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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Aug 22. 2020

엄마, 제가 손 좀 써볼게요.

작년 가을 즈음이었던가, 나와 통화를 하던 중에 엄마가 갑자기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손가락이 잘 안 움직여진다." 하셨다. 깜짝 놀라 그게 무슨 이야기냐고 다그쳐 물으니, 잠을 자고 일어나면 왼쪽 손가락이 살짝 굳은 듯이 뻣뻣해서 애써 힘을 줘야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했다. 아침에만 그런 것은 아니고 다른 때에도 뻣뻣한 느낌이 있지만 자고 일어났을 때가 가장 심하다고 하셨다. 별 거 아니라고는 하셨지만, 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 자체가 엄마에게 신경이 쓰이는 일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명색이 운동을 가르치고 사람들의 건강 증진을 도모하는 일을 한다면서 멀리 산다는 핑계로 엄마의 몸과 건강에는 별로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이 마음이 쓰이곤 했었다. 나와 언니가 아직 어릴 때 엄마는 우리더러 엄마 다리랑 엉덩이를 밟아달라고 부탁하곤 하셨다. 아직 몸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을 때였기 때문에 아예 엄마 엉덩이 위에 두 발을 딛고 올라가서 꾹꾹 밟아드렸는데, 그 와중에도 엄마는 손으로 주무르는 것은 하지 못하게 하셨다. 내가 '어깨 주물러 드릴까? 마사지해 드릴까?' 물어보면 엄마는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하셨다. 힘들다고. 이런 거 해주는 습관 들이지 말라고. 나중에 결혼하면 배우자한테라도 마사지 같은 건 해주지 말라는 당부도 덧붙이셨다.


엄마의 당부가 무색하게 나는 엄마가 하지 말라던 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샵에 가서 받는 것 같은 '마사지'는 아니지만 근육과 인대 등 연부조직이 너무 긴장돼서 가동성이 떨어지는 회원들에게는 각종 이완 요법을 사용해서 마사지하듯 직접 풀어주는 경우가 많다. 양상은 조금 달라도 손을 주로 사용해서 다른 사람들의 컨디션을 좋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엄마가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했던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 레슨을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몸에 핸즈-온(hands-on)* 하는 일이 더욱 많아졌다. 회원들이 자신의 몸을 지각하게 만들고, 자세를 보조하거나 조금 더 좋은 정렬로 갈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강렬한 소통 수단이 바로 손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들을 손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손이 그만큼 경이로운 기관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두 발로 서도록 진화하면서 엄청나게 정교한 손도 함께 발달시켰다. 우리 몸에 있는 약 200여 개의 뼈들 중 1/4이 넘는 54개의 뼈가 두 손에 들어 있다. 통뼈로 되어있지 않고 작은 조각 뼈들로 나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움직임이 가능함을 시사한다. 뼈와 뼈가 만나는 관절은 곧 그 사이에 가동성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양한 물체들의 표면에 손을 밀착시켜 잡고 도구들을 다룰 수 있는 것 역시 이렇게 복잡하고도 정교한 손의 구조적 특징으로 인해 가능하다.



사실 구조적인 이유 때문만이라고 볼 수는 없다. 발도 손과 거의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각각 26개씩 양 쪽에 52개의 뼈가 두 발에 들어 있고, 골격의 모양 역시 손과 거의 비슷하다.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발의 뼈를 보고 손이라고 착각할 정도이다. 하지만 손은 발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운동 신경과 감각 신경이 발달해있다. 전에 썼던 글, 발 이야기에서도 참고했던 펜필드의 호문쿨루스의 모형을 보면 커다란 두 손이 이쑤시개 같은 팔에 붙어 있는 기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위 사진에서 처럼 펜필드의 호문쿨루스는 감각 신경을 보여주는 모형과 운동 신경을 보여주는 모형, 이렇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운동 모형 쪽에서 더 크기는 해도 운동 모형과 감각 모형 모두에서 손은 몸의 다른 부분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크다. 이를 볼 때 우리가 손을 통해 세상을 만나고 손을 통해 세상에 나의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말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엄마의 우려대로 손을 쓰는 일은 꽤나 힘이 많이 드는 일이다. 단순히 손과 팔의 근육들을 동원해 완력을 쓰는 것을 넘어, 나의 신경계가 상당히 활발히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회원과 손을 통한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날이 있다. 그런 날 조바심이 나서 힘을 더 쓰는 방식으로 핸즈-온을 하고 나면 수업 후에 기운이 쪽 빠져 허깨비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반대로 내가 손을 통해 주는 방향성이 회원에게 잘 전달되고 회원이 그 가이드를 잘 따라오고 있음을 나 역시 잘 감지하는 날도 있다. 이런 날은 컨디션이 안 좋다가도 수업 후에 오히려 온몸이 깨어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손을 통해 에너지를 주기도 하지만 받을 수도 있다.


애지중지하는 딸이 힘들까 봐서인지 엄마는 여전히 본인 몸을 가까이 있는 전문가(!?)에게 잘 맡기지 않으신다. 간혹 엄마 집에 가서 어깨라도 주물러드리려 치면 괜찮으니 얼른 들어가 쉬라고 손사래를 치곤 하신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쉴 새 없이 그 손과 팔을 휘둘러서 종일 내가 먹을 반찬들을 만들어 바리바리 싸 보내신다. 애지중지받는 딸은 그래서 레슨에서 어떤 일들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엄마가 "수업하면 사람들한테 이런 걸 만날 해주니?" 물으면, "필요하면 하고 아니면 안 하지." 하고 만다. 거의 만날 필요하다는 말은 굳이 하지 않는다.


몇 주 전에 엄마가 직접 딸의 일용할 양식을 양손 가득 챙겨 기차를 타고 오신 날이 있었다. 학기말이라 끊임없이 밀려오는 과제에 치여 책상 앞 붙박이를 하던 시기였다. 엄마는 고사하고, 때 되면 배고프고 졸리는 내 몸뚱이조차 껴안고 있는 게 버거워서, 몸은 사라지고 머릿속에서 지나가는 생각들을 다 따라잡아 모니터에 옮겨주는 손가락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던 시간이었다. (그런 손가락이 있었으면 모니터가 똥통이 됐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서 엄마가 온다는 소식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아마 떨떠름한 얼굴로 엄마를 맞았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다 보니 다 큰 딸을 챙겨주려 먼길 달려온 엄마를 봐서인지, 따순밥에 뱃속이 든든해져서인지 금세 신경증이 누그러들었다. 그리고 내가 특별히 바쁜 오늘은 더욱 특별히 짬을 내어 엄마에게 손에 적용하는 이완 테크닉을 해드려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바쁘다면서 뭘 그런 걸 해주냐며 그냥 돌아가겠다는 엄마를 뉘어서 손을 잡고는, 아는 것 모르는 것 다 동원해가며 이것저것 열심히 해드렸다. 지금껏 살면서 그렇게 엄마 손을 열심히, 오래 만져본 기억이 없었다. 아마 엄마는 내가 아플 때, 아직 걸음마가 서툴 때 늘 내 손을 잡아 주었을 것이다. 어릴 땐 잘 몰랐는데, 이쯤 커서, 요 정도나마 손을 쓰며 살아오고 보니 엄마 손과 내 손이 꽤나 닮은 것 같아 보였다.


엄마는 처음에는 "응. 팔이 시원하네." 하시다가 조금 후에는 "어깨까지 시원하네" 하시다가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몸이 둥둥 떠 있는 것 같이 가벼웠다"라고 문자를 보내셨다. 엄마를 배웅하는 길에 내가 봤던 뒷모습도 그랬다. 흰색 옷을 입고 있던 엄마가 어둠 속에 폴폴 날아가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내 기분도 같이 떠오른 밤이었다.



*핸즈-온(hands-on)

의료, 운동, 소마틱스 등의 영역에서 운동 및 감각 능력 향상을 위해 손의 접촉을 사용하는 다양한 방식을 두루 일컫습니다.

커버 이미지: Photo by Franco Antonio Giovanell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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