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급함보다는 믿고 기다리길
내가 미국에 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이들의 영어교육 때문이다. 나름 조사해 본 결과 초등 3~4학년 때가 미국 유학의 적기라는 결론을 내리고 마침 코로나도 끝나고 예전의 일상생활이 가능한 시기가 와서 하늘이 내린 기회란 생각으로 미국에 오게 됐다.
아이들의 첫 등교를 준비하는 엄마의 마음은 행여나 놓치고 빠뜨린 게 없지는 않은지 노심초사 그 자체였다. 스쿨버스는 어디서 타는지, 학교 준비물은 무엇인지, 확인에 또 확인을 거쳐 드디어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시작됐다. 쌍둥이라 서로 의지가 되고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엄마로서도 믿는 구석이었다. 처음 1년은 적응하는 시기이므로 같은 반에 배정해 달라고 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 점은 점점 독으로 작용했다. 둘이 항상 붙어 있다 보니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절실함이 떨어지게 되고 영어를 배우고 다른 친구를 사귀는 데 장애로 작용했다.
초등 3학년 우리 아이들은 제로베이스에서 영어를 시작하게 됐다. 한국에서 영국문화원에 2년 정도 다니며 그래도 영어 파닉스 기본은 다져놨다고 생각했는데 첫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테스트에 1단계라는 결과를 받아 들고는 망연자실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들인 돈과 시간이 헛수고였던 거다. 그래, 이래서 미국에 와야 하는 거구나.
예상했던 대로 모든 면에서 대체로 평범한 우리 아이들은 첫 한 달 동안은 학교에 가기 싫어했다. 울면서 학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서 보내는 엄마의 심정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모를 것이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나자 어느새 안정기가 찾아왔다.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이 없어지더니 이제는 학교에서의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이다. 그래도 잠들기 전 한국에 빨리 돌아가고 싶다는 말은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만큼 영어가 빨리 늘지는 않았다. 빨리 친구를 사귀어서 방과 후에 같이 놀아야 하는데 둘이 항상 솔메이트처럼 붙어 있으니 그럴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도 손 놓고 지켜만 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친구를 사귀는 부분은 엄마가 도와줄 수 없지만 집에서라도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서포트해주고 싶었다. 하루에 한 권씩 영어책(수준에 맞는 짧은 동화)을 읽고 영어 단어 5개씩 외웠다. 미국에 오면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울 수 있어 영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한국에서보다 더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이 너무나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났을 때 드디어 같은 반 친구 집에 초대를 받았다. 그것도 슬립오버(Sleepover: 집에서 같이 자면서 놀기) 초대였다. 너무나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친구 엄마의 초대 문자에 응답 문자를 보내고 나니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 집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으면서 덥석 초대에 응해버리다니 너무 경솔한 결정은 아닌지, 아이들이 괜히 상처만 받고 오는 건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침구(이불, 베개), 칫솔, 인형을 가방에 챙겨서 친구 집에 데려다주며 드디어 친구 엄마와도 인사를 나눴다. 인상도 좋고 너무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맞아줘서 나는 안도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 엄마는 중간에 아이들이 잘 놀고 있다는 문자를 사진과 함께 친절히 전송해 주는 배려도 잊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아이들을 데리러 가면서 감사선물로 케이크를 사갔다. 아이들은 오히려 집에 돌아오는 걸 아쉬워하며 다음에 또 놀러 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런 우리 아이들이 어찌나 대견하고 기특하던지. 친구집에서 하룻밤 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푸핫!
그 뒤로 우리 아이들은 조금은 느리지만 영어 읽기나 말하기에서 진전을 보이게 됐다. 어쩌면 우리 아이들은 정말 잘 해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엄마의 욕심, 조바심이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주고 있는 건 아닌지. 미국에서 건강하고 즐겁게 다양한 체험을 하고 돌아가고 싶다는 초심을 잃지 말고 나와 아이들 모두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될 수 있는 날들을 보냈으면 좋겠다.