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보다 ‘나다움’
그날 아침, 모든 것은 여느 일상과 다름없었다. 단 한 가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아나운서 목소리만 달랐다. 바로 세월호 사고였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정상’이라는 집단 최면이 그렇게 쉽게 깨질 줄, 나는 미처 몰랐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가 단원고 아이들을 삼켰다. 그 배 안의 아이들도, 나처럼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시험, 졸업, 취업, 결혼. 아이들은 그저 평범한 어른이 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는 한 마디가, 고작 그들이 했던 일이었다. 정상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들이 그 배와 함께 침몰되었다. 그것은 가장 절실한 순간에 가장 무능력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날 이후, ‘정상’이라는 단어는 내게 신뢰에서 속임수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나는 사회가 그은 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내게 간절히 묻는다.
‘나는 정상일까, 비정상일까?’
‘정상’이라는 말은 이제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그 속에는 사회를 지탱하는 공리가 없다. 삶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진리도 없다. 단지 타인의 시선으로 덧씌워진 환영만 있다. 관심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로 싸여 있지만, 결국 그것은 강요일 뿐이다. 내게 그것은 사이즈가 작은 옷이었다. 더는 그 옷을 입기 위해 낑낑대지 않는다. 그리고 더이상 내게 같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 실체가 없는 그것은 이제 폐기되어야 하므로.
정상은 늘 변했다. 흑인 노예제가 당연했던 시대, 여성에게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 그땐 차별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낡은 허물은 이제 ‘비정상’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때에 따라 바뀌는, 정상이라는 허상에 왜 내 삶을 구속해야 하는가.
지금 나는, 내 삶에서 ‘정상’이라는 단어를 지운다. 대신 ‘나다움’으로 바꿔 쓴다. 정답을 찾아 헤매는 삶이 아니라, 내가 문제를 내는 삶. 앞만 보고 달리는 100미터 경주가 아니라, 천천히 걸어가는 여행 같은 삶. 내 삶의 기준은 오직 나의 연필로만 긋는다. 그리고 단언한다, ‘정상’은 결국, 선명한 폭력이라고.
내가 쓴 하루가 다 지나면, 난 이제 다른 질문을 던진다.
“오늘 하루, 너답게 행복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