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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희범 Aug 06. 2020

퇴사도 못하는 용역 강사의 졸-업

오늘 지난 3년 동안 해온 새벽 요가 수업을 관뒀다.

정확히 말하자면 코로나 때문에 수업을 안 한지는 오래되었고, 아까 낮에는 체육관 측에 사의를 표명했다. 구에서 운영하는 공단 산하 시설이었기 때문인지 사설 기관들에 비해 재개관이 훨씬 늦어졌던 것 같다. 어제 9월 재개관을 앞두고 강사들에게 수업 재개를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와서 하루만 고민해보겠다고 했었는데, 결국 오늘 카톡으로 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이었다.


사실 몇 개월간 수업을 쉬면서 이미 여기 수업을 정리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있던 상태였다. 그런데도 막상 재개관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칼 같이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것이 어려웠다. 당장 여기 수업을 통해서 벌 수 있었던 수업료도 아쉬울 것 같고, 몇 년간 꾸준히 내 수업을 수강해주신 오래된 회원 분들의 얼굴도 눈에 아른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용역 강사(계약서에 이렇게 적혀 있다)" 입장에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아니, 애초에 기대를 할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지만, 막상 이렇게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마무리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뭔가 허탈하기도 하고... '그만두고 짐 찾으러 갈 때 상주하시는 직원들에게 어떻게 인사를 드리지? 회원들에게는 제대로 그만둔다는 말도, 인사도 못 해서 어쩌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약간은 애타 했던 마음이 갑자기 쓸데없는 생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속물적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 일자리를 정리하기로 결정한 가장 큰 이유는 수업료가 너무 적기 때문이었다. 요가강사들이 한 시간 수업을 하고 받는 평균적인 수업료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그 이유에 대해 진지하게 연구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강사 자격증을 발급하는 단체나 기관의 수가 늘어나고, 그와 함께 자격증을 가진 강사들의 수도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일자리를 원하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 수업료가 10년째 동결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다녔던 곳 같은 공기관들 그 평균 수업료보다도 더 적은 금액을 책정한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야말로 '후려치는' 가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이나 이 수업을 해왔던 이유들에 대해 한참을 적다가 또 너무 큰 이야기의 덩어리가 될 것 같아 다 지워버렸다. 기회가 되면 나중에 더 써보기로...)


요가 지도자 자격증을 따는 것이 비교적 쉬워진 것과는 별개로 현장에서 수업을 하는 많은 강사들은 훨씬 더 가열하게 자신을 단련하고 온갖 워크숍 및 자격 과정을 섭렵한다. 나와 비슷한 경력의 강사들 프로필만 봐도 (경력 사항 말고) 가지고 있는 자격 사항이 10줄은 우습게 넘겨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저 많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과 돈을 투자했을지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 싶다. 나 역시 같은 일을 하고, 같은 분야에서, 어떤 의미에서는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있으면서도, 어떻게든 자기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모습들이 안쓰럽기도 하다.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안쓰러움이 투영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자격증을 따고 싶었던 것일까 따야만 했던 것일까.


나는 지금은 주로 1:1 수업만을 하고 있다. 사실상 조금 전에 내가 담당하던 마지막 단체 수업을 그만두었으니 이제 100%  개인 레슨만 하는 셈이다. 수업을 원하는 회원과 연결을 해주는 업체를 통해서 수업을 구하기도 하고, 내가 하는 단체 수업을 들었던 분들 가운데서 개인적으로 연락이 와서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1:1 수업은 페이 면에서는 단체 수업보다 낫지만 안정도가 떨어진다. 회원 한 사람이 수업을 그만 두면 일자리 하나가 없어지는 셈이 되기도 하고, 또 자주 수업을 취소하는 회원들도 있다. 이 모든 불안정성 가운데서 나의 시간과 권리를 지켜내려면 그만큼 단단한 체계가 필요한데 나는 아직 스스로 만족할만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다.


요가 강사들을 비롯한 스포츠 트레이너들이 조금 더 안정적으로 일하고 공부하고 자신만의 강점을 키워 나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면 좋겠다. 그래서 허겁지겁 남들이 모두 따는 자격증 나도 따는 식의 경쟁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일을 바라보는 정확하고도 명확한 관점을 가지고 실천적인 운동 교육 분야의 철학과 과학이 깊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나 스스로가 노력하는 방향이기도 하고,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과 함께 더욱 힘을 쏟고 싶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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