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꿈치에서 생각이 나온다는 말을 한 철학자가 니체였던가? 처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뭔가 인상적이면서도 살짝 오그라든다고 느꼈던 것 같다. '걷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되고 때로는 그 생각이 앞을 보고 걷고 있는 내 몸처럼 주르륵 정리될 때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훗.... 생각이 뒤꿈치에서 나온다니 너무 말도 안 되지 않나?'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머리로 안 풀리던 문제가 몸으로 접근하면 풀리는 것을 많이 경험하는 요즘 이 말이 그리 허무맹랑한 이야기이거나 순전히 문학적인 메타포만은 아님을 깨닫는다.
특히 수업 준비를 하다가 이런 경험을 할 때가 많다. 나는 내 운동을 할 때도 그렇지만 회원들과 수업을 할 때 숙제처럼 운동을 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숙제처럼 하는 운동은 나의 몸과 움직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나 색다른 감각의 경험이 결여된 채, 그저 해야 하니까 하는 운동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매 수업 포인트를 정하고 그 포인트에 맞는 다양한 동작과 시퀀스를 제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같은 시퀀스를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자신의 몸을 지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대부분의 회원들이 일주일에 1~2번 수업을 하면서 좋은 경험을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각 회원 별로 매 번의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이 꽤나 무거운 일이다. 몸이란 것이 수학의 정석처럼 '올바른' 배움의 내용과 순서가 쫙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닌 데다 동시에 여러 명의 회원들을 관리하다 보면 내가 이 수업에서 이 이야기를 했던가 안 했던가 헷갈리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수업 전후로 오늘의 시퀀스를 기록하고 수업 중에 변경한 내용들도 정리 함에도 불구하고, 수업 준비를 할 때마다 앞전의 모든 기록들을 확인할 수는 없기에 오늘은 어떤 시퀀스를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멍~해질 때가 많다.
사실 이런 멍함이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주간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수업을 진행해 왔는데, 그 목표가 어느 정도는 이루어졌지만 내가 계획했던 다음 단계로 가기에 충분치는 않을 때, 똑같은 과정을 다시 하기도 싫고, 그렇다고 그냥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도 없다는 것이 직감적으로 느껴지면 수업을 짜기가 쉽지 않다. 혹은 아예 처음 만나는 회원의 수업을 준비해야 할 때, 내가 고민해야 하는 몸의 특징이 나에게 분명하지 않으면 어떤 운동과 어떤 정보가 도움이 될지 판단하기가 어렵다. 오늘의 나는 두 번째 이유 때문에 막혀서 한참을 고민했다. (지난 며칠간 다녀온 여행 때문에 피곤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미디엄 레벨의 멍함까지는 머리를 두 세 차례 세차게 흔들고, 마음을 다잡고, 속으로 '오늘!' 하고 기합을 넣으면 어느 정도 해결이 되지만, 가끔 최고 레벨의 멍함이 닥치면 정말 '오늘 수업 뭐하지............??????????'의 늪에 빠져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이럴 때 멍함을 극복하고 수업을 위한 새로운 영감을 받기에 유용한 방법 중에 하나가 회원의 몸을 상상하며 직접 움직여 보는 것이다. 회원 몸의 특징을 떠올리며 마치 캐릭터 연기를 할 때 인물 모사를 하듯 내 몸의 정렬을 해당 회원의 정렬로 바꿔 본다. 완벽하게 정렬을 바꿀 수는 없지만 흉내만 내 보아도 어느 정도는 그 몸이 지금 어떤 불편을 겪고 있을지 감각할 수 있다.
오늘 내가 처음 만나는 회원은 미술을 하는 고등학생이었고, 거북목 증상이 있다고 했다. 전화 통화로 이 같은 기본적인 정보를 파악했지만 실제로 그 몸이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본 적이 없어 상상하기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머리로만 '거북목이면 무슨 운동이 좋을까?'를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덜 기계적으로 수업 준비를 할 수 있다. 아무리 목과 어깨가 불편하다고는 해도 아직 10대이니 성인들에 비해서는 훨씬 탄력 있는 몸을 예상하며, 매트에 앉아서 거북목 상태로 머리를 앞으로 빼보면 목과 후두를 중심으로 불편한 감각들이 느껴진다. 그리고 내 몸은 자연스럽게 이 불편감을 해소하기 위한 동작들을 이것저것 떠올린다.
이렇게 떠오른 동작들을 하나씩 해보면서 수업의 큰 흐름을 짠다. 수업의 줄기가 잡히면 그 후에 수업의 내용을 채우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중심 동작들을 하기 위해 앞서 해보면 좋을 시퀀스들과 알려 주면 좋을 정보들을 사이사이에 집어넣어 1시간 분량의 수업을 계획한다. 먼저 잡혀야 하는 부분은 항상 오늘의 수업이 어떤 경험을 향해 갈지이다. 무엇을 할지, 어떤 것을 설명해 줄 지의 내용은 그 후에 채워도 늦지 않다. 니체의 걷기와 같이 나의 몸으로써 생각하기는 나에게 생각의 방향을 잡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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