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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송이 Jul 20. 2022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사람

 가족으로부터 추천받은 책인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을 읽었다. 신경정신과 교수였던 작가가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수용소를 들어가 죽음과 삶을 넘나들면서 인간의 정신에 대한 깨달음을 담은 책이었다. 내용도 물론 좋은 책이지만 결정적으로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문장은 아래와 같았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소위 자아실현이라는 목표는 실현시킬 수 있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자아실현을 갈구하면 할수록 더욱더 그 목표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수적인 결과로써만 얻어진다는 말이다."


 사실 내가 그토록 자아실현이라는 것을 바라고 또 바라 왔다. 자신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삶과 항상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삶이란 얼마나 이상적이며, 아름다운 삶일지를 꿈꿔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나의 발목을 붙잡는 것에 대한 이유를 찾다 보면, 나의 게으름과, 의지박약, 혹은 그맘때쯤 생기는 내가 그 일을 할 수 없는 그럴싸한 이유들 때문이었다. 언제나 이 모든 것들은 나를 자책하게 했고, 이를 만회할 무모한 계획들을 다시 세우게 했으며 이는 또 다른 절망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했다.

한번 만든 고리를 스스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 않은가 [출처: Pixabay- krzysztof-m]

 자아초월을 통해 자아실현이 가능하다는 의미란 내가 나일 때는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내가 나로서 살았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내가 나였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살아오게 한 존재가 나 이기에 나를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이야기였다.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경지에 대해 도전하고 있던 나에게 새로운 상황이 닥쳐왔다.


 아이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육아라는 새로운 일이 생겼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나의 시간과 노력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스스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이 작은 아이가 생기자 나의 삶도 달라졌다. 돈을 위해 회사를 나가야 하는 나에게 집안에서 고생하는 아내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업무시간을 조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아기와 아내가 모두 잠을 자는 이른 새벽에 나가서 내가 매우 필요한 시간인 저녁쯤에 돌아와 같이 아기를 씻기기 시작했다. 아기의 정신건강을 위해 나의 취미였던 퇴근 후 TV보기도 사라졌다. 물론 휴대폰도 사용하기 어렵게 되었다.


 어쩌면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두 시간 반 남짓한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혼자 혹은 아내와 둘이 살 때 보다 더 많이 웃고, 대화도 늘었으며, 공부도 더 많이 한다. 사실 내 인생에 추가된 것은 아기 딱 하나다. 그런데 아이가 예뻐 보이면 예뻐 보일수록 예전 같았으면 혀를 내두를 일과들이 아무렇지 않게 보인다. 나의 자아실현이 이렇게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게 있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나를 빼면 된다 [출처: Pixabay-Gerd Altmann]

 회사를 사랑까지는 하지는 않았지만, 회사 안에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찾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따지고 보면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지금과 같은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을 더 잘하려면 더 좋은 능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결국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하게 된 이유는 아기 덕분이다. 내가 마음먹었던 것에서 원하는 것을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결국 늦게나마 다른 이유로 원하는 것을 얻게 된 샘이다.


 부디 사랑스러운 이 아이 앞에서 아빠로서 바라는 것은 이미 너의 존재로 원하는 것을 얻고 있기에 나의 욕심이나 과도한 의지가 아이를 괴롭히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그저 엄마, 아빠에게 많이 사랑받고 그만큼 남도 많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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