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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Aug 31. 2020

아침에는 뒹굴거리는 것이 좋다-1

뒹굴기 '운동'의 과학

어떤 사람이 바닥에 편안하게 누운 상태에서 몸을 천천히 뒤척이고 있다고 하자. 이 광경을 보며 '아, 저 사람이 운동을 하고 있구나!'라던지 '저 활동을 통해 운동 능력이 향상되겠군!'하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운동'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몸을 격렬하게 움직인다거나, 유지하기 매우 힘든 자세를 오래 취하며 땀을 줄줄 흘리는 모습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밥 먹고, 일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활동들도 누워서 고작 뒹굴거리는 것보다는 소위 '운동량'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저게 무슨 '운동'이 되나 싶다. 하지만 뒹굴기도 운동이 될 수 있고 우리의 운동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물론 그 과정을 어떻게 수행하고 경험하는지가 매우 중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운동'이라는 것을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통해 몸에서 에너지 대사가 일어나고, 그 결과 땀이 나고 근육의 피로감(기분 나쁜 감각이 아니라고 할지라도)을 느끼게 되는 여타의 활동으로만 여긴다면 위의 예시는 기껏해야 운동이 아닌 운동밖에 될 수 없을 것이다. '숨쉬기 운동'이라는 표현이 '(그것도 운동이라고...) 숨쉬기 운동 열심히 했어요.' 하는 자조적인 맥락에서 많이 쓰이는 것 역시 '운동'에 대한 유사한 이미지를 전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과연 '운동'은 근골격계의 차원에서만 일어나는 활동인가? 당연히 그렇지 않다.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근육-뼈대에서 일어나는 물리적 활동에 상응하는 신경 차원의 인지적 활동이 함께 이루어진다. 허구한 날 닭가슴살과 시금치만 먹으며 탄탄하게 발달시켜놓은 근육도, 칼슘왕의 골밀도를 가진 단단한 뼈대도 나의 감각운동신경을 통해 제대로 된 신호를 못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운동 능력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근육과 뼈대가 건강해져야 할 뿐 아니라 뇌를 포함한 중추신경계도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나의 몸 곳곳에서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잘 감각하여 받아들이고(Sensory Input), 이를 인지하여 다음 운동(Motor)*에 대한 효율적이고 정확한 신호를 내보내는(Motor Output) 작용이 원활히 일어날 때 비로소 운동의 전 과정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근육량을 늘리고, 더 큰 힘을 낼 수 있게, 더 잘 이완할 수 있게 하는 운동법을 많이 알고 있는 것에 비해, 이와 연결된 인지 능력을 향상하는 운동법은 얼마나 알고 있는가? 어쩌면 이 부분이 훈련될 수 있고, 훈련되어야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해 어느 정도 무심한 채 지내오지는 않았을까?


뇌과학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과 관련된 연구들은 이러한 '인지 운동'의 필요성을 상기시킨다. 사용하지 않는 신경 연결망은 가지치기하고, 자주 사용되는 부분은 더욱 발달시키는 인간의 뇌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평생에 걸쳐 계속해서 변화한다. 이는 자주, 잘 사용하면 운동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인지 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동시에 사용하지 않으면 잃게 될 것이라는(Use It or Lose It) 경고다. 그러나 조금 더 희망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은 우리의 뇌가 (성인이 되어서도) 상당히 유연하다는 점이다. 뇌의 사용에 따라  구조가 바뀌는 속도는 생각보다 매우 빠른데, 일부 연구에 따르면 2시간 정도의 학습을 통해서도 신경세포의 시냅스 연결 구조에 의미 있는 변화가 관측된다고 한다.** 즉 우리가 몸을 움직이며 무엇을 인지 하는지에 따라 우리 뇌에서 운동을 담당하는 영역이 상당히 유연하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뒹굴거림과 같이 '아무것도 아닌' 움직임을 하면서도 나의 몸을 잘 인지한다면 전반적인 운동 능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요가 수업에서 오른쪽, 왼쪽으로 나누어 수행하는 동작을 할 때, 한쪽을 먼저 한 후 회원에게 양쪽의 느낌 차이를 물어보곤 한다.


 "오른쪽 다리랑 왼쪽 다리에 차이가 느껴지세요? 느껴지면 어떤 차이인가요?"

"잘 모르겠어요."

"그럼, 지금 오른쪽 다리의 느낌은 어떠세요?"

"가벼워요."

"왼쪽은요?"

"그냥... 무거운 느낌?"

"그럼 둘이 차이가 있긴 있네요!"

(웃음)


이와 유사한 대화 상황이 종종 연출되는데, 회원분들이 나에게 특별히 불만이 있거나 열심히 할 마음이 없어서 차이를 느끼면서도 "잘 모르겠다."라고 하는 것 아니다. 그보다는 감각 신경이 받아들이고 있는 자극을 인하지 않는 것이 습관화되어 이 감각 정보를 알아차리는 인지 작용이 원활하지 않은 탓일 가능성이 더 크다. 일상적으로는 감각, 지각의 개념을 섞어서 사용하는 경우도 많지만, 인지과학이나 심리학 등의 학술 영역에서는 이 둘을 구분한다. '감각'은 수용기 차원에서 자극을 받아들이는 것을, '지각'은 보다 능동적이고 의식적으로 자극 정보를 획득하고 통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개념에 비추어 볼 때, 위와 같은 상황은 회원이 처음에는 감각 차원의 자극 수용이 일어났음에도 이를 지각하지는 못하다가, 같은 질문을 두 단계로 나누어 묻자 (다행히) 보다 능동적인 지각이 가능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무적인 것은 이런 대화를 몇 번 되풀이하고 난 후에는 대부분 자신이 느끼는 작고,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혹은 굳이 확인하지 않았던 몸의 감각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그와 함께 자신의 몸과 움직임에 대한 조절 능력이 향상된다. 몸을 잘 느끼게 되면 잘 움직이게 된다는 말이 언뜻 논리적 건너뛰기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우리의 감각과 운동은 동전의 양면처럼 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물 시간에 배웠던 감각신경과 운동신경은 척수 차원에서는 분리되어 있지만 뇌에서는 통합되어 있으며, 우리가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컵을 보는 동시에 손을 뻗고 컵을 입까지 가져와 그 안에 든 물을 마실 수 있는 것도 이렇게 감각과 운동이 통합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결국 몸을 감각하고 이를 의식적, 능동적 경험으로 통합하는 지각 훈련은 몸에 대한 운동 조절 능력을 향상하는 훈련이기도 하다. 바닥에 편안하게 누워 뒹굴거리고 있는 순간, 심지어 그냥 가만히 누워 있는 순간에도 우리는 '운동'을 할 수 있다. 내 몸의 무게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바닥에 닿아있는 부분은 어디부터 어디인지, 닿지 않은 부분은 어디인지, 내 몸의 무게는 어떻게 느껴지는지, 바닥에 닿은 부분 중에서 특히 더 무겁게 느껴지는 부분은 없는지, 몸의 오른쪽과 왼쪽에 차이가 있는지, 어느 한쪽이 더 크거나 작게/길거나 짧게/뻐근하거나 시원하게/차갑거나 뜨겁게 느껴지지는 않는지... 수없이 다양하게 구체화될 수 있는 몸의 감각을 스스로 찾아보며 의식적으로 내 몸을 경험하는 것은, 그렇게 내가 몸을 더 잘 알고, 민감하게 감각하고, 풍성하게 지각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내가 자극에 더 기민하게 반응하고 정확하고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뒹굴거리기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 할 수 있는 상당히 좋은 '운동'이 될 수 있다. 그냥 시간을 죽이며 빈둥대는 뒹굴기가 아니라, 몸은 아주 느리고 고요한 흐름을 타고 있더라도 나의 의식은 점점 또렷하게 오늘 아침잠에서 깬 나의 몸 구석구석을 탐구하는 그런 뒹굴기라면 말이다. 그리고 뒹굴기는 의지력과 인내력이 보통 이상으로 강하지 않더라도 거의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현실적인 운동이기도 하다. 친환경, 유해물질 프리 매트를 사놓지 않았어도, 맘에 드는 홈트 영상을 찾아 놓지 못했어도, 모든 운동복이 다 빨래통 안에 들어가 있어도, 운동하려고 한 시간 일찍 일어날 자신이 없어도 당장 내일 아침부터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오늘, 나의 몸은 안녕하신가?"





*여기서의 '운동'은 운동신경과 감각신경을 나눌 때의 '운동(Motor)'으로, 이 글 전반에서 사용된 "건강 증진을 목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일"을 뜻하는 '운동'과는 다른 뜻으로 사용되었다.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Motor가 '운동'으로 해석되기에 다의어를 그대로 사용한다.

**송민령, "나이 들면 머리 굳는다? 아니, 뇌는 변화한다-가소성", 사이언스 온, 2016.08.22. <http://scienceon.hani.co.kr/>

***브루스 골드슈타인, <감각과 지각>, 김정오 외 옮김, 제7판, CENGAGE Learning, 2012, pp.4-9.

****토마스 한나, <소마틱스>, 최광석 옮김, 군자출판사, 2019, pp.7-11.

이미지 출처: Photo by Alexander Possingha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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