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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젠젠 Nov 27. 2019

크루즈 세계일주, 나만의 비밀 장소

상하이에서 출발해 싱가포르까지 가는 셀러브리티 컨스틸레이션호는 굉장히 오래된 배이다. 여행사나 선사들에서는 늘 ‘새로 만든 배’를 앞세워서 판매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최근에 만든 배일수록 시설이 믿기 힘들 만큼 ‘혁신적’으로 좋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만들어진 크루즈들은 ‘놀이동산’을 배 안으로 옮겨왔다고 비유 할 정도로 다채로운 액티비티를 가지고 있다. 워터슬라이드에 암벽등반, 아이스링크, 집라인, 인공파도 타기 등 배에 따라 종류는 다르지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놀이기구들이다. 2002년에 만들어지고 올해 18년째 운항하고 있는 91,000톤에 달하는 셀러브리티 컨스틸레이션호는 다른 크루즈에 비해 거대하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하지만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고전은 영원하다고. 나는 이 배의 클래식하고 올드함이 좋았다.

배는 1층부터 12층까지 있는데 2주를 보낸 이 배에서 내가 제일 좋아했던 장소는 두 곳이다. 10층의 야외수영장과 11층 구석의 선베드. 나는 어디를 가든 어디를 머무르던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아지트를 찾는 편이다. 대학교 때는 중앙 도서관 근처의 외진 벤치가 그랬고 아파트에서는 테니스장 옆의 벤치, 라다크에서는 스피툭 곰빠가 그랬다. 해가 있으면 옷을 훌렁훌렁 벗고 해를 좇으며 비타민 D를 충전하는 서양인들의 특성으로 눈에 보이는 야외 선베드는 늘 만석이었다. 

선베드는 10층 수영장 좌우로 나란히 11층 배의 둘레를 따라 듬성하게 있는데 길이가 300m에 달하는 배를 요리조리 살피며 왕복한 결과 나는 갑판 끝쪽의 선베드에 사람이 적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곳은 내 아지트가 되었다. 책 한 권, 이어폰, 핸드폰, 술 한잔을 들고 그 선베드에 누우면 몇 시간이고 꼼짝하지 않고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거기에 풀바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스낵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

종이 책을 읽다 지겨우면 태블릿의 다른 책을 펼쳐 봤고 몇 개 담아오지 못한 노래를 반복재생하며 술을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해가 슬금슬금 내려와 하늘에 자기를 물들이고 있었다. 망망대해에서 바라보는 노을이란 얼마나 외롭고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홀로 존재하는 해는 유독 더 크고 또렷했고 뿜어내는 붉은 기운 또한 농도가 짙었다. 그럴 때면 읽던 책을 접고 넋을 잃고 노을을 바라봤다. 천천히 하강하던 해는 마지막에는 도망치듯 빠르게 바다로 빨려 들어갔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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