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이지 않으면, 언제가 피겠지
도시는 콘크리트를 먹고 자라는 정글이다.
낡은 건물은 재개발의 굉음 속에 허물어졌고, 그 자리엔 더 높고 더 진한 회색빛 빌딩이 솟아올랐다. 아침을 깨우는 수많은 발걸음은 사냥터로 나가는 전사들의 행진처럼 울려 퍼졌다. 먹잇감과 포식자가 얽힌 이 길 위에서, 나는 방향을 잃어버렸다. 다시 나의 경로를 더듬어야 했다.
‘이 거대한 숲 속에서 나는 어디쯤 서 있는 걸까?’
고층 빌딩에 파묻힌 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셀 수 없는 창문에서 반사된 햇빛은 마치 날카로운 창끝이 되어 내 어깨를 겨눴다. 도로명 표지만이 위치를 알려줄 뿐, 존재의 좌표는 끝내 기록되지 않았다. 나는 밀림 속 풀 한 포기 같았다. 밟혀도 이름조차 불리지 못하는 미약한 생명이었다.
저녁 무렵, 하루를 정리하려는 발길은 다시 인파 속으로 스며들었다. 모두가 획일화된 옷과 무표정한 가면으로 자신을 가린 채 승강장 입구로 흘러갔다. 나도, 내 주변 사람들도, 누구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희미해졌다. 그때, 눅눅한 지하의 냄새가 내 코끝을 파고들었다. 거대한 도시의 호흡에 완전히 삼켜진 기분이었다.
아침, 그리고 저녁마다 같은 상황은 반복되었다. 어제도 그제도 같은 길을 걸었다. 점심시간 또한 여느 때처럼, 입사 동기인 이 선임과 식사를 마친 후 커피를 들고 걸었다. 골목길 양쪽으로 낡은 전단지의 흔적과 음침한 습기, 그리고 갈라진 아스팔트 바닥이 보였다.
”지온 선임, 저거 봐.“
그가 담벼락 아래를 가리켰다.
좁은 틈 사이, 초록빛 한 줄기가 꼿꼿하게 서 있었다. 먼지투성이였지만, 작은 햇빛을 향해 잎을 내밀고 있었다.
”저런 콘크리트 사이에도 잡초가 다 자라네.“
나는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잠시 그 이름 모를 풀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낡은 벽, 메마른 틈, 그리고 허락되지 않은 자리. 따스한 햇살도, 한 줌의 흙도 없이 기어이 잎을 틔워냈다. 예전의 나는 스스로를 잡초라 부르며 초라함을 탓했지만, 그날은 조금 달랐다.
빛이 외면해도 살아내려는 의지를 그 보잘것없는 생명에게서 발견했다. 그 조그만 풀잎 하나가, 내 하루보다 더 단단해 보였다. 그 순간, 나도 이 도시의 정글에서 완전히 길을 잃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꿈틀거렸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엔 여전히 피로와 고독이 묻어 있었지만, 가슴 안쪽엔 새싹이 움트고 있었다. 나는 이 정글의 포식자도, 완전히 무력한 먹잇감도 아니다. 그저 도시의 바람과 빛을 함께 맞으며 버티고 자라나는 또 하나의 생명일 뿐이다.
도시는 여전히 거칠고 냉정하다. 건물은 더 높아지고, 불빛은 더 번져가며, 소음은 끝없이 쏟아진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안다. 거대한 콘크리트 숲에도 뿌리내릴 자리가 있다는 것을.
길을 잃은 듯 헤매는 그 자리에서, 나는 이미 새로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