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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Aug 27. 2020

회원님, 뱃살을 빼고 싶으시다고요.

오늘 처음 뵐 회원님께


안녕하세요. 오늘은 당신과 제가 처음 수업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당신'이라 호칭이 약간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문어체에서 상대방을 높여 이르는 이인칭 대명사" 이상의 뜻은 없습니다.) 운동 지도를 한 지 꼬박 7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처음 만나는 분과의 첫 수업 날엔 살짝 긴장이 됩니다. 며칠 전 당신의 수업 요청을 받은 후 약간 난감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이 수업을 준비해왔습니다. 수업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지에 대한 내용을 생각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첫 수업이니만큼 당신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앞으로의 수업에 대한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여 즐겁게 운동을 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당신에게 조금 더 조리 있게 말을 건네고 싶어 이 글을 쓰지만 오늘 수업에서 실제로 이 중 얼마만큼이나 말씀을 드릴 수 있을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난감했던 이유는 당신이 상담 전화에서 밝힌 운동 목적이 오로지 "뱃살 빼기", 복부 체지방 감량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살을 빼고자 운동하겠다는 것이 뭐가 문제인가 싶기도 하지만, 제게는 그리 간단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충분히 아시겠지만, 사실 일주일에 1번, 많아야 2번 요가 아사나를 열심히 수행해서 체지방이 감소될 확률을 극히 낮습니다. 복부 운동을 한다고 해서 뱃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다고 뱃살만 빼주는 운동이 어디에 따로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물론 저도 가능만 하다면 "이 운동을 하루에 몇 번씩, 일주일에 몇 번 이상 열심히 하시면 거짓말처럼 뱃살이 빠질 것입니다!"라고 꿈과 희망을 드리고 싶지만, 그건 그냥 거짓말입니다. 그와 같은 '장밋빛' 결과를 기대하기에 우리의 몸은 너무 복잡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저와 수업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꾸준히 일정 시간 스스로 운동을 하신다면 아주 천천히 체형이 변화하고 몸이 조금 더 좋은 균형 상태에 이르러, 목표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체중계의 눈금과 치수의 변화는 아주 엄격한 식이 조절 없이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애석하게도 저는 움직임을 중심으로 한 몸의 사용을 지도하는 사람이지 식이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기에 이 부분에 대해 제가 얼마나 전문성 있는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식사 관리와 개별 운동 모두 제가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업 시간 밖에서 당신 스스로 해내야 하는 부분이라 본인의 자기 조절 능력을 십분 발휘하지 않으시는 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운동과 식이요법을 병행한다는 것은 일견 간단한 다이어트의 정석과 같이 느껴지지만, 일정 수준 이상으로 체중을 감량하고 '멋진' 몸매를 만들기까지 이 두 가지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호르몬 조절, 생활 습관 관리, 감정과 욕구 통제 등 그 사람 자체를 변화시키는 수준의 관리가 필요합니다. 조절해야 하는 변수가 두 가지가 아니라 수없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하나하나 신경 써서 통제하려 들면 끝도 없겠지요. 이것이 당신의 요청에 대해 제가 난감함을 느낀 이유입니다. 제가 이런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난감함과 함께 불안감도 느꼈다 말씀드렸는데, 이건 제가 일전에 다른 분들과의 수업에서 경험한 바 때문입니다. 전에도 한 번 당신과 비슷하게 첫 수업 상담을 하시며 최근에 뱃살이 많이 쪄서 고민이다, 뱃살을 빼고 싶다고 말씀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나름의 준비를 해서 그분을 처음 만나러 간 날 저는 매우 당황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너무 '마른' 여성이 앞에 계셨기 때문입니다. 눈바디로 대충 보아도 저보다 날씬한 것은 물론이고, 키도 상당히 큰 분이라 여기서 살을 더 빼면 슈퍼 모델에 나가도 될 것 같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제 눈이 '평균'과 다른 것인지는 몰라도 제가 보기에는 최근에 쪘다는 그 뱃살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겠더군요. 


당황한 저는 하지 않아도 될, 아니, 제 입으로 하고 싶지 않은 말들을 남발했습니다. "뺄 살이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라던지, "정말 너무 날씬하신데..."처럼 그분의 몸매를 평가하고 '날씬함'에 대한 저의 기준을 들먹이며 칭찬 아닌 칭찬을 하는 말들을요. 문제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런 상황이 다시 오면 나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삐끗해서 좀 더 솔직해져 버리면, "도대체 살을 빼려고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죠? 저로서는 당신의 체중이 줄어야 할 이유를 당최 찾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성심성의껏 체중감량이라는 당신의 목표를 지원할 수 있도록 그 이유를 좀 알려주십시오."라고 해버릴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고요.


물론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당신이 이 분과 같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운동과 식이조절을 하는 게 나쁘다거나 살을 빼는 게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건강함의 기준이나 아름다움의 기준은 모두 다를 것이기 때문에 제 기준이 더 '옳다'거나 더 '정상'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하지만, 나의 몸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이와 같은 욕망 앞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어떤 질문들을 던져 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나의 몸에 대해 정확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떻게 되기를 욕망하는가? 이것은 불편함인가? 불쾌함인가? 불안함인가? 혹은 다른 어떤 감정인가? 그리고 이런 감정을 유발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거울을 보면 불쾌해지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거울을 보지 않는다면 이 불쾌감이 누그러드는가? 아예 사라지는가? 아니면 움직일 때 몸이 무거워서 느끼는 불편함인가? 이 불편함은 구체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할 때 어떻게 느껴지는가? 내가 살이 찌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함인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누군가가 있는가? 혹시 그게 나 자신은 아닌가? 또는 나의 건강 상태에 대한 염려인가? 나는 내 몸의 건강 상태에 대해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는가? 이렇게 과학적이고 정량적인 외부 기준에 의해 진단된 정보와 내가 스스로 몸에 대해 느끼는 감각 사이에 간극은 없는가? 등.


이런 질문들은 제가 제 몸에 대해 불만을 느낄 때 스스로 물어보고, 묻고자 하고, 때로는 너무도 묻기 싫은 질문들이기도 합니다. 저 역시도 전혀 쓸데없어 보이는 내 살들이, '가녀린 여성'이 되기에 너무 툭 불거진 것 같은 내 근육이, 저기는 더 길고 여기는 더 작았으면 좋겠는 내 뼈대가... 기타 등등 기타 등등이 맘에 들지 않고 그래서 자주 불쾌해지기도, 불안해지기도 하는 일인이니까요. 한편 이런 질문들은 내가 어떤 내면을 가지고 무엇을 욕망하며 그것을 어떻게 추구하려 하는 사람인지를 끊임없이 파헤치게 만든다는 점에서 상당히 귀찮고 선뜻 시작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많은 변수들을 일일이 관리하고자 시도하는 것보다 그 변수들이 이루고 있는 '나'라는 전체를 보는 관점으로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더 단순한 방식이 될 거라고요. 또 생각합니다. 다이어트 기간이 지속되면 될수록 욕구불만은 깊어지고, 호르몬은 요동쳐서 제발 이 다이어트가 빨리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되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먹는 걸 더 줄이면 살이 빠질 거야!', '운동량을 더 늘리면 살이 빠질 거야!' 하는 허황된 말들로 꺼져가는 의지의 불씨를 되살리려 애쓰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 다이어트의 방법인가 하고요. 오히려 나의 불만족의 뿌리가 어디인지를 정확하게 캐내어 내가, 내 몸이 진정으로 만족스럽게 느낄만한 상태를 지향하며, 걸음걸음 '나'를 발견하고 더불어 지금의 나에 대해 만족스러운 부분들을 함께 찾으며 가는 것이 보다 실현 가능할뿐더러 잘하면 즐길 수도 있을 길이 아닐는지요.



커버 이미지: Photo by Charles Deluvi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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