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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Jan 03. 2021

너... 요가 강사라며?


나는 요가 강사다. 그것도 요가를 가르치기 시작한 지 꼬박 8년이 다 되어가는, 나름 경험이 쌓인 요가 강사다. 그리고 내가 스스로를 요가 강사로서 소개할 때 종종 돌아오는 반응들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요가 강사다.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럽지 않은 것은 아닌데,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요가 강사!' 하면 군살 하나 없는 매끈한 몸매를 시원하게 드러내며 화려한 고난도 동작을 척척 해내는 (여성의) 이미지를 상상하기 때문이다. 나의 현실이 이러한 누군가의 상상 속 이미지에 얼마나 가까운지는, 글쎄…?


나는 사실 나에게 기대되는, 아니 스스로를 ‘요가 강사’라고 소개하는 이들에게 기대되는 이미지들로부터 꽤나 자유로운 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완전히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적어도 체중계 눈금이 가리키는 숫자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예쁜 요가복을 입기 위해 절식을 하는 등의 행위는 하지 않는다. 또 ‘요가’ 하면 떠오르는, 기이하고도 현란한 동작들을 해내기 위해 몸을 혹사시키는 일도 별로 없다. 요가 강사 활동을 하고, 몸과 요가에 대해 더 많은 공부를 해오면서, 나의 아사나(체위법) 수련은 자세 자체를 잘 해내려는 목적보다는 나의 몸을 더 잘 알아가려는 목적을 가지고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약간은 집착적으로 꾸준히 수련하는 자세가 있다. 바로 물구나무 서기류의 자세들이다. 여기서 ‘물구나무 서기류’라 한 것은, 요가 아사나 중에 물구나무 서기 자세라고 할 만한, 거꾸로 몸을 세우는 자세들이 꽤 여러 가지 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팔-어깨-머리와 같은 상체의 일부로 바닥을 지지하여, 두 발로 서는 것과 비교해 몸을 180도 거꾸로 세우는 자세들을 물구나무 서기 자세들이라 할 수 있겠다. 대표적으로는 시르사아사나(Sirsasnana, 머리 서기), 아도 무카 브륵샤아사나(Adho Mukha Vrksasana, 두 손 서기), 핀차 마유라아사나(Pincha Mayurasana, 두 팔 서기) 등이 있다. 


처음 물구나무 서기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꾸준한 연습을 시작했던 때는 요가 지도자 과정을 이수한 직후였다. 그 때는 ‘요가 강사인데… 물구나무 서기 정도는 당연히 할 줄 알아야지!’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니까, 그때만 해도 나는, 요가 강사로서 내가 회원들 앞에서 자신감 있게 수업을 하려면 스스로 아사나 마스터가 되어야 한다는, 적어도 그 쪽을 지향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리고 요가 아사나 중에 나에게 특히 큰 도전이 되었던 자세들이 바로 물구나무 서기 자세들이었다. 개중에 가장 기본적이라고 할 수 있는 머리 서기 자세도 잘되지 않던 한동안은, 수업을 할 때도 스스로 자신감이 떨어졌던 것 같다. 사실 일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부분의 수업에서는 물구나무 서기같이, 접근이 어렵고 부상 위험이 있는 자세들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내가 수업에서 물구나무 서기를 보여줄 일은 거의 없었음에도 나는 물구나무 서기를 마스터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 많은 아사나 중 몇 가지에 불과한 것인데, 그게 뭐라고 부담감씩이나 느꼈나 싶지만 그때는 나름 진지한 고민거리였다.


물구나무 서기에 대해 생각하면 떠오르는, 내 인생의 한 장면이 있다.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딴 직후에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그 첫 학기 첫 MT를 갔을 때의 일이다. 내가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땄다는 것을 알게 된 교수님과 선배들이 ‘뭔가를! Something!’을 보여 달라며 입으로 나팔을 불어댔고, 그 분위기에 등 떠밀려서 머리서기를 보여주었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심지어 소주도 한 잔 걸친 상태에서!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다. 아주 다치려고 작정을 했었구나 싶다. 창피하다. 남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 요가 아사나를 했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머리서기가 그렇게 뽐낼 만한 특기라고 생각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나는 요즘도 여전히, 꾸준히, 사실 거의 매일 물구나무 서기 자세들을 연습한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위에서 이야기한 압박 때문에 연습을 이어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도, 이것이 요가 강사의 자격 요건 같은 자세라고 생각해서도 아닌, 나를 위한, 내가 재미있어서 하는 수련. 끊임없이 물구나무 서기를 시도하는 나만의 이유와, 물구나무 서기를 연습하며 하는 생각들, 나에 대해 발견하는 것들, 그리고 그 재미에 대해 글을 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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