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은 우연을 운명이라 부른다.
아들 관찰일기 #3
십자군 전쟁과 관련한 다큐를 보다가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기나긴 방어로 지쳐가던 십자군들에게 어느 날 성 안의 우물에서 칼이 발견되고, 하늘에서 빛이 예루살렘의 성당을 밝게 비춘다. 사람들은 이를 승리의 계시라고 믿고 성문을 열고 나가 적을 무찌르는 데 성공한다.
우물 속의 칼과 예루살렘 성당을 비추었던 빛은 그냥 누가 우물에 빠뜨린 칼을 본 걸지도, 단지 그날 날이 좋아서(?) 성당에 유난히 일조량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기서 사실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사람들이 힘을 얻었다는 게 중요할 뿐이다.
사람의 귀는 다양한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내 귀는 살짝 접힌 모양을 가지고 있고 아내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 아들을 보았을 때 귀가 한쪽만 접힌 것을 보고 엄마 아빠의 귀를 한쪽씩 닮았다고 신기해했다. 귀라는 것은 변형되기 쉽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아들이 아직 오른손을 주로 쓰는 건지 왼손을 주로 쓰는 건지 잘 모를 시기에 왼손을 쓸 때마다 아빠를 닮은 거라고 신기했지만 1.66살인 아들은 그 뒤에 오른손, 왼손을 계속 번갈아가며 아빠를 헷갈리게 하고 있다.
매번 그렇게 속고 있는데도 나는 아들을 보며 운명이라 믿는 것이 생긴다. 왜냐하면 내가 아들을 바라보는 데 있어 중요한 건 과학에 기반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지금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우연을 운명으로 믿는 순간 찰나는 영원이 된다. 우리는 서로를 끝까지 보고 있을 것이기에 너는 나의 운명이다. 너도,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