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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송이 Aug 04. 2021

매미가 울었지만 나는 듣지 못했다

 편리함으로 잃어가는 불편함 속 낭만

 이번 해 여름은 예상과는 달리 엄청난 더위로 숨이 막혔다. 내 기억력은 일 년이라는 시간을 감당할 능력이 없기에 늘 올해 여름은 작년보다 더운 것 같다고 느낀다. 그래도 참 다행인 것은 집에 에어컨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 집안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누워있으니 집에서 만큼은 여름이 여름 같지 않다. 아내와 마주 보며 에어컨을 잘 샀다고 웃는다.

인류 문명의 정수![출처: pixabay]

 에어컨을 새로 샀던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그전까지 아내는 내가 출근을 하고 난 뒤에 텅 빈 집안에서 하루 종일 있었는데 넓은 집에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여름만 되면 아내는 습하고 더운 집에서 축축 처져 있었는데 처음에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도 그럴 것이 새벽에 출근해서 야간에 퇴근을 하고 사무실에는 에어컨이 있으니 더위를 느낄 새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 아내가 에어컨을 산다고 했을 때 "왜? 난 별로 안 더운데?"라고 했다가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 말은 아직도 아내에게 있어 "남편의 망언" 리스트에 올라 두고두고 회자되는 중이기도 하다.


 에어컨을 사기 전과 후로 우리 가족의 모습은 많이 변했다. 여름에 조금이라도 시원한 바람을 느끼기 위해 활짝 열어두었던 창문은 이제는 에어컨 실외기의 웅웅 거리는 소리를 막기 위해 꼭꼭 닫아두게 되었고, 바깥으로 자신 있게 나가는 일이 더 줄었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와 폭염을 고려하더라도 확실히 줄었다.


 몇 년 전 여름 이전 집에서 여름을 맞았을 때 아내와 나는 주말이 되면 헥헥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주말에는 늘 가장 활동하기 편한 여름용 잠옷을 입은 채로 더위 속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 놓은 채로 바깥에서 제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만을 바라면서 낮잠을 자곤 했었다. 아내는 매 여름이 되면 그 얘기를 한다. 한낮에 쨍쨍한 햇살 아래서 내가 아내 손을 꼭 잡고 낮잠을 자는데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옷이 너풀너풀거리는 그 모습이 행복했다고.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아마 부터 절대로 안된다고 반대를 할 것이. 예전 창문을 열어도 뜨거운 여름날을 버텨보고자 샀던 게 에어컨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내가 기억력이 나빠도 에어컨을 왜 샀는지는 한여름 고통 속에 각인된 억이기에 에어컨을 볼 때마다 떠오를 것이다.


 날이 갈수록 우리 집에는 생활을 돕는 물건들이 하나씩 늘어간다. 최근에는 정수기가 생겼다. 매번 우리 집까지 낑낑대며 생수를 옮기던 나의 큰 일과는 안녕을 고했다. 물이 아까워 생수통 안에 있는 물도 함부로 버리지 못하다가 처음 정수기가 들어온 기념으로 마시다 남은 물을 가볍게 싱크대로 버렸다.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짜릿함이 느껴진다. 식수를 낭비해 보다니! 역시 오래 살다 보면 좋은 일도 가끔은 일어나는가 보다 싶었다.


 이제 우리 가족이 TV를 보면서 유심히 보는 것은 건조기, 식기세척기, 음식물 건조기를 보고 있다. 집안일에 들어가는 시간에 대해 가성비를 따진다면 위에 언급한 순서대로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가전제품은 돈을 많이 들이고 다양하게 구매할수록 생활이 편해지는 것은 진리이니 아마도 저렇게 구매할 때쯤 우리 가족의 생활은 지금과 엄청나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8월에 접어들면서 문득 이번 여름에는 매미가 울지 않는가 싶었다. 매미 소리를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바깥에 나가 열심히 귀 기울이고 들어 봤다. 멀리서 매미소리가 들렸다. 에어컨으로 인해 덥지 않은 여름이 왔다. 더 이상 창문을 열고 있지 않으니 제대로 매미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 매미는 이 여름날에도 변함없이 울고 있었지만 나는 매미소리를 듣고 있지 않았다.


  삶이 더 편해져 간다면 불편했던 일들이 하나하나 없어져 갈 것이다. 건조기가 생긴다면 옆에서 꼬불꼬불한 빨래를 팍팍 털어가며 아내와 함께 힘들게 빨래 널기를 할 이유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식기세척기를 산다면  설거지로 매번 가위바위보를 할 이유도 없을 테고, 음식물 건조기를 산다면 매번 출근하는 나에게 아내가 아침부터 밝게 웃으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건네줄 일도 없어질 것이다.


 이상하게도 편안함의 초입단계인 에어컨과 정수기를 마련했을 뿐인데 내 안에 소중한 무언가 잃은 것 같다. 이 두 가지의 가전이 생기면서 앞으로 무더운 여름날 집에서 헥헥거리다가 계곡으로 가서 시원하다고 행복하게 웃을 일은 줄어들 것이고, 더 이상 낑낑거리며 집까지 생수를 들고 간 것에 대한 아내의 칭찬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행복하고 좋은 일이건만 가슴이 아픈 것은 전반적인 편안함은 늘었을지언정 기쁨의 종류가 줄어드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인가 싶다.  줄어버린 기쁨만큼 아낀 시간을 새로운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오늘부터 고민해봐야 할 일이다.

행복도 끝없이 찾아야만 하는가 보다[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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