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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Jan 04. 2021

물구나무는 서고 싶지만, 거꾸로 서는 건 무서웠다


내 인생 첫 물구나무서기와의 만남은 내가 스무 살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었다. 배우들이 몸을 많이 써야 하는 공연을 만드는 과정에서 아크로바틱을 할 줄 아는 선배와 함께 기본적인 아크로바틱 동작들을 연습할 기회가 있었다. 그 연습 첫날 한 것이 바로 머리 서기, 즉 머리와 손으로 바닥을 지지하고 물구나무를 서는 동작이었다. 물론 시작하자마자 무지막지하게 물구나무를 서라고 하지는 않았고, 준비 단계로 이른바 ‘한 다리 차기’를 연습했다. 하지만 나의 고난은 이 1단계에서부터 이미 시작되었다. 


 선배가 지시한 내용은 복잡하지 않았다. 벽 앞으로 가라. 바닥을 손으로 짚고 머리를 내려놓아라. 그다음 한 발로 벽을 차라! 설명만 들으면 이렇게 간단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모두가 벽 앞에 자리를 잡고 각자 연습을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손을 짚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바닥에 머리를 내려놓는 순간 세상이 뒤집혀버린 것이었다! 이게 무슨 강아지풀 뜯어먹는 소리인가. 바닥에 정수리를 내려놓으니 위아래가 뒤집히는 게 당연하지. 


그렇다. 당연하다. 당연한 것인데 나에게는 당연하지 않았다. 선배의 설명을 듣고 시범을 볼 때까지만 해도 물구나무를 서거나, 적어도 저런 발차기를 할 때 내 몸이 어떤 것을 느끼게 될지는 전혀 예상을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머리를 바닥에 박으면 좀 어지럽고, 피도 쏠리고, 무엇보다 무서울 수 있다고. 이십 세의 나는, 몸이라고는 책상 앞과 침대 사이를 오가는 정도밖에 쓰지 않았던 청소년기를 이제 막 지나 보낸 나로서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세상을 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어릴 때도 그 흔한 철봉 거꾸로 매달리기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몸을 거꾸로 해본 기억이라고는 피트니스 센터에 있는 일명 ‘거꾸리’를 사용해본 것이 전부였다. 그런 나였기에 바닥에 정수리를 내려 세상이 뒤집어지는 순간 머리는 핑핑 돌고, 온몸의 감각은 “이게 무슨 일이야!?”를 외쳐대고 있었다. 


처음 만나는 뒤집힌 세상에서 나는 얼어붙었다. 옆에서는 부술 듯 발로 벽을 뻥뻥 차는 소리와 다리가 올라갔다 바닥에 떨어지는 쿵쿵 소리가 들려오고, 선배는 잘 차고 있는 친구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조금 더! 힘차게!’를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나만은 마치 엎드려뻗쳐를 하는 듯한 자세로 굳어서 바닥에서 발을 제대로 떼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의 굼뜬 모습이 레이더에 걸려들었는지, 선배는 나에게 기어코 다가와 “발을 여기로(벽으로) 차!”라고 했다. 누군들 발을 차야 하는 걸 몰라서 못 차는가? 무서워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 것을 어찌할까. 그렇게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겨우겨우 몇 번은 발을 차기도 했다. 다만 내 딴에는 있는 힘을 다 모아서 찬 것인데, 차고 보면 ‘뻥!’ 차서 다리가 붕 떴다가 돌아오는 느낌이 아니라, ‘띠콩!’ 하고 차는 동시에 떨어지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 문제였다. 


결국 선배도 나를 (사실상) 포기하고 다시 열심히 발을 차는 친구들을 봐주러 가고 나서 나도 더 이상 애를 써서 연습하지 않았다. 연신 “너무 어려워”라는 변명 같은 혼잣말을 하며 힘차게 허공을 가르는 친구들의 다리를 반쯤 풀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한 다리 차기가 정말 나에게 너무 '어려웠던' 것은 아니었다. 힘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도, 기술이 없어서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한 다리 차기는 그야말로 있는 다리를 세게 차는 간단한 동작을 했을 때 하체가 떠오르는 감각을 느껴볼 수 있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기본 중의 기본도 못 한 이유는 사실 진짜 있는 힘껏 찼다가 다리가 붕 떠오르고 내 몸이 거꾸로 세워질까 겁이 났기 때문이다. 나는 물구나무를 서고 싶어서 연습을 하면서도 사실 정말 물구나무를 서게 될까 겁이 나서 힘껏 발을 차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사실 나도 내가 더 잘 찰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머리를 바닥에 내려놓아 뒤집힌 세상을 생경하게 보고 느끼면서 이미, 감각적으로 충분히 충격적인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하루아침에 하체가 상체 위로 떠오르는 감각까지 느껴보라고 하는 것은 진도가 너무 빠른 것이었던가 보다. 먼저 위아래가 뒤집힌 세상을 충분히 감각해보고, 그 상태에서 숨도 쉬어 보고, 그 메스꺼운 감각에 익숙해진 후에 발차기를 시도했다면 겁쟁이인 나도 물구나무서기와의 첫 만남이 조금은 수월하게 느껴졌을까? 이십 세의 나는 이렇게 물구나무서기를 ‘너무 어려운 것’으로서 처음 만났고, ‘앗 뜨거워!’하고 데인 마냥 빠르게 멀어졌다. 그 날 이후 물구나무서기는 나에게 ‘내가 할 수 없는 것’인 채로 몇 년이 지나갔다. 


커버 이미지 출처: Javon Swaby, pexel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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