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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송이 Aug 03. 2021

중독이 끝나면 또 다른 중독

언제쯤 나는 자유로워질까?

 나는 여태껏 천사 같은 아내와 살았기 때문인지 크게 말다툼을 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천사 같은 아내마저도 내 행동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거나 잔소리를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카테고리는 다양하지만 이 모든 행동들은 "중독"이라는 단 한 가지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돌이켜 보면 나의 모든 삶은 중독이라는 단어에서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담배를 매우 늦게 배웠다. 그렇게 24살에 대학교 때도 안 하던 담배를 군대에서 배웠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했던가? 처음 담배를 피웠을 때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이런 걸 여태까지 몰랐다니'였다. 콜록거리거나 맛이 쓰다는 느낌이 아니라 이제야 너를 알다니였으니 애연가가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렇게 담배와의 만남은 아내와의 연애 중에도 이어졌고 결국 결혼하고 난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아내가 냄새가 난다, 같이 안 놀겠다 등등 갖가지 회유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꿋꿋하게 (몰래몰래)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필 때면 다른 생각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졌기 때문이었다. 담배를 끊어보겠다고 며칠간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신경질이 나기도 했다. 그런데 때 마침 다행스럽게도 담배값이 오르고 정부에서 금연에 대한 지원을 해준다는 홍보에 나도 한번 끊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큰 맘을 먹고 보건소에 들어가서 금연보조제를 받아가면서 금연을 시작했다.

금연클리닉을 다닌 것이 처음은 아니었으나 마지막에 다닐 때는 아내가 옆에 있어주었던 것이 금연에 큰 도움이 되었고 결국에 지금은 1년 이상 금연을 하는 데 성공했다. 담배를 끊게 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돈을 아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용돈에서 담배값만큼 모자라던 돈이 더 이상 아내에게 손을 벌릴 필요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담배의 그 찌든 내가 더 이상 나에게서 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뿐 나의 나약한 정신은 또다시 다른 것을 찾기 시작했다.


 커피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 것은 그렇게 역사가 깊지 않았지만 보건소에서 상담을 해주셨던 분이 절대 커피는 담배와 같이 하지 말라고 하셨다. 예전의 습관 때문에 하나를 시작하면 다른 하나를 하고 싶어 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렇지만 나의 졸음을 쫓기 위한 수단인 담배가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커피를 더 마시게 되었다. 상담사분의 우려대로 커피로 인해 담배를 피우게 되지는 않았지만 커피를 심각하게 많이 마시게 되었다.


 커피에 대해서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시중에 파는 커피는 항상 설탕과 크림이 들어있었다. 하지만 담배를 끊을 때쯤에는 설탕과 크림이 없는 커피가  많이 팔리게 되었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만 마셨던 나에게 이러한 커피는 들어오자마자 나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역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니 시도 때도 없이 마시기 시작했고, 커피가 없으면 주말이고 평일이고 무기력해짐과 불쾌함, 끝 모를 부정적인 생각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두 번째의 중독에 대해서 아내는 다행히 담배만큼 불만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치부할 수 있으며, 가족에게 해롭다고는 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래도 딱 한마디 하는 것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당신은 중간이 없는 것 같다'라고...


 커피를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커피의 부작용 중 피부가 나빠진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였다.  다행히 의식적인 노력으로 지금은 하루 세잔 정도로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최소한 어느 정도 마시면 그만 마셔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된 거다. 지금은 곧 세상에 나올 아기를 앞두고 항상 내 소중한 주말 시간을 빼앗는 게임중독과 싸우고 있다...


 중독은 당연히 좋지 않은 증상이다. 무언가에 중독이 된다면 그것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무언가가 없을 때 쓸데없이 과도한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중독이 좋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면서도 빠져드는 것은 사람의 정신이란 생각보다 약한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또한 세상에는 사람의 정신을 유혹하는 것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나이를 먹고 어른이라고 불릴 나이지만 아직도 어른이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흔들리는 것이 많다. 공자님이 말했던 불혹이라는 나이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모든 중독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는 않겠지만 중독 앞에서 내가 지금 이렇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것들이 그 나이쯤 되면 결실을 맺으리라 희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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