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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송이 Feb 12. 2021

쌓아두는 것은 도박과 같다.

창고의 유혹?

 몇 달 전부터 아내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동네 근처에 사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싼 값으로 파는 것이다. 아내 말로는 벼룩 한다라고 하는데 옆에서 보면 상당히 흥미롭다. 싼 값으로 물건을 팔거나 어떤 때는 무료로 주기도 하는데 무료로 준다고 해도 받으시는 분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오셔서 먹으라고 주고 가신다.  소소한 돈과 음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내는 아직도 가끔 필요 없는 물건을 보면 벼룩으로 올려볼까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아내가 인정하는 팔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하는 물건이 있다.



 우리 집 한 구석에 있는 위닉스 제습기는 그 역사가 오래된 물건이다.

 내가 직장을 얻었을 때 같이 지내고 있던 선배님과 돈을 모아서 샀던 물건이었다. 거의 5년 넘게 사용했던 물건에 물통도 2L 정도밖에 되지 않아서 하루 종일 돌리고 있으면 4~5번은 물통을 비워주어야만 한다. 그렇지만 아직도 문제없이 잘 돌아가는 물건이다. 올해 뉴스에서는 이번 여름이 최악의 폭염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 집에서는 여름이 오기 전  고민 끝에 에어컨을 샀다. 새 에어컨은 공기를 시원하게 해 줄 뿐 아니라 미세먼지를 걸러주기도 하고 게다가 제습까지 된다고 했다. 에어컨이 지원하는 공간마저 조그마한 우리 집에는 과분할 정도였다. 그렇게 제습기는 한순간에 설 자리를 잃었다.

 아내는 물론 이 물건을 팔기로 했다. 하지만 제습기는 다른 사람에게도 그다지 매력적인 물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내가 생각한 가격에서 조금만 더 주면 새 제습기를 살 수 있는 데다가 연식이 오래된 물건이라 팔더라도 언제 고장 날지 몰라 오히려 미안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고민 끝에 제습기는 방안 한구석에 쓸모없는 골칫덩어리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뉴스에서 말한 최악의 폭염은 오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최근 몇 번의 여름 중 가장 습한 여름이 되고 말았다. 위닉스 제습기는 옷방 한구석의 골칫덩어리에서 옷을 지켜주는 영웅이 되었다. 아직 건조기가 없었던 우리 가족은 여름내 옷방에다 건조대를 두고 수건처럼 잘 마르지 않는 것들을 실내에서 말려서 사용했다. 원래 이사올 때부터 옷방은 곰팡이가 보였기에 이렇게 건조를 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이었지만 모든 건 제습기가 남아있었기에 가능했다.

 


요새는 미니멀 라이프가 좋다고 한다.

 많은 부분 동의하는 부분이다. 깔끔하게 살고 싶으면 많이 버리는 게 최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 정리가 안 되는 것은 우리 집의 영웅이 된 제습기처럼 쌓아두는 것에는 묘한 중독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씩 어떤 물건이 필요할 때 잡동사니를 모아두던 곳에서 필요한 물건을 찾는 것은 삶의 행복이자 물건을 쌓아두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행복은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내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쌓아두고 사는 것과 깔끔한 방 사이에 균형을 맞추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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