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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Aug 25. 2020

네 번째 발가락의 발견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2~3년 전 언젠가였던 것 같다. 내 두 발의 네 번째 발가락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것들이 뻗어 있는 모양이 다른 발가락들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다른 발가락들은 모두 바닥에 쫙 펼쳐져서 그 끝이 앞을 향해 뻗어 있는데 네 번째 발가락은 거북이 등처럼 발가락 마디가 위로 불룩하게 굽어진 채로 그 끝은 바닥으로 파고드는 방향을 하고 있었다. 


지금껏 발을 씻고, 양말을 신고, 발톱을 깎고 하면서 내 발을 수없이 봐왔을 텐데 네 번째 발가락이 그러하다는 사실은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손으로 발가락의 앞 뒤를 만져보니 이것은 근육 같은 연조직이 긴장해서 생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발가락의 뒤쪽 면이 앞쪽 면보다 더 짧고 인대도 뻣뻣하게 굳어 있는 것을 볼 때, 아예 발가락 모양이 그렇게 잡히도록 성장해온 것이다. 순간적으로 네 번째 발가락은 모두에게서 원래 이렇게 굽은 형태로 자라나는 것인가? 싶었지만 별로 신빙성 있는 가설 같지는 않았다. 

특히 발가락의 두 번째 마디가 심하게 구부러져 있는 것이 느껴졌는데 두 번째와 세 번째 발가락의 두 번째 마디들은 모두 바닥에 잘 눌려서 반대로 접히는 방향으로 주름이 잡혀 있었다. 그러고 나니 새끼발가락도 눈에 들어왔는데, 새끼발가락은 네 번째처럼 구부러져 있지는 않았지만 반대로 접히는 주름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손으로 만져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는데 새끼발가락은 발가락 마디 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뻣뻣해서 잘 구부러지지도 펴지지도 않는 상태였다. 특히 새끼발가락의 마지막 마디(중간마디뼈와 끝마디뼈 사이 관절)는 손으로 힘을 줘도 잘 구부러지지 않았다. 나의 두 새끼발가락들은 그렇게, 마치 초코송이의 과자 부분같이, 짧고 뭉툭하고 무심하게 내 발 끝에 달려 있었다.


이런 내 몸의 특징들을 발견할 때면 나는 약간 고고학자와 같은 심정으로 지금의 몸에 새겨져 있는 흔적들을 통해 내가 몸을 사용해온 역사를 더듬어보곤 한다. 네 번째 발가락은 왜 구부러진 상태로 발달했을까? 새끼발가락은 어째서 초코송이가 되었을까? 그동안 나머지 발가락들은 뭘 했을까? 혹시 제일 힘없는 네 번째 발가락이 언니들의 구박에 못 이겨 콩쥐처럼 일만 하다가 허리가 굽어 버린 것은 아닐까? 원래는 작고 여리던 새끼발가락은 내 구두 속에서 밖으로 밀리고 옆으로 치여 답답해하다가 딱딱하게 굳어 버렸나?


이런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다 보니 문득 핸드 스탠딩을 할 때 균형을 잡기 위해서 손가락으로 바닥을 움켜쥐듯 잡으라고 가르치는 일부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것은 약간 논쟁적인 지점이기도 한데, 어떤 지도자들의 경우 균형을 잡으려면 손가락을 구부려야 한다고 말하고, 어떤 선생님들은 그것은 좋지 않은 습관이니 손을 쫙 편 상태에서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하라고 말한다. 


이 논쟁을 보면서 나는 나름대로 '우리 발바닥에 자연스럽게 발달된 아치가 손바닥에는 거의 없기 때문에 손가락을 움츠려 인위적인 궁을 만들면 균형 잡기 좀 더 수월해질 수 있겠군, 하지만 그렇게 손가락 마디에 의식적으로 힘을 주면 관절에 무리가 갈 수도 있고 잘못 움켜쥘 경우 접지되는 면적이 줄어들어 손목에 무리가 갈 수도 있겠으니 손을 쫙 펴라는 지침도 일리가 있군...'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고 보니 새우처럼 등을 말고 있는 나의 네 번째 발가락이 발의 균형을 잡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어보겠다고 용을 쓰다 저리 구부러져 버렸구나 싶었다. 괜스레 애잔한 마음이 되어 손으로 힘을 줘서 굽어 있는 마디를 쭉쭉 펴서 바닥에 눌러 주었다. 그 후로 혼자 태양경배자세(Suryanamaskar) 수련을 할 때 종종 하는 습관이 생겼는데, 시작 자세에서 바르게 설 때 네 번째 발가락을 손으로 펴서 눌러 놓고 동작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정강이를 따라 뻗어 있는 뼈 중 바깥쪽에 더 가는 뼈가 비골이다. 사진출처: https://unsplash.com/photos/Z-lOWIRn2IM

처음에는 굽은 발가락을 잠시라도 펴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렇게 했던 것인데, 그렇게 하고 보니 서 있는 자세가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일단 네 번째 발가락을 비롯해서 발가락들이 전반적으로 잘 인지되었고, 발바닥이 조금 더 펼쳐진 느낌도 들었으며, 정강이의 비골을 따라 두 발이 바닥을 밀어내고 있는 힘이 느껴졌다. 내 몸에 대한, 익숙하기만 한 선 자세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고 이 신선함이 기분 좋았다. 콩쥐 발가락에 대한 나의 측은지심을 어여삐 본 선녀님이 주신 선물이려나.


또 수업을 할 때 회원들의 발가락도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의 수련 회원들은 하나 같이 균형이 흔들리는 순간에 발가락들을 꽉 움츠려 힘을 주는 습관들을 가지고 있었다. 발가락 모양도 제각각이었는데 어떤 분은 엄지를 제외한 모든 발가락이 나의 네 번째처럼 굽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 분은 런지와 같이 뒤꿈치를 세워서 발 앞쪽으로 바닥을 지지해야 하는 자세를 매우 힘들어하시는데, 이것을 볼 때 다리 힘을 사용하는 방식과 발가락이 연결되었던 나의 감각이 과학적으로도 설명될 수 있을 듯하다. 


글쎄... 제대로 된 몸의 고고학자가 되려면 발견한 것과 그로부터 세울 수 있는 가설을 뒷받침할 치밀한 근거들이 필요할 텐데, 아직은 이걸 타당하게 설명해낼 만한 지식은 나에게 없다. 언젠가 그 근거를 찾게 되면 꼭 브런치에 기념의 글을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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