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실험
폭발음이 들렸다. 사실 하늘이 울부짖는 천둥소리였다. 먹구름이 빠르게 돌진했고, 바람도 습기를 머금어 서늘했다. 떨어지는 한 방울, 두 방울은 이내 소나기가 되어 바람마저 쓸어내렸다. 아차, 퇴근 시간, 내겐 우산이 없었다. 잠시 주춤거리다 결국 빗속으로 달려갔다. 바짓단으로 스며든 비는 질척거렸고, 신발 속은 금세 축축해졌다. 흠뻑 젖은 몸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졌다. 비 맞을 각오는 마음의 우산이 되었다.
비는 도심 속 소음을 집어삼켰다. 도로 곳곳마다 물웅덩이가 빛을 칠했고, 건물 유리창마다 빗줄기가 그림을 그렸다. 불편함 속에서도 세상은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잠깐 카페에 들러 커피와 함께 그 풍경을 감상했다.
그날 밤, 몸이 으슬으슬했다. 콧물이 흘렀고, 미열이 퍼졌다. 순간의 불편함이 찾아왔지만, 이내 마음 한구석에서 평온이 스몄다. 인생이란 본디 이런 것 아닌가. 불현듯 젖고, 예고 없이 앓으며, 다시 회복해 가는 과정. 그것이 삶의 리듬이자, 내가 감당해야 할 날씨이다.
되돌아보면, 소중한 순간들 또한 대부분 우연으로 다가왔다. 낯선 이의 따뜻한 손길, 뜻하지 않게 열린 대화의 창, 퇴근길 붉게 물든 저녁노을의 정경. 그 모든 환희와 위로 역시 삶의 변주 속에서 갑자기 찾아온 선물이었다.
우연을 바꾸는 일은 불가능하다. 비가 내리면 맞을 수밖에 없고, 햇살은 예고 없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 내가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마음으로 그 순간을 품어낼지는 나의 선택이다. 같은 소나기를 맞으며 누군가는 하늘을 원망하고, 또 누군가는 빗소리를 음악처럼 듣는다.
좋지 않은 일은 붙잡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흘려보내는 편이 훨씬 가볍다. 그러나 좋은 순간은 오래 간직할 일이다.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되새기고 빛을 발하도록 하면, 그것은 단순한 우연을 넘어 인연이 된다. 사람은 결국 마음으로 관계를 길러 내는 존재다.
그날의 소나기는 내 몸을 적셨으나, 동시에 마음을 더 단단하고도 따뜻하게 빚어 주었다. 젖은 신발과 감기 기운은 금세 사라졌지만, 빗속에서 발견한 불빛의 반짝임과 따뜻한 커피 한 잔이 전해준 위안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다.
삶은 언제나 날씨와 같다. 햇살과 비, 맑음과 흐림이 번갈아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날씨 그 자체가 아니라, 그 날씨를 살아내는 우리의 마음이다. 예기치 않은 순간을 필연으로 바꾸는 힘은, 결국 우리의 태도와 선택에 달려 있지 않을까.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흠뻑 젖고,
불현듯 찾아온 감기에 몸살을 앓는.
그런 게 인생이다.
그렇다고 비극은 아니다.
단지 우연일 뿐이다.
사랑하는 연인도 우연의 결과고,
따사로운 햇살도 우연의 결과다.
마음은 현상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행동을 결정한다.
좋지 않은 우연은 뱉어내고
좋은 우연을 연으로 만드는 건,
결국 마음이다.
예전에 썼던 짧은 상념을 확장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