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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Jan 06. 2021

다시 만난 뒤집어진 세상


내가 다시 물구나무서기와 재회한 것은 첫 만남(매거진 이전 글 참조: 물구나무는 서고 싶지만, 거꾸로 서는 건 무서웠다)으로부터 5년 후, 요가 지도자 자격 과정을 하면서부터였다.    물구나무서기와의 첫 대면이 나에게 많은 당혹감과 두려움을 안겨주기는 했으나, 어느 정도는 몸 쓰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깨달음을 주기도 한 것이었다. 당시 연극과 연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던 나는 연기를 더 잘하기 위해서라도 몸을 잘 쓰는 법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가까운 요가원을 찾은 것은 이런 생각들이 쌓인 결과였다. 그렇게 처음 시작한 후 나는 금세 요가가 나와 상당히 잘 맞는 운동이라는 것을 느꼈고 그 후 학부 시절 내내 요가 수련을 쉰 적이 없었다.


그렇게 물구나무서기와 결별했던 5년 간 꾸준히 요가를 수련한 후 지도자 과정을 시작하던 즈음의 나는 더 이상 스무 살 때의 내가 아니었다. 몸을 써본 경험이 거의 없어서 엎드려뻗쳐 자세를 하는 것만으로도 메스꺼움을 느꼈던 예전의 나는 가고, 근력 및 유연성은 물론 몸에 대한 자신감까지 어느 정도 갖추어진 내가 있었다. 일반 회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을 들었던 그동안 꽤나 까다롭고 부상 위험이 있는 균형 자세들을 연습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물구나무서기류의 자세들, 그러니까 상체를 거꾸로 세운 후에 하체를 그 위로 들어 올려 균형을 잡는 자세를 직접적으로 수련하지 않더라도 요가 동작들 중에는 상체를 거꾸로 정렬하는 자세가 아주 많았다. 위아래가 뒤집어진 상태에서 눈을 뜨고, 눈을 감고, 숨을 마시고, 내뱉고, 몸을 감각하고, 세상을 느끼는 경험치가 충분히 쌓인 상태였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도자 자격 과정을 이수하는 1년여의 과정에서 나는 결국 머리서기 자세를 하는데 ‘성공’했다.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할 예정이지만 사실 지금의 나는 특정 요가 아사나를 ‘완성’ 했다거나 ‘성공’했다는 식의 표현이나 수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분명히 내가 드디어 머리서기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는 그게 무에 그리 특별한 일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이십 세의 내가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발만 동동 구르던 장면을 떠올리면 내 다리는 골반 위에, 골반은 몸통 위에, 몸통은 팔과 머리 위에 올라간 채로 어느 정도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된 이때의 ‘성공’은 감격스럽기까지 한 것이었다. 


몸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던 것도 성공의 요인이었지만 당시 아사나 지도를 해주신 선생님의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 역시 이 ‘성공’에 큰 역할을 했다. 이십오 세의 나라고 해서 몸을 거꾸로 세우는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을 겁쟁이와 용자로 이분한다면, 나는 여전히 겁쟁이 그룹의 중심에 서있을 만한 사람이었고, 이건 지금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이것이 타고난 기질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런 겁쟁이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안정감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안정감은 "이 자세는 안전하고 다칠 리 없다"는 다른 누군가의 말이나 설득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하고 있는 것을 내가 어느 정도는 조절할 수 있다는 통제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사실 머리서기를 처음 시도했던 때에 내가 급격한 혼란과 두려움을 느꼈던 것은, 처음 겪어보는 감각적 경험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이 낯섦은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조절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활동이라는 생각으로 연결되고, 통제감의 결여는 다시 두려움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선배가 아무리 옆에서 이게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아주 간단한 것이라고 설득을 해도 내 다리는 내 마음의 무게를 입어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더랬다. 


이런 나를 비로소 움직이게 한 것은 나의 요가 선생님의 아주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과, 개별적인 지도 환경의 덕이었다. 당시 지도자 과정 수업을 나를 포함해서 단 두 명만 듣고 있었기에 거의 개인 레슨에 가까운 밀착 코칭을 받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선생님이 내 옆에 버티고 서 계시니 내가 넘어가면 언제든 잡아줄 것 같고, 적어도 목이 부러져 죽을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의 선생님은 스무 살 때의 선배에 비해 훨씬 자세한 설명을 해주고, 동작에 도입하는 단계도 더 여러 단계로 쪼개어 방법들을 알려 주셨다. 가령, 손이나 팔을 어떻게 두어야 더 유리하고 안전한지, 그리고 머리에서는 어느 부분이 닿아야 하는지, 머리에는 얼마큼의 무게가 내려져야 하는지, 팔은 어떤 힘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등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다리를 들어 올리기 전에 필요한 힘을 기르기 위해 어떤 자세들을 연습하면 좋은 지도 알려 주셨다. 


이런 선생님의 설명은 연습을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공해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다리를 들기도 전에 몸이 뒤집힌 상태를 상상하며 혹시 다리가 뒤로 넘어가서 허리가 꺾이지는 않을까, 다 올라간 상태에서 몸이 무너져 내려서 목이 꺾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으로부터 벗어나, 지금 당장 연습하는 단계별 목표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었던 것이다. 아직은 여전히 무서워 혼자서 물구나무서기를 연습하는 용기를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혼자 수련할 때는 물구나무서기에 필요한 힘을 기르는 자세들을 대신 수련하며 선생님이 계신 안전한 상황에서의 한 방을 준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내 다리는 마법처럼 붕 떠올라 벽을 뻥! 걷어찼다.


커버 이미지: Ksenia Chernaya 님의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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