내를 알고 있었으니 이 차에는 아내와 함께 했던 모든 시간이 함께 들어있는 셈이었다. 차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생각해 보면 초보운전자로서의 무모한 행동을 하고 있을 때는 이 차와 아내가 늘 함께 였었다. 난생처음 고속도로를 타게 되었던 것은 차를 몰게 된 지 한 달이 안되었을 때 그때는 여자 친구였던 내 아내가 내가 보고 싶다며 슬프게 울었기 때문이었고, 나는 그때 밥을 먹다가 벌떡 일어나 난생처음 고속도로에 차를 던졌다. 홍대가 가고 싶다고 하는 여자 친구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주말에 가장 사람 많은 시간에 차를 몰고 가봤고, 부산여행을 가고 싶다고 해서 자동차로 6시간 가까이 휴게소 4~5곳을 전전해 가면서 운전을 해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멍청한 일이었지만 사랑이 있었기에 도전했고 결국 결과적으로 사랑은 지금 내 옆에 차와 함께 남았다.

Jonathan Borb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차 내ㆍ외부에는 아내와의 추억이 구석구석 묻어있다. 차 주유구 쪽 외부에 흠집이 나 녹슨 곳에는 아내가 때워봐야 돈만 든다고 정비소에 가는 대신 예쁜 스티커를 붙여주었던 곳이고 대시 보드는 아내가 예쁜 발을 자주 올렸던 곳이었다. 보조석에 아내 이름이 적혀있는 스티커는 언제나 옆자리에 탄 사람이 아내의 이름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아내의 친절한(?) 배려가 담겨있다. 핸들커버가 캡틴 아메리카 로고가 있는 건 한참 내가 마블 영화에 빠졌을 때 아내가 친히 골라준 선물이다.


 한때는 업무로 다른 곳에 가야 하면 걱정 없이 가게 해주던 나만의 전용차였으며, 결혼식을 마치고 우리를 공항까지 모셔다 준 웨딩카였기도 했고, 또 휴가 때 아내와의 여행을 가게 해주는 셔틀버스 같은 존재였던 내 차가 이제는 추억 속으로 사라질 예정이다. 아쉬움에 고쳐서 써볼까 생각이 들어도 결국 현실로 부딪치는 것은 돈이고 안전이다. 나 혼자야 어찌어찌해볼 만할 수도 있지만 결국 소중한 아내와 아기가 타기에는 이 차는 안심이 안된다.


 이제는 떠나보내야 할 차이지만 그동안에 이 차가 준 많은 것들이 무척이나 고맙다. 어렸을 때 돈이 없던 시절에 크게 무리하지 않아도 가질 수 있었던 선물이었고, 차의 세부적인 소모품에 대해서 끊임없이 배울 수 있게 해 준 백과사전이었으며, 무엇보다 어딘가 부딪쳐 찌그러지더라도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게 해 준 내 마음속의 진정제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지금 아내와 나는 폐차장에 전화를 하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알아보는 한편, 새 차를 언제 사야 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 늦어도 내년 초쯤에는 새로운 차가 우리 가족 앞에 있게 될 전망이다. 새 차가 생긴다면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관리도 잘 되고 아내도 행복해할 것이며, 우리의 생활도 더더욱 윤택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차의 편리성, 안전성, 정숙성과 같은 차의 기능적인 부분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향상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게서 독립을 해나가야 했던 어렵고 힘든 시기를 함께 해쳐나갔던 물건이었기에 지금 내 차가 가끔 생각이 날 것만 같다.

 

 애니미즘이라고 하는 원시 신앙에 의하면 만물에는 영혼이 있다고 한다. 무언가 인상적인 자연물 옆에 섰을 때 우리가 특정한 느낌을 받는 것에서 왜 애니미즘 생겼는지 알 것 같다. 그 믿음에 비추어 보면 자주 사용하고 정들었던 물건에 영혼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내 영혼의 조각이 그 속에 깃든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정들었던 물건을 만질 때 그 누구에게도 느낄 수 없었던 동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영혼 조각이 들어있을지도 모를 이토록 정든 물건을 떠나보낼 준비를 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함께 했었던 시간을 기록하는 일일 것이다. 조금은 슬프지만 아내와 함께 이 자동차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리면서 빨리 정리하고 빨리 새로운 차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절대 정밀검사 재검사 기간 때문이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미가 울었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